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제도
인도 카스트 계급의 구성
카스트제(카스트制, 신분제)는
세계의 수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일정 신분계층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신분의 분류는 주로 집단의 경제력, 정치적 권력, 사회 문화에 기인되어 이루어진다.
카스트제 아래에서, 특별한 정변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매우 우수한 사례 등의 예외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계층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카스트제는 주로 인도의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카스트제의 풍습이 남아있고,
대략 2억 5000만 명 정도의 세계 인구가 카스트제로 인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
1. 용어의 유래
대항해시대에 인도와의 항해무역을 하던 포르투갈인들과 스페인인들이
사용했던 '카스타(포르투갈어: Casta)'라는 용어로 부터 유래하였는데,
그 용어는 '순결한' 혹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포르투갈인들의 14세기의 인도의 사회구조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기인한 인도 문화나 종교적 전통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해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는 고대 사회전통과 힌두교의 법과 연관이 크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18세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였을 때부터
영국인들에 의해 이 제도는 '카스트(Caste)'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2. 인도의 카스트제도, en:Caste system in India
인도에는 현재에도 카스트제도가 사회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카스트를 산스크리트어로 색이라는 뜻에서 바르나(Varna)라고 부른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엔 주요 4개의 계층이 있다.:
계층 명칭 종사 직업 사회적 업무
- 브라만 : 성직자,학자 등. 사회인의 교육과 힌두교의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일
- 크샤트리아 : 왕족,귀족,무사,장교,경찰관 등. 사회 제도와 안보를 유지하며 국가를 통치하는 일
- 바이샤 : 농민,상인,수공업자,연예인 등. 생산 활동과 관련된 일
- 수드라 : 잡역,하인,청소부 등. 육체 노동과 관련된 일
가. 카스트 제도의 본 목적
카스트제도의 원래 목적은 사람을 계급순으로 나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분업에 목적이 있었다. 다시말해 성직자, 무사, 경찰관 등 각각의 일을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카스트인 사람들끼리 결혼하게 한 것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하였을 때 서로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올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카스트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뜻이 변질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카스트의 본 목적은 다르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리안이라는 백인들이 들어와서 선주민들인 혼혈족을 지배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주민들과 혼혈 뿐 아니라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고자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제도화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보는 것이다.
나. 카스트 아래의 카스트 / 파리아(Paraiyar - 불가촉천민)
카스트 아래의 카스트 계층으로서, '불가촉 천민'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악의 구현으로 악마,악귀 등 사회악으로서 다른 계층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힘든 일을 하거나 가죽을 다루는 일(무두장이), 시체를 다루는 일,
구식 화장실의 변을 정리하는 일 등의 더러운 일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파리아들은 인도에서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회적인 것을 포함, 모든 면에서 격리 수용되어 생활을 한다.
파리아라는 단어를 인용한 용어로는
막스 베버의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라는 용어가 있다.
파리아는 다른 일반 인도인과는 달리 모든 종류의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는 파리아가 잘해서가 아니라 '파리아는 이제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때까지
타락했고 더러울 수 없을 때까지 더러워진 저주받은 카스트'라는 인식이
인도인들의 머릿속에 깊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아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격리 수용되고 사는 지역도 격리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사용하는 우물조차 격리되어 있는데
파리아 전용 우물은 동물의 뼈로 그 주위를 둘러쌓아 표시해둔다.
만약 파리아가 다른 카스트와 신체적 접촉이 발생될 경우
(심지어는 인도 카스트 중 최하위라는 수드라와 신체적 접촉도 마찬가지)
죄로 다스리게 되고 심지어 이 사유로 파리아를 죽일 수 있다.
3. 다른 지역의 카스트제
가. 중국
중국을 지배한 원나라 왕조는 중국 대륙의 민족에 따라 계층을 분화시켰다.
민족, 종사 직업, 인구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 몽골인 : 황족,집권 계층 1.5%
- 색목인 : 중간 관리 등 고위층 1.5%
- 한인(漢人) : 하급 관리,군인 등 14% - 중국 북부의 일부 토착민
- 남인(南人) : 생산 활동 83% - 나머지 중국대륙 원주민
게다가, 몽골인들이 중국을 점령했던 다른 민족들과 달리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유력한 이유로써 원 왕조의 카스트제를 꼽기도 한다.
