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유령들 - 나의 기쁜 동기들 / 이기영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 하나로 섞여 있는 사람이 당신이기도 하고 그 당신 중 하나가 나이기도 해서 당신과 내가 가끔 어울려 다녀도 어색하지 않았다
내일은 막막하고 나는 더 기다릴 게 없어서 나빠질 것도 없는 하루하루를 갉아먹었다 반복해서 금요일만을 살고 있었다 배후가 없는 금요일 빽도 없는 금요일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안 되는 것들 위로 자꾸 금요일이 걸려 넘어졌다 굴꺽, 눈물 젖은 빵,
졸렬함을 빙자해 집요하게 술잔을 꺾었다 위로를 안주 삼아 가면을 숨겼다 안색만 다를 뿐 배역은 같았다 너 대신 내가 죽어 줄까 호기롭게 뱉어 버리는 말들은 미안하지도 미안해지지도 않았다 침을 튀기며 같은 시간을 똑같이 나눠 마셔도 언제나 각기 다른 층위의 게산법, 뒤돌아서는 순간 더 치밀해졌다 가끔 아주 가끔 장례식에 초대될 때마다 벌건 육개장 국물에 비친 맨얼굴을 확인하곤 했다 서로의 안부나 이름은 끝끝내 잠잠했다
-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걷는사람, 2020.12)
* 이기영 시인
1958년 전남 순천 출생,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2013년 《열린시학》 등단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인생』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디카시집 『인생』
2016년 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 2018년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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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상 ]
세계에 대한 의문을 멈추지 않는 살아 있는 유령의 시(詩)
걷는사람 시인선 36번 작품으로 이기영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서 “사라져 가는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민활한 감각”을 선보였던 이기영 시인이 이번에는
“살아 있는, 유령”들의 입을 빌려 버림받은 인간과 단절된 세계를 고발한다.
2020년의 핵심 키워드를 꼽는다면 단연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좀비가 될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이러스 형태로 순식간에 퍼져 인류의 물질 및 정신 세계를 좀먹는다는 것.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은 한계치를 모르는 자본주의에 함몰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이기영의 시편들 속 ‘유령’은 좀비 영화 속 주인공처럼 괴력이나 뛰어난 머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대한 “의문”을 멈추지 않는 자로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살아 있는, 유령들?마침표」)며
“익사하지 않아도 모두 빠져 죽는 곳”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유령이 바라본 세상은
“산 자가 죽은 자의 눈을 파먹”으며 사는 곳, “죽은 자가 산 자를 묻”는 “거대한 묘혈”
(「살아 있는, 유령들?살처분」)이다.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존재를 무화시키는 이 냉정한
세계의 게임은 언제 끝이 날까. “개 같은 날들”에 과연 끝이 있기는 할까.
- 신동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