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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몰래 흐르는 눈물-루치아노 파바로티/Tears in secret-Luciano Pavarotti
개성관광은 2007년 12월 5일부터 2008년 11월 28일까지 시행된 대한민국 국민 대상 관광 프로그램이었다.
2000년 현대아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맺은 공업지구건설에 대한 합의서와 2007년 백두산, 개성관광에
대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현대아산이 대한민국 통일부에 관광사업 승인을 받은 후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에 앞서 2005년 8월에는 3회에 걸쳐 개성시범관광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실험으로 몇 년간 연기된 후 2007년 11월 3일 현대아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사이에 민간인 관광
허가서가 마침내 작성되었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출발하여 군사분계선을 지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도착한 후, 고려
오백년 도읍인 개성의 문화유적인 박연폭포, 선죽교, 숭양서원(崧陽書院), 고려박물관, 왕건왕릉, 공민왕릉 등을
관람하는 일정이었으며 개성 특산물로 구성된 11첩 반상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설원이 동행했다.
관광시작 1년 만에 11만 2천명이 다녀온 개성관광은 동해의 금강산과 더불어 남북문화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대아산은 하루 일정으로 진행되는 개성관광을 다양한 상품개발로 숙박이 가능한 체류형 관광으로 개발할 계획이었다. 몇 개월 후,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으나 개성관광은 몇 달간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개성관광마저 끊기면 기껏 시작한 햇볕정책이 물거품이 된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몇 달간은 계속 유지했으나 결국 2008년 한 해를 못 넘기고 개성관광도 11월 28일 중단되어 개성관광은 불가능해졌다.
출처: 위키백과
나는 북한을 방문 가능할 때 가 본다고 금강산관광도 다녀오고 개성관광 가서 박연폭포, 선죽교, 자남산 여관,
숭양서원, 왕건왕릉, 공민왕릉, 개성공단 등을 보고 왔는데, 완전히 통제된 사회가 북한임을 피부로 느끼고 왔네.
대사9회 재구 동기 김준환 교장이 카톡으로 보내준 글
※ 개성관광 시작 자남산 여관(인터넷)
※ 개성공단 파노라마(나무위키)
※ 개성 만월대(다음백과)
※ 선죽교(다음백과)
※ 공민왕릉(다음백과)
개성관광
출처: 28/凡侶 김경일
관광객 맞는 개성 개성관광 첫날인 5일 점심식사 장소인 통일관 입구에서 북측 여성 접대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개성관광 첫날인 5일 개성시 박연폭포 앞에 차를 파는 북한 여성이 남측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
“와~ 박연폭포”… 첫 개성관광 개성관광 첫날인 5일 남측 관광객들이 한국 3대 폭포중 하나인 박연폭포를 둘러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개성관광 개시 첫날인 5일 개성시 박연리 박연폭포를 찾은 관광객들이 북측 해설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개성관광 첫날인 5일 남측 관광객들이 한국 3대 폭포중 하나인 박연폭포를 둘러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여기가 선죽교” 현대아산이 5일 북한 개성 주변을 둘러보는 개성 본 관광을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고려 말 문신인 정몽주가 살해된 장소로 유명한 선죽교를 구경하고 있다. |
관광객 맞는 개성![]() 개성관광 첫날인 5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무소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관광증을 보여주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관광객들이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를 둘러보고 있다. 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관광객들이 정몽주의 집터에 세워진 숭양서원을 둘러보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관광객들이 박연폭포를 둘러보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이번 관광 최고령자이자 개성이 고향인 김윤경 옹(88)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관광객들이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를 둘러보고 있다. 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5일 시작된 개성관광에서 관광객들이 고려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
