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전하는 수로부인 설화와 동해안 지역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동해안 별신굿 등 바닷가 마을의 전통 해신 제의는 '동해안이라는 동일한 공간적·문화적 기반'과 '해신(海神)을 달래어 안녕과 풍요를 얻으려는 고대 신앙 체계'를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다.
이 둘은 약 1,300여 년이라는 시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신화적 구조와 제의적 행위에서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해신(海神)에게 바쳐진 신부 인신공희와 용왕굿
바다 용(海龍)이 수로부인을 납치해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향기로운 옷과 칠보로 장식된 궁전에서 대접한 뒤 돌려준다. 이는 고대 바닷가 마을에서 풍랑을 잠재우고 만선을 기원하기 위해 부인이나 처녀를 바다의 신(용왕)에게 바쳤던 '해신과의 신성한 혼례 제의(인신공희)'의 신화적 형상화이다.
별신굿의 핵심 굿거리 중 하나인 '용왕굿(해신제)'에서는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술과 떡, 제물을 올리며 어민들의 안전과 풍어를 빈다. 용왕굿에서 용왕을 달래고 다독이는 제의적 행위는 수로부인 설화에서 해룡을 달래고 부인을 매개로 신과 교섭하던 고대 해신제의 직접적인 민속적 계승이다.
'집단 주술(언어)'과 '신체 행위'를 통한 신의 제압 및 달래기
수로부인 설화의 〈해가(海歌)〉: 바다 용이 부인을 끌고 가자, 마을 백성들이 모두 모여 지팡이로 바닷가를 치며(擊杖) 집단으로 노래를 불러 용왕을 위협하고 부인을 되찾아온다.
동해안 별신굿 역시 마을 주민 전체가 동참하는 '집단적 축제 제의'이다. 무녀와 화랭이(악사)가 신명 나는 가무와 소리로 신을 청하고,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고 소리를 치며 함께 어우러진다.
두 제의 모두 "말(주어/소리)과 신체적 행위(춤/지팡이질)의 결합을 통해 초자연적 신격(해신)을 자극하고 제압하거나 달래어 목적을 이룬다"는 동일한 주술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수로부인 - 대사제(무녀)로서의 정체성
수로부인은 단순한 관료의 아내가 아니라, 바다와 육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오가는 '대사제(샤먼/무녀)'적 인물로 해석된다. 부인이 바닷속에서 되돌아왔을 때 옷에서 풍겼다는 '세상에서 들어본 적 없는 향기'는 신성함과 주술적 권능을 입증하는 증표이다.
동해안 별신굿을 이끄는 세습무(대대로 무업을 이어받은 무당) 가계 역시 마을 수호신과 주민들을 매개하여 신의 뜻을 전달하고 살풀이를 해준다. 수로부인이 가졌던 '신과 소통하는 여신/무녀적 권능'이 오늘날 동해안 세습무 무녀들의 제의적 역할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간적 연속성: 동해안 해로(海路) 문화권
수로부인 설화의 배경인 조해현(강릉)과 임해정(삼척/동해 일대)은 예로부터 해상 교통이 번성했으나 풍랑과 해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잦았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는 해신의 노여움을 풀고 영혼을 달래는 굿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였으며, 이것이 문헌화된 것이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이고, 현장 제의로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 동해안 별신굿(중요무형유산)이다.
수로부인 설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동해안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용왕(해신)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과 경외감,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거행했던 고대 해신제의 신화적 기록이다. 동해안 별신굿은 바로 그 수로부인 설화 속 해신 신앙과 집단 제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