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무렵의 일이다. 14호 수용소 남쪽 지역에 대동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을 따라 6m 도로가 나 있었는데, 이것을 15m 폭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워낙 공사를 급하게 진행하느라 14호의 全 수감자들이 동원됐다. 당시 상황에 대한 김용씨의 증언. 『관리소 수감자들이 총동원돼 개미떼처럼 붙어서 도로 확장작업을 했습니다. 등짐을 지고, 곡괭이로 돌을 쪼아가며 서둘러 작업을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관리소 본관 건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관 건물 주위는 밤에도 대낮같이 불을 켜 놓아 쥐새끼 한 마리 기어가는 것까지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여자 수감자들을 볼 수 있었어요. 여자들도 못 먹어서 그런지 유령의 모습이더군요. 그런데 제가 작업했던 곳에서 약 3m 떨어진 곳에 키가 크고 눈이 파란 서양인 세 명이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외국인의 나이를 70세 전후, 키는 180cm 정도로 컸으며 허리가 휘어 구부정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6·25 당시 미군이나 영국군 포로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국인들을 전쟁포로라고 믿는 근거는 같은 내무반에 근무하던 인민무력부 소장 출신의 김재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굴진조장이었던 김재근의 설명에 의하면 14호에 수감된 미군 포로들은 장진호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는데 김일성이 「너희들이 빼앗으려던 북조선 땅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라」 하는 교시를 내려 외국인 포로를 수용소에 잡아놓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자는 김용씨에게 수용소에서 목격한 외국인이 미군 혹은 영국군 포로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김씨의 답변. 『도로 작업장에서 작업할 때 김재근이 외국인 세 명과 눈인사를 나누며 뭔가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더군요. 작업이 끝나고 김재근에게 「외국인들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김재근은 자신이 무진2갱으로 오기 전에 수용소 내의 다른 작업장에서 외국인 수십명과 함께 일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로부터 그들이 미군 포로, 영국군 포로이며 대부분이 장교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그가 도로 작업장에서 만났던 미군 포로가 장진호반 전투에서 포로가 된 장교라는 사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알게 된 내용입니다』 김씨는 서울에 귀순한 이후 14호 수용소의 미군 포로 존재와 관련하여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증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