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오토바이
두메산골에 사시는 90대 초반 할아버지와 80대 중반인 할머니는 마당에서 사이좋게 들깨타작을 하고 계신다.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 한 아름을 털어보았자 한줌이 될까 말까한 분량의 깨알이 나온다.
그래도 봄부터 애써 키워 온 땀의 결실이려니 하고 소중하게 거두시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식들을 키워 객지에 보내고 마을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두 분이 살아가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더러 도망을 가지 말고 끝까지 같이 살아가자고 농담반 진담반의 속내를 내 보이신다.
수십 년간 부부라는 고유명사로 다져진 인연임에도 요즘의 세태가 못마땅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할머니는 자신을 향한 그러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든든한 반려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의 골굵은 주름살도 아름답고 정겨워 보인다.
아침밥을 먹고 난 후 할아버지는 헛간에 세워 둔 조그마한 오토바이를 꺼내 와 기름을 채우신다. 프라스틱 말통에서 기름을 내려붓고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새까맣게 때묻은 헬멧을 머리에 두르셨다.
할머니는 그러한 할아버지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셨다 커다란 사고가 난 적도 있고, 그 나이에 기계를 만지는 것도 그렇거니와 추위에 바람막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시는 것도 안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으시다. 농사일이야 허리 굽어도 할 수 있지만 걸음을 걷는 것은 허리가 구부러져 매우 힘드시다.
그래서 몇 번이나 사고가 나서 땜질이 된 오토바이를 끌고 집을 나서시는 것이었다. 이유야 어째든 오토바이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애마이다.
할아버지가 도착한 곳은 남들은 다 수확을 끝낸 마을 건너편의 논이다.
혼자서 수천 평이나 되는 농사를 지으니 주변에선 자식들이 거들어 주지도 않느냐?며 걱정들을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트랙터 비용을 보내주기 때문에 농사일을 거드는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시다.
어차피 산골에도 벼 수확을 위해서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낫으로 논 가장자리의 벼를 베어내고 계신다. 트랙터가 들어서려면 가장자리를 비워 두어야하는 것이다.
구부정한 허리로 볏단을 안아 논바닥에다 놓으시는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남들은 하나같이 이제 농사일을 그만 두시라고 말하지만 당신이 수고한 결실로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셨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을 하시다 말고 건너편 마을 뒤 하늘을 올려다보신다. 그 하늘엔 하얀 솜털구름이 뭉게뭉게 아들네가 살고 있는 서울하늘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문장 후기]
엇그제 고향을 갔다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가로질러 가보지 못했던 더 깊은 골짜기 동네들을 구경했다 동네마다 비닐하우스가 있고, 비온 뒤의 나뭇잎은 더 푸르며 골짜기 냇물은 소리내어 흘러내렸다.
고유한 특색없이 앞다투어 수익창출에 매몰된 농촌 환경들, 산야에 보이는 사람보다 자동차들의 통행이 더 많았다.
모임의 분위기도 현실적이다. 모두가 승용차를 운전하니 그 흔한 막걸리 한잔 권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100여호 살았던 마을엔 빈집이 더 많고, 젊은 60, 70대들은 하루종일 비닐하우스 속에서 딸기, 수박 등 과일을 재배하고 출하한다.
자식은 먼 도회로 떠나고 몸아픈 노인세대는 60대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을 받는 상부상조(?)의 현실이란다.
글에서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황은 그래도 기차역이 있고, 도로가 잘 발달된 나의 고향 상황보다 더 깊은 시골 광경이 된다.
본문에서 트렉터가 등장하는건, 예전에는 손농사 짓고, 한낱의 벼라도 버려진게 아까워 이삭줍던 농촌이 이제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손길마져 떠나면 우리들이 뛰놀았던 농촌은 폐허로 변하고 말것인가? 그게 궁금해진다.
때론 숨가빠하며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아가는 도심의 무리들에게 자연속에서 남은 여생을 활동하며 보낼 수 있는 계기 마련은 없을까? 하는 공상을 해보았다. 나는 언제까지 그러한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