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시골에 살 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전기불도 켜지 못하여
밤이 되면 석유로 등잔불을 켰다. 바깥에 나갈 때는 바람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사방을 문종이(한지)로 바른 호롱불을 들고 나갔다. 석유도 사려면 이십리나 걸어
나가야 하는 반성장이나 군북장에 가서 정종 됫병에 한 되씩 사오곤 하였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으므로 라디오나 냉장고가 있는 줄도 몰랐고 음식은 날이
더운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실겅 위에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올려 삼베 보자기를
덮어 보관하였다.
유난히도 덥던 여름이 어느듯 지나가고 온 산하가 만산홍엽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벌써 낙엽이 길가에 수북이 쌓이는 만추의 계절이다. 며칠전부터 기온이 팍팍 떨어져
밖으로 나가면 날씨가 제법 쌀랑하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믿고 스마트폰에 만보계 앱을 깔아 매일 걷기를 실행하고 있으니 춥다고 밖으로 안
나갈 수가 없다. 옷장 속에 깊숙히 들어있는 겨울옷을 꺼내 입고 나간다.
예전에 마산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내려 와 망미동에서 셋방살이를 할 때 당시 일본항공
(JAL)에 다니던 주인집 서너살 먹는 머슴애가 자기집에는 냉장고가 있다고 자랑을 하였다.
아마도 새 냉장고를 들려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우리집에는 책이외엔
옷이나 이불을 넣는 농밖에 가재도구라곤 별로 없었고 쓸만한 물건이라곤 마누라가 시집
오면서 갖고온 17인치짜리 TV밖에 없었다.
셋방살이 하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부자가 된 기분이다. 작년에 작은 딸이 새로 바꿔준
대형 냉장고가 있고 또 김치 냉장고에다 예전에 연구실에서 쓰던 작은 냉장고가 있다.
그리고 큰 아들이 사다 준 와인쿨러도 있는데 그 속에는 와인뿐만 아니라 비상용으로 다른
음식도 보관하니 냉장고에 포함시켜야겠다. 이렇게 우리집에는 냉장고가 서너개가 되어도
내부에는 항상 풀업(full up)이다. 왜냐하면 집사람이 먹던 음식이라도 잘 버리지 않는 성미
라서 냉장고 속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자 냉장고가 차서 들어가지 못하는 반찬
그릇이 베란다로 밀려 났다. Natural refrigerator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