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월 30일 침실에서
“어찌하여 내 백성은 자기 시련만 바치려 하느냐?
네가 기쁨을 바칠 때, 그것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
가장 작은 네 기쁨까지 큰 사랑으로 바치도록 하여라.”
1943년 2월 11일 르프렌 성당
“사람들이 '하느님은 매우 친절하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친절하시다. 너도 나와 똑같이 그래야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류인가! 사려 깊은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너는 나중에야 알게 되리라.
어둠 속을 걷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여라, 내 손이 너를 이끈다는 것을 믿으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내게 더없이 큰 모욕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그토록 작고 연약한 아이야, 너 자신에게 거듭 말하여라. '제 크신 친구가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이야말로 모든 것이십니다.'
네가 넘어질 때 더욱 겸손해지고, 내가 갈바리아로 가는 험한 길에서 몇 번이나 넘어지며 어떻게 그 값을 치렀던가를 기억하여라. 사랑 안에서 그 사실이 힘이 되도록 하여라. 우리에겐 사랑만이 중요하며, 삶의 유일한 불행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보잘것없는 것들이라 해도 모두 그분께 드리도록 하여라.
네 목표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라. 너 자신을, 내면의 자아까지도 모두 잊어버려라.
불성실함을 뉘우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도록 하여라.
네가 어디에 있든 하느님 앞에 있어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여라.
나는 여기에 있다. 기쁜 마음으로 오너라. 네가 지닌 기쁨을 잊지 마라.
기쁨은 네 사랑을 드높인다.”
1943년 2월 13일 영성체 후에
“네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들, 곧 말을 다스리는 것이나 내 현존에 대한 생각은 내 어머니가 도와주신다면 쉬워질 것이다.
그분께 도움을 청하여라. 나는 내 어머니께 막달라 마리아와 거룩한 여인들을 맡겼다. 그들처럼 하여라. 그분을 떠나지 마라.”
성목요일
“주님, 당신께 제 아름다운 정원에 와서 쉬시기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이 정원은 네 영혼이며 이 꽃은 네 생각이다. 나는 네가 죄인들에게 온정을 느낄 때 겟세마니에서 겪은 내 고뇌를 잊는다.
네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바칠 때 나는 유다의 증오와 탐욕을 잊는다."
나는 복되신 성체를 아침에 두 번, 오후에 두 번 방문했고, 저녁에 한 번 더 방문하려고 했다.
“일 년에 단 하루를 나에게 바치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내 성체 현존은 한순간도 네 곁을 떠난 일이 없었다. 나는 기쁘고 다정한 마음으로 너희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고 싶어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어찌 단 하루에 비길 수 있겠느냐? 성심 축일을 기억하여라.”
성토요일, 르프렌 성당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나와 함께 일어나 새로운 삶, 더 나은 삶, 나와 더 가까운 삶으로 들어가자.
언제나 내게 더 가까이 오너라. 내게 도와 달라고 청하고 그 청원이 꼭 이루어짐을 믿어라.”
부활 대축일, 르프렌 성당
성체강복 동안 내가 말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내 사랑하는 이여.”
“내 사랑은 죽은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그와 나(가브리엘 보시의 영적일기) 192-193p / 바오로 딸
저자: 가브리엘 보시 Gabrielle Bossis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으로 1874년 낭트에서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교양 있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사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으며 '예수의 참 동료 학교'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그는 1886년 열 두 살에 첫영성체를 했으며 그림·음악·조각·성악· 자수·무용을 비롯해 당대에 유행하던 여러 스포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여러 차례 청혼을 받았으나 자기 길이 아님을 알고 거절했으며 종교적 감수성에 충실했다.
190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4년 후 언니 클레망스도 선종했지만 그는 자기 안에 갇혀 지내지 않고 교리를 가르치며 선교회를 위한 전례 용기 제작소에서 일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얻어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간호사로 활약했으며, 교훈극을 써서 프랑스와 해외에서 주인공역을 맡아 연기했다.
젊은 시절에 신비스러운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지만 내적 대화는 62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50년 6월 9일 선종하기 2주 전까지 계속되었다. 1949년 유방암이 발견되었고 1950년 폐에 전이되었으나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첫댓글 <네가 어디에 있든 하느님 앞에 있어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여라.>
아멘. 아멘!!!
제게도 이루어지기를 티없으신 성모님을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