< 우리나라 3대 사찰 >
해인사는 국내 “ 3보寶 사찰 “ 중 하나인 큰절이다.
3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 즉 불(佛.부처님), 법(法을.가름침), 승(僧 .스님)을 가르킵니다.
불보 (佛寶) 사찰은 양산 통도사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법보 (法寶) 사찰은 합천 해인사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8만 대장경을 모셨지요.
승보 (僧寶) 사찰은 순천 송광사입니다.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사찰입니다.
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 사적 제504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藏經閣)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통도사(通度寺:佛寶사찰)·송광사(松廣寺:僧寶사찰)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말사(末寺)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
(藥水庵)·원당암 등이 있다.
호텔 숙박비 영수증 제출하라는 자식 등살에... 봄에 남은 잔액 탈탈 털려고 2박 3일 중전과 단둘이
오붓한 드라이브 관광을 떠났답니다.
중전 눈치를 보니... 울나라 3대 사찰 탐방과 인근 관광지 탐색이 좋을 것 같아서 훌쩍 떠났답니다.
나라와 가정의 안녕을 3대 사찰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무릎을 조아렸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대전현충원 들려 장인장모께 낳고.길러주심에 감사 문안 인사를 올렸습니다.
" 올까지 사찰을 탐방했으니... 내년부턴 울나라 100대 명소를 찾아요!
내년엔 마이산과 남해안 해남마을 한번 가보는게 어떻런지요?
그래두...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하잖나요? 여보 당신 함께라서 고마워~ "
감사합니다.
남은 달력 한장 달랑 남았네요! 12월도 추억 많이 만드시옵고..
귀 가족 모두 늘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비옵니다.
꾸벅~
첫댓글 좋은곳에 다녀왔네 해설이 멋지네
댓글 고마워요!
댓글 달린 순서대로 웅장한 것 같아요! ㅋ
부부동반하여 좋은곳에 다녀왔군요 보기좋습니다
댓글 고마워요!
다리꼬뱅이 힘있을 때 가보고 싶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