개성 관광요금 1인당 18만원, 교통·밥값 포함…3개코스 운행 다음달 5일부터 매일 300명씩 박연폭포 현대아산은 다음달 5일부터 시작하는 당일 개성관광 요금을 1인당 18만원으로 정했다. 18만원에는 현지 교통비, 밥값, 여행자 보험료 등이 들어 있다. 매일 300명씩, 버스를 이용한 개성관광은 박연폭포반·왕릉반·영통사반 등 3개 코스로 진행된다. 기본 관광일정으로 오전에 황진이, 서경덕과 함께 송도 3절의 하나인 박연폭포와 관음사를 관람한다. 오후에는 개성의 옛모습을 간직한 민속여관을 둘러보고, 고려 시대 유물 1천여 점이 있는 고려박물관(옛 고려 성균관)과 고려 충신 정몽주가 숨진 선죽교 등을 둘러본다. 점심때 관광객들은 북쪽 식당인 민속식당과 통일관에서 개성약밥 등 개성의 전통 음식을 먹는다. 일정을 마치면 개성공단을 경유해 오후 5시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대아산은 박연폭포와 관음사를 관광하는 박연반을 기본 코스로 운영할 계획이다. 원하는 관광객이 있으면, 고려 시조 왕건의 왕릉과 고려 말기 왕릉 형식을 대표하는 공민왕릉을 관광하는 왕릉반, 천태종의 시조 대각국사 의천이 창건한 영통사를 관람하는 영통반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개성관광 예약은 출발 10일 전까지 전국의 관광 대리점을 통해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관광이 없다. 현대아산은 30일부터 개성관광 홈페이지(ikaesong.com)를 열어 관광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
개성의 대표 관광물들![]() 현대아산은 개성관광을 12월 5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통일부에 사업승인을 신청했다. 개성관광은 매일 300명씩, 버스를 이용해 당일관광으로 진행된다. 요금은 현지 교통비, 식비, 여행자보험료 등을 포함해 1인당 18만원이다. 사진은 개성의 대표 관광지 박연폭포. ![]() |
개성의 대표 관광지 영통사![]() 개성의 대표 관광지 왕건왕릉 ![]() 개성의 대표 관광지 공민왕릉 ![]() 개성의 대표 관광지 선죽교 ![]() 개성의 대표 먹거리 13첩 반상기 ![]() 개성의 대표 먹거리 13첩 반상기 |
고려 오백년 도읍지 개성 관광
출처: 아림(娥林)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아름다우며 물이 수정같이 맑으며 층암절벽이 폭포수주변을 병풍처럼 둘러 싸고있다. 개성박연폭포는 높이 37m 넓이 1.5m로 금강산구룡폭포, 설악산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3대폭포중 하나이다. 나는 3대 폭포를 다 구경했다. ※ 금강산구룡폭포 전문작가 작품(인터넷) ※ 설악산대승폭포(명승 제97호, 인터넷) 송도삼색은 박연폭포의 절경. 유학자 서경덕의 기품과 절개. 황진이의 절색. 송도는개성의 옛이름. 보이는 바위는 용바위 박연폭포입구에 이 사랑 영원히 노래하다 박연폭포여 폭포 위쪽에 있는 직경 8m의 朴淵은 큰 바위가 바가지 모양으로 패여 생긴 것이며 그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솟아있어 흘러내린 물이 이 바위에 부딪쳐 박연에 담겼다가 폭포로 떨어진다하여 박연폭포라 한다. 박연폭포 위에 있는 '범사정' 정자는 날아갈 듯 앉아있어 박연폭포 주변 경관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준다.이 문을 통과하여야 관음사로 갈 수 있다. 아름다운 바위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이 음각되어있다. 나무가지에 영롱한 빗방울(박연폭포에서 관음사가는 도중에) 관음사는 고려시대의 법인국사가 창건하였다. 북한주민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고, 불경과 목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때가 묻어 얼룩져있고 삭발하지 않은 스님 한분만 보인다. 박연리 대흥산성 북문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관음사 앞뜰에 칠층석탑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피살된 선죽교(善竹橋) 善竹橋 한석봉 글씨이다. 선죽교바닥에 지금도 붉으스레한 핏자국이 남아있다. |
善竹橋 모습 개성 최고의 식당 통일관 통일관의 메뉴(13첩반상기) 메조밥, 닭국, 감자뛰김, 도라지무침, 고사리나물, 나박김치, 생선뛰김 쇠고기조림, 숙주나물, 계란반숙, 김부각, 도토리묵, 약밥, 술 양념없이 조리하여 입에 맞지 않아 실망 통일관에서 기념촬영 고려박물관은 고려의 역사, 경제, 과학,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1,0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곳으로 건물이 너무 초라하다. 고려박물관경내 고목 2008. 3. 28. ~ 30.(2박은 열차에서 관광은 29일 당일) 부전역에서 3월 28일 21시 21분에 출발 3월 29일 임진각역에 도착하니 비가내린다. 얼마나 기대했든 개성 관광인데 많은 비는 아니지만... 특히 사진하는 나로서 정말 속이 상한다. 10여 분을 달리니 도라산역 부근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북한출입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선 군사분계선을 넘어(8분 소요) 북한측 출입사무소 도착, 입국수속을 밟은 뒤 버스에 올라타니 안내원 2명이 동승한다. 개성의 도로는 자동차는 한대도 보이지 않고 자전거 타는 사람과 걷은 사람뿐이다. 우리가 타고 가는 현대아산의 10대 버스가 지나가도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는 고속도로인데 일부에 사철나무로 중앙분리대가 만들어져 있고 차선도 없으며 노면은 파손된 부분이 많아 고속도로로 믿기지 않았다. 또한 차 한대 보이지 않고 현대아산차만 가끔 보인다. 마을 길은 포장된 곳은 없고 논밭에는 퇴비를 군데 군데 모아 놓고(지게로) 집들은 획일적으로 지붕은기와이지만 마치 곧 넘어질 듯하다 마을에서 도로로 진입되는 길에는 북한군이 부동자세로 길 한가운데 서있는 모습이 북한의 실정을... 전주는 곧 넘어질 것 같고 전기줄은 3,000kw 사용하는 것으로 북한의 에너지 사정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산에는 전부 민둥산으로 땔감을 어떻게 조달하는지... 문 사장은 북한은 죽음의 땅으로 북한지도자를 성토한다. 우리나라 50~60년 시대와 같은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살고 자랑스러운지... ※ [북한노래]ㆍ고향의 봄 - YouTube 흐르는 곡은 '고향의봄' 북쪽의 안내원이 버스 안에서 불러 눈시울이 뜨거워진 노래이다. |
출처: 신바람투어/HL4CCM/김재호
북한 개성 관광
지난해 연말부터 개성관광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요관광지를 소개 합니다.
