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약 두 달만에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하였다. 그 동안 감기 때문에 바깥 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왔기 때문이었다. 감기는 약 먹어도 일주일, 버텨도 일주일이라는 생각에
'할일도 없는 백수가 감기 하나쯤이야 못 당해 내려구....' 하는 배짱으로 버텼으나 결국은 두 손 손들고
병원 가서 약을 타다 먹고서야 겨우 일어섰다.
지하철 3호선 물만골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마하사로 오르는 길을 따랐다. 옛날 이곳은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비포장으로 비만 오면 질퍽거렸던 변두리로 연산6공구였던가 8공구였던가 그랬다 고개를
넘어면 망미동이었고 허허 벌판에 국군통합병원이 우뚝 서 있었다. 우리가 대학 다닐때 ROTC 신체검사
를 받으러 가면서 논둑길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던 변두리가 지금은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하늘을 찌르듯이 우후죽순처럼 섰다. 상전벽해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제법 경사가 심한 마을버스 길을 따라 올라가니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현대아파트 두 동이 숲 가운데
우뚝 서 있다. 좌측으로는 관음사 팻말만 보이고 사찰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올라가니 꼬방 동네가 나왔다.
축담 앞에 요즘 보기도 힘든 연탄재가 연탄집게가 구멍에 꽂힌채 포개져 있었다. 얼마전 서울에선 마지막
연탄공장이 문을 닫았다던데 부산은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도시가스와 LPG에 밀려났지만
연탄은 한때 서민들의 애환이 실린 취사와 난방의 주역이었다.
꼬방동네 손바닥만한 터밭에는 마늘, 배추, 상추, 무 등의 채소가 따뜻한 햇볕을 받아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한 뼘쯤 자란 마늘을 보고는 한 친구가 먹음직스럽다면서, 6.25사변시 중공군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파랗게
자란 마늘을 보고는 뽑아서 흙을 훌훌 털고선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는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마늘은 항암제로 약품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양념에선 없어서는 안될 슈퍼식품이다. 보통 뿌리를 많이 먹지만
풋마늘과 쫑지로도 반찬을 해 먹기도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황령산 둘레길인 갈맷길이 나온다. 우리 일행은 갈맷길에서 우측으로 발길을 옮겼다.
울긋불긋한 단풍 속 오솔길을 따라 한 참 걸었다. 길 모퉁이에 정자가 하나 서 있었다. 아마도 구청에서 등산객
들을 위해 잠시 쉬어 가라고 지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정자에서 정상으로 향한 가파른 길을 타고 올랐다.
제법 오랫만에 산을 타서 그런지 온몸에서 땀이 솟아났다. 정상 부근 소나무 숲 아래서 자리를 펴고 각자
준비해 온 먹거리를 내놓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안테나 탑과 봉수대를 거쳐 경성대쪽으로 하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