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것 중에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삶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사람이 누릴만한 것들의 무한성을 점점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영원히 이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그 종류만을 말하는 것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그 성격도 매우 다양하죠.
누리는 것들 중에는 소모하는 것이 수반되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먹는 것들 중에는 자연적인 것들과 인간의 창작이 곁들여진 진 것 즉 요리가 있습니다. 먹어 치운다는 말이 있죠.
듣는 노래나 보는 경치는 아무리 그것을 즐겨도 소모되지 않죠. 다른 사람과 어떻게 나눌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비물질인 것, 영적인 것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누려도 소모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연적인 경치, 밤하늘의 광경 같은 것은 누가 그것을 만들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죠. 그러나 음악을 듣는 것에는 사람의 수고가 반드시 수반되죠. 이처럼 누리는 것에는 물질적인 소모나 동료인간의 노고가 수반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고 노동은 하려 하지 않고 누리려고만 하는 것은 부도덕하거나 악한 심지어 범죄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부르주아들은 하루라고 일찍 죽어주는 것이 그나마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죠.
마음 편하게 부담 없이 누리기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요리를 해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거나 물건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누리기 위해 기기가 필요하다면 그 기기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역시 상상이상으로 많습니다.
지하자원 같은 관련 재료들을 수집하여야 하고 그것들을 가공하여 부품들을 만들어 조립하여 생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죠. 돈은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수적이고 그 모든 과정에 필요한 것이 돈입니다. 특허권에 대한 비용부터 들어가는 비용의 종류도 그것을 다 알기가 어려울 정도죠.
그런데 그 생산하고 창조하는 과정, 개척하고 개발하는 과정은 전혀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중에 어떤 것은 누구나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러하며 요리를 하거나 무엇을 만드는 것 자체가 취미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죠. 밭을 가꾸고 재배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고 누가 요구하지도 않는데 봄에 산나물을 뜯으러 가는 것이죠. 예전 같으면 가족에게 입힐 털옷을 콧노래를 부르며 뜨개질하기도 하였죠.
자기 집을 짓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 따르는 노고를 고역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부득이하게 남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막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요.
본래는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누리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결코 누리는 것이 아닌 부득이한 일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인간들이 그러한 일과 관련되어 있죠. 탄광 같은 데서 벌로 혹은 생계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부득이하게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이라 할지라도 도무지 누구에게 유익을 준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일들도 많습니다. 정치질 같은 것들이 그러하죠. 그것은 정말 무익하고 언짢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설득하여 보험 같은데 들게 하거나 물건을 사게 하는 영업행위가 진정으로 달가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의사나 법조인들이 하는 일이 혹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 할 수 있을지언정 그게 본래적으로 누리는 즉 즐기는 일이라고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하는 일들도 그러하죠. 사업가, 상인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경제인들도 그러하고 돈을 다루는 금융인들도 그러합니다. 관련 일들이 생업이라 부득이 하지만 삶을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닌 일이죠.
아침에 벅찬 설렘과 희망으로 마치 애인과 데이트하는 것 같은 기대로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됩니까? 산업사회의 한 부품처럼 된 것에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은 결코 삶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헛되이, 불명예스럽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을수록 큰 권력이 있을수록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추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죠.
그러나 어떤 재벌이, 어떤 통치자가, 역사상 어떤 대제국의 황제가 진정으로 그런 삶을 누리거나 누렸다는 것입니까?
인간들은 이점에 있어서 망상과 헛된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창조의식과 그에 수반되는 사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속의 모든 정치와 종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제한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린도 전서 7장 30, 31절입니다.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그들에게도 소유물이 필요하고 경제적으로는 세상을 이용할 필요가 있어 그런 활동을 하기는 해도 그들의 마음은 그것에 전혀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언제든 그것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다음 구절입니다.
이 세상의 장면은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7:31)
세상의 지금의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 버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2장 15~17절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려면 돈도 필요하고 살림도 필요하죠. 그러나 사랑한다고 할 정도로 그것에 집착하거나 욕망하지는 않죠. 그런 것들은 곧 지나가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이든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으로만 가득 찬 세상, 그런 장면들로만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