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남을 데리고 시사에 참석하였다. 직계존속인 9대조부터 우리 집안에서 세운 재실에서
음력 시월 열나흗날에 지내는데 올해부턴 시사에 참여하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늘여보자고
휴일인 일요일로 정했다고 한다. 열시에 제사를 시작한다기에 8시에 집에서 출발키로 하였다.
광안대교를 거쳐 황령터널과 동서고가를 빠져 남해고속을 탔다. 진영휴게소에 잠시 들러 화장실에
갔더니 남자 화장실에도 줄을 섰다. 여자 화장실엔 전에도 더러 줄을 서는 경우가 있었으나
남자 화장실에서 줄을 서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단풍철이라 구경가는
관광버스며 승용차들이 주차장이 터져 나갈듯이 들어찼다.
진성 톨게이트를 빠져 한적한 시골길로 차를 몰았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이 들어 있고 살랑이는 바람에도 나뭇잎들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며 바닥에도 수북히 쌓여
있었다. 시제 시간만 아니었으면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치돗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재실이 있는 진성면 대사리 두소부락은 의령남씨 군자 보자 어른께서 약 500년 전에 낙향하셔서
마을을 이룬 후 집성촌이 된 동네다.
동네 가운데 있는 미수재라는 재실로 바로 갔더니 시사에 참여한 사람이 열댓명 남짓하였다.
상을 차려 놓고 마악 제사를 지내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다. 인사를 하고는 나도 두루마기처럼 생긴
도포를 찾아 입고 허리엔 솔띠(끈)로 묶었다. 솔띠 양쪽 끝에는 술이 달려 있다. 다리에는 행건이라 하여 흰
천으로 만든 양쪽이 트인 것을 끼워서 묶었다.
머리엔 유건이라 하여 검고 길쭉한 것을 둘러 쓰고 보니 제법 유생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예전에 어릴 땐 아버지를 따라 시사에 오곤 하였는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윗 어른들은 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젠 내 차례가 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