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와 관련된 6진설치 김종서를 올린바 있는데 이번을 끝으로 저희가문을 한 번 더 올립니다.)
4대가 대과 급제...
우리 순천김씨(본래는 경주김씨) 족문(族門)엔 벼슬한 사람도 많고 대과에 급제한 사람도 많지만....
여물할아버님(시호:장의) 가문같이 4대가 대과에 급제하여 위국헌신한 집안은 흔치 않을 것...
여물할아버님은(13대조) 알성시에(국왕이 친히 시험장에 나와 시험 주관)장원 급제한 수제였으나...
충주도사,담양부사,의주목사를 역임하시고..애석하게도 임진왜란시 신립장군과 함께 충주탄금대에서..
순절하심으로(신립장군의 종사관으로 출전)...그 높으신 뜻을 채 펴지도 못하셨습니다.
여물할아버님의 아드님이신 류할아버님(호:북저.시호:문충.)은 우리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도 모른 이가 없는...
일찌기 대과(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차석)에 급제하여 6조와 내외직을 두루 경험하시고....
인조반정에 총책임자로써 반정에 성공하여 1등공신으로 영의정만도 세차례나 역임하시며...
정묘,병자호란시엔 나라가 백척간두에 처했을 때 그야말로 국난을 온 몸으로 막아낸 나라의 큰 어르신..
류할아버님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류할아버님의 아드님이신 경징..
역시 대과에(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급제하여 한성부판윤(서울시장)을 역임하시고...
병자호란시엔 강화도 방어총책임을 맡으신 분...
안타갑게도 강화도 방어 실패하여 책임을 물어 류할아버님의 유일한 아드님은(독자) 인조의 아량에도 불구하고...
반대파들의 온갖 모략과 빗발친 상소에 못이겨 결국 사약을 받고 돌아가시게 됩니다.
경징할아버님의 아드님이신...
진표할아버님 또한 대과에(별시에 장원급제)급제하시어 충청도 청풍군수,이조참의를 역임하신 후....
안타갑게도 젊은 나이에 병사를 하시게 됩니다.
조선시대엔 음서제도가 있어 대과에 급제를 못하더라도 관직에 나갈 수 있었으나...
여물할아버님 집안처럼 4대가 실력으로 당당히 대과에 급제한 집안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할아버님들 치적을 일일히 기술하지 못합니다만 특히 류할아버님은 온갖 영욕을 겪었습니다.
남한산성 영화를 보셔도 아시겠지만 미쳐 강화도로 피난을 못가고 인조를 모시고 문무백관들이..
남한산성에서 청군과 싸울때 영의정을 하시면서 당한 고초는 이루 말로 표현 불가였습니다.
상기 네 할아버님의 할머님들은 강화도가 청군에 함락되자 스스로 강화도 푸른물에..
뛰어내려 절개를 지키셨습니다. 나라에서 4세충렬문을 세워 그 뜻을 기르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습니다.(안산시소재)
~참고문헌:북저선생실기(조선왕조실록발췌).순천김씨세적총람.순천김씨대동보(2004.갑신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