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계모라고 해도 어떻게 여덟 살 밖에 안 된 철부지 어린아이를 그렇게도 잔인하게 짓밟고 때려서 죽일 수가 있는가. 그리고 그 아이들의 친아버지라는 작자들의 천륜마저 저버린 비정한 처신은 인간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며칠 전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을 분노하게 만든 아동학대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TV 방송의 한 앵커는 이계모들에 대한 범행들이 자세하게 기록된 판결문을 읽다가 차마 그 천인공노할 악행에 대한 분노로 눈물이 앞을 가려 절반도 읽지 못했다고 했다.
검사는 계모 한 명은 살인죄로 사형을 구형했고 다른 한 명은 상해치사죄로 20년형을 구형했는데 판사는 두 사람 모두 살인죄는 인정할 수 없고 대신 상해치사죄로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민심은 국민들의 법 감정을 무시한 안일한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판사는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살인죄 보다는 상해치사죄를 적용한다고 했다.
즉, 살인은 죽여야겠다거나 혹시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들이 심하게 때리기는 했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의를 인정할 수가 없어서 상해치사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민심이 이들 모두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상해치사죄보다 무거운 형벌을 주어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영혼들이 품은 한이라도 풀어주자는 생각 때문이다.
법을 다루는 일부 법조인들은 법률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민심은 좀처럼 가라 않지 않고 도대체 누가 그런 무기력한 법을 만들어 놓고 방치하고 있는지 분기탱천한 분위기다.
세계적인 추세는 아동학대에 관한 처벌 수위가 매우 엄격한데 비해 우리나라는 후진국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동은 누가 때려도 대항할 능력이 없는 항거 불능한 연약한 아이들이므로 법에 의해서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판사나 검사들부터 그다지 중한 범죄로 다스려야한다는 의식도 부족하고 의지도 별로 없다. 또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도 아동보호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무관심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자식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훈육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어른들의 풍조도 큰 문제인 것이다.
여하튼 이번 사건에 있어서 미필적 고의만 인정되어도 살인죄를 적용하여 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가 있었는데 판사들은 그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사건의 미필적 고의라는 것은 심하게 때리고 나서 치료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는 정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가해자인 계모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것이고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는 통상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자백을 하면 인정된다. 그런데 친 엄마라면 양심의 가책으로 그렇게 진술할지는 몰라도 어느 누가 그런 진술을 하겠는가.
이러한 자백이 없다면 범행과정을 보고 고의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 기준은 통상 흉기를 사용했는가 또 가격한 부위가 급소인가 아니면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위험한 부위였는가 하는 점들을 살펴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흉기도 사용하지 않고 위험한 부위를 가격하지도 않았으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판검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사건을 맨 처음 조사하는 수사관의 역할이 거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수사관이 작성한 조서가 거의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사관은 물론 공정성을 가져야 하지만 정상적인 윤리의식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정의감과 진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귀찮다고 대충 넘어가면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다. 신문 기술은 특별한 양식이 없다, 어찌 보면 수사관 개인의 판단으로 핵심을 파고들어 가는 끈질긴 추궁 실력이 있어야한다. 또한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끄집어 물고 들어가야하는지는 전적으로 수사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슬픈 현실이지만 수사관을 잘 만나는 것도 피해자로서는 행운일 수 있는 것이다.
자질이 부족한 수사관이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은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장기간 감옥생활을 하게 될 피의자에게 측은지심이 생겨서 동정하게 되는 점이다. 아무리 악랄한 피의자라고 해도 범행을 시인하게 되면 대체로 천진한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에 수사관으로서의 평상심을 잃고 흐트러지게 되면 이러한 미필적 고의를 추궁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수사관의 신문 기술, 조서작성 능력, 피의자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하는 자질 등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이번 사건들에 있어서도 신문기술이 뛰어난 수사관이나 검사였다면 그동안 지속되어 온 범행 과정들만 주의 깊게 살펴보았더라도 충분히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게 조서를 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사 미필적 고의가 입증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라도 적용될 수 있게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즉 저렇게 놓아두면 혹시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그냥 방치해버려서 결국은 죽게 만들었다 하는 것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인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그냥 방치할 경우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식까지 요하지는 않는다. 결과가 사망에 이르게 되면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