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차별 경험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그리고 3년이 되었을 때 큰애 치과 치료 핑계로 한국예 왔다. 와서 보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고, 가고 싶었던 곳 갔다. 3주였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컴백.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이란 지금의 삶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며, 목적지, 방문지를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여행지에 가서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느낀다 하더라도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시간이 되면 그곳을 떠나야 하고, 원래 있던 곳,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현장에서 느꼈던 인상을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기록했으면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아무리 “여기가 좋사오니”더라도, 내려가야 하고, 돌아가야 한다.
3주간의 한국 방문 후 영국으로 돌아갔던 것은 그곳에서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장 베로(Jean Beraud), <해변 카페>, 1884년
순례를 떠나는 자는 돌아올 곳이 정해진 자다. 돌아갈 곳 없는 순례란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순례’란 단어의 뜻을 살펴보자. ‘순례’는 영어로 pilgrimage로, 라틴어 ‘페르 아그룸’(per agrum, 들판을 가로질러)에 어원을 둔다. ‘들판’은 ‘고난’으로, ‘가로질러’는 ‘무언가를 찾아’로 확대된 결과, 순례는 ‘자신의 신성한 중심, 성자나 영웅이나 신에 의해 성스러워진 곳을 찾아가기 위한 힘든 여행’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뜻한 두 단어 ‘travel’과 ’journey’의 뜻도 알아보자. ‘travel’이라는 단어는 ‘노고’를 뜻하는 ‘트라베일 travail’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트라베일’은 중세시대의 ‘고문대’인 ‘트라필리움 tripalium’이 변형된 결과라 한다. 한편 ‘journey’는 불어 ‘jour’(하루)에서 파생된 말이다. travel은 체험을, journey는 시간을 강조한 단어다.
순례는 고난의 의미와 더불어 이 고난이 매일 경험된다는 뜻에서 여행을 뜻하는 두 단어 travel과 journey를 포함한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여행의 미덕을 몰라서가 아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열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 쿠지노의 <성스러운 여행 순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례를 신성하게 만드는 것은 여행 뒤에 숨은 열망이다.” 여행을 꿈꾸지만 열망이 부족하면 여행을 떠나기 어렵고, 여행을 떠나더라도 그 여행을 신성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열망에 휩싸인 여행자는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아픔의 현장을 직접 가봐야만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것 같고, 누군가가 걸었던 그 길을 직접 걷고 나서야 생각이 명확해질 것 같은 열병에 시달리게 된다. 프랑스 시인 쥘 쉬페르비엘은 그의 시 <부름 The Call>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깊은 잠 속에서 누군가가 내게 속삭였다. 너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어. 지금 당장 와.”
여행은 열망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다음 단계는 생각의 깊이가 중요하다. 그 여행에 대한 생각, 찾아가야 할 곳, 만나야 할 사람, 그리고 빠르게 스쳐 지나쳐야 할 곳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왜 그곳을 찾아가고 싶은지를 되물어야 한다. 필 쿠지노는 “여행은 생각의 깊이에 따라 신성해진다. … 이제 이상적인 삶을 살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여행, 순례란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행위다. 하지만 이는 도피가 아니다. 잠시 떠나는 것이며,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떠나는 이유는 다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야 할 힘을 얻기 위함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집이 그리워진다. 여행지에서 좋은 것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기 위한 기회다. 그러니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라. 우리가 사는 이유가 더 사랑하기 위해서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