통일관 입구에서 북측 여성 접대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습니다.
범사정
개성시 박연리에 있는, 1700년에 세운 조선시기 건물로 우리나라 3대 명폭의 하나인 박연폭포를 옆에 끼고
대흥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언덕길 중턱에 있는 정자이다. '중경지'에는 1700년에 이 건물을 세우고 옛 이름대로
현판을 달았다고 쓰여있다.
박연폭포
개성시 중심으로부터 26km 산성리의 천마산과 성거산에 끼어 계곡에 있고 높이는 35m이다. 박연이라고
불리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고모담이라고 불리우는 직경 40m의 용추의 물가에, 큰 '용암'이 수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용추의 동쪽언덕에 범사정이라는 절이 있다.
옛날 어느 만월밤 박진사라는 청년이 불고 있는 피리소리에 홀려서, 이 호수의 용녀가 그에게 반해 호수속으로
유인해가 버렸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픈 나머지 폭포 밑에 몸을 던졌다. 그 이후에 호수를 박연이라하고,
폭포밑 담을 고모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옛날부터 조선 3대폭포 중 하나이다. 폭포는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선죽교
(선죽교는 고려시대 후기의,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석조 다리)
『고려사』에 의하면 이 다리는 1216년 이전에 건설되었고 건설 당시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 후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때부터 선죽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난간이 있는 다리와 없는 다리가 있는데 난간이 있는 다리가 선죽교이다. 이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사람이 다니지 못 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난간이 없는 다리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그 곁에 새로 놓은 것이다. 선죽교 옆에는 '선죽교'라고 쓴
비석이 있다. 비문은 한석봉의 글씨로 전한다.
숭양서원
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1573년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고려의 유학자였던 포은 정몽주가 살던 집자리에 고려시대 말에 처음 세우고, 조선시대 1573년에 고쳐지어 문충당이라 부르다가 1575년에 사액을 받아
숭양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승양서원에서는 정몽주 외 16세기의 철학자인 화담 서경덕과 17세기의 학자이자
문학가인 잠곡 김육을 비롯한 유학자들을 추모하여 제사하였다.
만월대
만월대는, 919년 이후 고려 전기간에 걸쳐 왕궁이 자리잡았던 유적이다. 원래 이 궁궐안에 '망월대'라 불리던 궁전이 있어 어느 때부터인가 궁궐 전체를 만월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과거엔 외침으로 파괴되고 방치되었으나 현재는
보수돼 잘 보존되고 있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그 남쪽 기슭 한가운데 자리잡은 고려 왕궁은 궁성과 화성을 합해서 125만㎡, 궁성만은 약 39만㎡의 면적이다.
영통사
고려 현종 18년(1027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 융성했으나 16세기쯤 소실되어
이름만 전하던 사찰. 천태종 개창자인 대각국사 비와 당간지주, 그리고 세 개의 탑만 덩그맣게 남아있던 것을
남북이 힘을 모아 29개의 전각을 원 모습대로 세워놓았다.
왕건 왕릉
고려 태조 왕건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 송악산 줄기가 뻗어내려온 만수산의 나지막한 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다. 943년에 창건된 것을 1994년에 개건하였다.
공민왕릉
공민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1365년~1374년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왕릉이다. 2기의 무덤을 동서로 나란히 세운 쌍릉형식으로,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서쪽)과 왕비(노국공주)의 무덤 정릉(동쪽)으로
이루어졌다. 공민왕은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직접지휘하였다.
고려 성균관
고려성균관은 개성시 방직동에 위치한 고려시대(992년)에 세운 국가 최고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1602~1610년)에 재건한 건물이다. 고려는 건국 초기 개경(오늘의 개성)에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를 세웠고, 992년에는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설립하고 여기에 국자학, 대학, 4문학과 율학, 서학, 산학 등 6개 학과를 두고 국가 관리 양성 및
유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 국자감은 1298년에 성균감으로, 1308년에 성균관으로 고쳐졌다.
개성성 내성
개성성 내성은 고려 수도성인 개성나성 안의 일부 구간을 막아 쌓은 성이다. 축성 공사는 고려시대 말(1391)부터
조선시대 초(1394)까지 진행되었다.
후릉
후릉은 조선 2대 정종과 안정왕후의 쌍릉이다.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 개성 백룡산 기슭의
인덕궁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왕후가 1412년에 먼저 죽고 1420년에 정종이 죽어 이 능에 묻혔다.
고려박물관
고려성균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민 고려박물관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주: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