나. 일본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유교적 영향을 받아
자국 백성의 계층을 직업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나누었다.
일본의 제일 윗계급의 선비(士) 개념은
중국이나 조선과는 달리 무인계급을 일컫는 개념(사무라이)이었다.
특히 그 사무라이들 중에 독립적인 성주로서
영지가 1만석을 넘어가면 다이묘(大名)이라는 신분으로 대우하였으며
다이묘는 자신의 영지 내부에서만큼은 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카스트제 아래의 카스트 계층은
부라쿠민으로, 막노동을 하던 더러운 자들로 여겨졌던 계층이다.
현재도 일본에는 부라쿠민들을 비공식적으로 차별하는 관행이 있다.
다. 한국
신라시대의 카스트제는 골품제로 대표된다.
골품제에는 다음과 같은 계층이 있다. : 성골, 진골, 6-1두품
성골 계층은 법흥왕 직계 일가이다. 선덕, 진덕 두 여왕을 끝으로 사라진다.
이후 진골인 김춘추가 신라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된다.
진골 왕족과 귀족들로 이루어진 최상위 집단이다.
이들은 특권 계층으로 모든 등급의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5관등 이상의 직위에는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고위 요직은 대부분 진골층이 차지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의 관직 독점으로 인해 형성된 하위 카스트 계층의 사회 불만은
후에 신라가 망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왕족 김씨와 왕비족 박씨, 금관국 왕족인 가야계 김씨 등이 진골층을 이루었다.
6두품 계층은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지식인 계층이나,
신라의 카스트제(골품제)에 의하여 의를 펴지 못했다.
이들은 후에 반 신라세력이나 지방 토호에 가담하거나 은둔생활을 하게 되며
특히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많은 6두품들이 왕건의 부하로 들어갔다.
신라시대의 관직표를 보면 4두품부터 관직에 오를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나 4두품은 황색 조복인 12. 대사까지,
5두품은 청색 조복인 10. 대나마까지,
6두품은 비색 조복인 6. 아찬까지밖에 승진이 불가능했다.
즉 자색 조복에 해당되는 5.대아찬~ 1.이벌찬까지의 직책은
성골 아니면 진골, 즉 신라 왕족의 혈통을 지닌 자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3두품 이하는 사실상 평민으로 봐도 무방하다.
조선왕조에서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대표되는 카스트제가 성립되었다.
이는 고려의 카스트제(귀족/중류/양민/천민)을 계승한 것이다.
양반계층의 하인(노비)일을 하거나 도축업을 하는 자들은 천민계층으로 분류되었다.
고려나 조선의 카스트제에는 중인이라는 카스트 신분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기능직을 주로 담당하는 계층으로서 실리적이었고 상업적이었다.
이 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무능함이 폭로되고,
조선 정부의 공명첩 발행으로 인하여 크게 흔들린다.
아직도 한국의 일부 지역(안동의 집성촌 등)에는 양반 일족이 남아
그 명맥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회 통념상 전통적인 신분제의 잔재는 한국 전쟁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
이른바 '사농공상 (士農工商)'도 신분제이다.
요즘도 양반이나 선비를 흉내내는 사람이 간혹 있으니 시대착오적인 삶이다.
라. 유럽
유럽의 봉건적 카스트 계층에는 한 국가의 총 통수자인 국왕과
국왕과의 종속관계에 있으면서 국왕의 지방영토를 통치했던 영주계급과
전투를 담당했던 기사계급으로 대표되는 귀족계급이 존재했고,
크리스트교 성직자 계급이 존재했다.
영주 계급에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5개 관위가 존재했으며
공작보다 더 상위의 개념의 신분을 대공이라 칭했다.
대공의 경우 왕과 동일하게 개인 소유의 국가를 갖고 있을 수 있으며
현재도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등의 공국이 남아있다.
생산 계층으로서는 농노계급이 존재했다.
유럽 카스트의 특징은 귀족 계급에게 권리를 양도하지 않았던
시민 계급(자유민)이라는 계급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 도시에 거주하던 시민들이었다.
형식적으로 국왕에 속하였고, 납세의 의무를 졌으나,
그 외의 다른 의무는 부여받지 않았다.
농노계급들도 영주로부터 도피하여
도시에서 1년 동안 체류하게 되면 자유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훗날 성직자 계급과 귀족 계급은 시민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