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허물 벗은 날
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째.
아홉시에 병원을 나서 열시경에 무안병원에 도착했다.
주지스님 차를 타고 간호가가 동행하여 무안병원 MRI 촬영실로 갔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주의 사항을 들은 뒤 촬영실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고, 중간에 혈관주사도 한 번 놓는다고 했다.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기로 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아 얼마나 추운지 누워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철거덕, 윙윙 하는 기계 소리는 또 얼마나 징그럽고 크게 들리던지----.
겨우겨우 호흡을 조절하며 간신히 촬영을 마쳤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니 주지스님과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이 추우니 바람도 쐴 겸 밖에서 포행을 돌겠다고 하니까 그러라며
두 사람은 그냥 앉아 있었다.
결과가 나오면서 사십 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원래 촬영실에는 환자 외에 못 들어오게 되어있는데
두 사람이 우겨서 나 촬영하는 걸 옆에서 지켜봈다는 사실을----.
나는 계속 마당만 빙빙 돌았다.어지러웠다. 머리도 어지럽고. 세상도 어지럽고.
내 삶도 어지럽고. 모든 게 어지러웠다.
한참을 도는데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트럭에서 뭘 팔러 왔나 보다 했는데
주지스님이 자기 차에서 그렇게 크게 틀어놓고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계속 마당만 돌고 있는데 간호사가 촬영 봉투를 들어 보이며 불렀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서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차에서 나오는유행가
[ 꽃바람 여인] 인가 뭔가에 화제를 집중시켰다.
목포에 있는 사형 스님 절에 점심 약속이 되어 있어 그곳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도 두 사람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해줬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형 스님도 함께 다시 강진의료원으로 왔다.
병실로 바로 올라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앉아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인연에 수순하겠습니다'
뒤따라 올라왔던 사형이 담당 의사 호출을 받아 내려갔다.
지금쯤 열심히 판독하며 진단을 내리고 있겠지.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조금 있으니 문이 벌컥 열리고 사형이 웃으며 들어왔다.
"아이고, 스님. 축하합니다. 다시 살아났네요" 하며 손을 잡으며 기뻐한다.
"그래요?" 라며 나도 웃는데 모든 긴장과 불안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곧이어 주지스님과 간호사도 올라왔다.
" 한발 늦었네요. 내가 먼저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려 했는데" 하며 축하를 해준다.
잠시 후 담당 내과 과장이 와서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병명은 ' 혈관종' 이라는 건데 일종의 혈관 기형이었다.
그것이 3.5㎝ 짜리가 하나. 1㎝가 두 개 있는데
더 이상 커지지만 않으면 사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다 한다.
일 년에 두세 번 주기적인 초음파검사를 해야 하는 게
부담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간에 해로운 음식을 섭취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살라며 웃으며 나갔다.
" 스님! 혹시 막판 뒤집기라고 들어봤습니까 ?"
느닷없이 주지스님이 물었다.
" 알지요" 했더니 내가 바로 그 경우라는 것다.
그제야 모든 걸 알게 되었다.
강진의료원에서 초음파검사할 때부터 다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고
무안병원에서 MRI 촬영할 때 두 사람은 사진에
선명하게 찍혀 나오는 종양을 보며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는 거다.
무안병원에 동행했던 내과 담당 간호사가
주지스님께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게 좋을거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만큼 심각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주지스님이 너무 괴로워 차에서 그렇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 스님, 참 운 좋소.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내가 삼십여 시간 동안 얼마나 피를 말렸는지 아요?'
하며 주지스님이 또 한 번 웃었다. 고마웠다.
정진 대중이 아파서 병원에 온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도반처럼 곁에서 아파하고 지켜주다니----.
암만 수계도반이고 강원 선배지만,
예전에는 서로 친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더욱 고마웠다.
한바탕 축하 공연(?) 이 끝나고 병실에 혼자 남으니
긴장이 탁 풀리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 오기 전 사흘을 굶은 데다가
여기서 초음파다. 내시경이다 하며
내내 굶었기 때문에 제대로 먹은 한 끼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아. 이젠 좀 쉬어야겠다.
무문관 선반에 머리를 부딪치고 지금까지 그야말로 너무 힘들게 지나왔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더 큰 손실은 정진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다.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며 또 다른 공부야 했겠지만.
정작 아픈 순간에는 화두보다 관세음보살이 먼저 생각났다.
아, 어쩔 수 없는 속물 중생이여!
어찌됐건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내 삶에 있어 또 한 번의 큰 구비를 돈 것이며
더 아름다운 나비로 날기 위해 또 한 번의 허물을 벗은 거다.
며칠 굶은 뒤 저녁상을 받아놓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앗다.
"그래, 살아 있으니까 밥을 먹게 된는구나. 열심히 먹자.
그리고 또 다시 악착같이 살아내자"
밥술에, 국물에 눈물이 범벅이 되며 눈물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갔다.
무섭도록 지루한 하루가-----.
7.2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