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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최헌식
250309 행2:42 신앙생활의 기본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50309 행2:42 신앙생활의 기본
오늘 말씀은 우리들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과 기준을 말하여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두어 번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3월 둘째 주 봄이 되고 씨뿌리는 달이 되어 우리들 신앙의 뿌리, 씨를 생각해보면서 다시금 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그 방향과 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의 큰 틀(패러다임)은 바로 마태복음 4장 23절, 24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사역을 하셨는가? 이에 대한 대답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니라”
이 말씀이 좀 긴 것 같지만 정리해보면 3가지입니다. 1.말씀으로 가르치시고 2.복음을 전파하시고 3.병자들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교육 또는 깨우치심, 선포 곧 전도하시고, 그리고 병고침과 치유를 행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을 한 마디로 뭉뚱거린다면 바로 모든 인간의 구원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기회에 더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셨는데 우리도 가르치고 선포하고 치유해야하는가? 물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들도 주님의 뒤를 이어 주님이 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주님께서는 우리들 주님을 믿는 자들이 주님이 하신 일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나라는 물론 오늘날 큰 교회들은 열두 명이 아니라 12만 120만 명이 한 번에 모이는 일들이 우리들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일은 지금의 능력있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제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열매를 맺어도 그 근원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도 상급이 적지 않는 것이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곧 큰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일이 아무리 작아도 모든 것에 겸손함을 가지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고 건성건성 하는 사람 치고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기에 사도행전을 통해 오늘날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기본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기본이 무엇인지를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오늘 말씀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본 신앙생활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늘 말씀에는 사도의 가르침 속에 말씀이 있고 성도들의 교제가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기본, 틀의 일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과외에 시달립니다. 저는 서울 살 때 하나뿐인 아이에게 한두 가지 과외 공부를 시키다가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중학교 2학년 때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 아들이 나이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사회생활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외공부시키는데는 일정한 틀이 있습니다. 기본으로 국, 영, 수, 그리고 예능으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기타 다른 것, 다음으로 체육으로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등등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과외를 시키는 것은 지식과 예술과 체육으로 하나의 틀을 만들어 아이를 키워나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무려 8가지의 과외를 하는데 그 엄마는 한 두 가지 더 해야한다고 말하기에 저는 그 아이가 기절하지 않고 사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틀을 벗어나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이요 그 아이는 끝내 탈진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어떤 틀로 형식으로 만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더더구나 과외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 각각 그 신앙생활의 바탕과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들여다 볼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의 기본을 아셔야 내가 나아갈 바를 정하고 다른 성도들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것만이 다 옳지 않고 남들의 신앙생활도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귀하지만 남들의 신앙도 귀한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기본은 어떠해야 하는가?
제가 여기 이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함께 다짐하고 고백한 그 해의 표어들은 모두가 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기본 틀 속에서 진행한 것입니다. 기도, 말씀, 찬송, 예배, 그리고 올해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으로 끝인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봉사와 교제의 열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신앙생활의 근거요 시작과 끝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근원이요 궁극적인 판단과 가치와 행할 바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오늘 말씀에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통로, 소통의 길입니다. 기도 외에는 하나님과 소통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받은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와 함께 기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 자에게 하나님은 나머지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응답을 주십니다. 더더구나 우리의 기도는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려드리는 향연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8장 3절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기도는 신앙의 나침반으로 우리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주는 하나님 계시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하고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구속에 감사하는 우리의 고백임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신령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그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그 어떤 감동도 고백도 없다면 그것은 찬송이 아니라 노래자랑이요 허공을 치는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가장 순수하고 정결한 예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찬송은 남아 세세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이 이 찬송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 찬송을 표어로 삼고 고백했던 시편 117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 드릴 가장 깨끗하고 귀중한 예물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전도는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이 명령하신 지상의 사명이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가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 70인을 파송할 때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 자신이 전도의 귀한 사명이 있었음을 말씀하시고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 말씀을 보시겟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주님은 또한 하늘로 올리워가시면서 모든 나라와 백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게 있으리라 하시니라“
전도와 선교는 주님이 우리에게 이르신 지상 명령이요 최고 최선의 사명입니다. 한 영혼을 구하려는 우리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전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봉사와 헌신입니다. 모든 교회는 성도들의 기도와 피와 땀과 눈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의 봉사와 헌신은 한 교회나 기독교 단체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선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적십자사를 만든 앙리 듀낭도 그리스도인입니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도 당연히 그리스도인입니다. 흑인들의 아버지 슈바이쳐 박사는 목사요 의사로서 아프리카 오지 콩고의 람브레네에 들어가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섬기는 봉사를 하면서 우리들 기독교인들의 봉사가 무엇인지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의 헌신과 봉사 중에 특기할 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이 향유는 장정 일년 동안 품삯이 되는 300데나리온이라는 값비싼 향유입니다. 이 여인은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은 것인데 이를 본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쓸데없는 낭비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여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과 그 일을 행한 여인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말하여 기념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의 헌신이 이웃과 세상을 향한 섬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 또는 섬김의 핵심이 주를 향한 것이어야 함을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기도와 헌금으로 주님의 몸된 이 교회의 주의 일들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시찰회, 노회, 남녀 전도회 그리고 다른 여러 기독교 단체 예를 들면 YWCA YMCA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모든 성도들은 친교와 사귐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그 백성의 삶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우리들의 신앙으로 고백하는데 사실 성경, 사도신경, 주기도문에 나오는 모든 기도와 신앙의 고백이 내가 아니라 우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나 한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라는 성도들의 교제와 어울림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서로 교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들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의 교제 속에 하나님이 이르신 그의 나라와 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주일마다 공동식사를 하는 이유도 바로 성도의 교제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공동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라는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말씀, 기도, 찬양, 전도, 봉사와 헌신 그리고 교제,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채워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봉사와 헌신과 교제의 기본 신앙을 모두 실천하고 고백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을 완성하는 시간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이 예배시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예배, 거룩한 산 제물의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래서 우리들 모든 신앙의 다양한 행태는 크고 작은 물줄기를 이루어 예배라는 바다로 나아가 모든 신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우리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거룩한 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중요한 신앙생활의 기본중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한 가지 주제로 말씀드리지 않고 상당히 무게있는 주제 7가지를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만 가지고도 몇 날 며칠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한 눈으로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기본을 살펴보면서 봄이 되고 씨뿌리는 달이 되어 금년에 나의 행할 바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근본이 되는 말씀, 기도, 찬양, 전도, 헌신과 봉사, 교제, 그리고 신령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 헌신 봉사하면서 주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