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이영근 신부
복음; 요한14,1-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 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 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6 예수 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을 떠나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유언 말씀입니다. 유언이란 남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가장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복음은 앞 장면에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요한 13,36)라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1-2)
이는 당신이 가시는 곳이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그곳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을 통해 당신이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도 밝혀줍니다. 그리고 당신은 본 바를 말하니, 아버지를 믿고 또한 당신을 믿으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가 그 거처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거처할 곳이 많아도 가서 거주하지 않으면, 그 집은 나의 거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한 토마스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4)
사실 당신께서 '길'이라는 이 말씀은 엄청난 발언이요, 혁명적 발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의 표상은 본디 이집트 탈출의 상징이요, 해방의 길을 표상했으며, 점차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영원한 보상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율법'에 적용에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길'의 의미가 ‘율법’에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또, 당신이 '진리'라 함은 그 뜻이(áληθεια) ‘감추어진 보물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난 사람은 곧 진리를 발견하고, 성부를 만난 사람이 됩니다.
또한, 당신이 '생명'이라 함은 당신은 단순히 구원에 인도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구원의 원천인 생명이심을 말해줍니다.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35)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미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줍니다. 곧 제자들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알지 못함은 ‘믿지 않는 까닭’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참된 앎의 길입니다. 그저 안다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그것을 믿을 때라야 그 앎을 진정 알게 됩니다. ‘참된 앎’은 머리로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서 온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발길에 밟히며 아래에서 저를 이끄셨듯이, 저도 형제들 아래에서 그들이 밟고 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 제 주장에 밀려 옳고도 져주셨듯이, 저도 형제들에게 져줌으로 진리의 빚을 밝히게 하소서! 씹히고 부서져 제 속에서 살이 되셨듯이, 저도 형제들 안에서 부서지고 씹혀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제 더 이상은 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양주분회/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