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국화차(菊花茶)
김홍래
서늘바람 불더니 솔골짝에서 내려오는 도랑물이 많이 줄었다. 물소리는 더욱 맑아지고 물빛은 괭해졌다. 싱그럽고 검푸르기만 할 것 같던 숲이 점차 기운을 잃어 가는 느낌이다.
가을 앞에 서면 설렘, 아쉬움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한다. 서늘한 바람이 상큼하고 좋다 싶으면 어느새 낙엽 지는 소리가 요란해 진다.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도 빨리 지나간다. 소슬바람 불어오는 가을 날 숲에 서 있으면 머릿 속은 옹달샘물처럼 맑아지고 텅 비울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가슴은 가득찬다, 년 중 이런 호사스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삽상한 바람 불고 갈대는 하얗게 피어서 흔덕인다. 산야가 더 조용하고 넉넉하고 오붓해지는 계절이다.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로운 작물을 바라보면 저절로 마음이 순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간혹 들려오는 산새소리도 더 여리고 맑고 곱게 들리는 듯하다. 봄과 여름 동안 시끌벅적 숲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던 철새들이 모두 떠나간 탓이리라. 가을 숲은 점차 적막해져 간다. 가을이 깊어져 산국(山菊)이 피어서 그윽한 향이 바람결에 은은하게 밀려오면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오롯이 자연과 합일 되는 시간이다. 이 때면 진정 자연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나친 집착과 욕심이 인간과 자연 모두를 망가뜨리고 있다.
다복다복 열린 마가목 열매가 눈 시리게 시붉고 감나무도 불그스레 차츰 제 빛깔로 익어 간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걷던 그 들길 그리워 나도 모르게 들길로 들어서게 된다. 가을이 곧 당도하리라 생각하면 마냥 설렌다. 오롯한 가을밤에는 낙엽들 눅설거리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들썽이는 가슴을 애만진다. 내게 올 가을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해를 분주히 살아낸 수풀들의 잎새들도 산화하여 다시 뿌리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가을엔 덜퍽지게 열린 붉은 감나무를 바라보는 일도 흐뭇하고 좋다. 가을은 인간의 메마르고 거친 가슴을 따뜻하게 품어 준다. 아름다운 산촌의 가을 서정을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 선물하고 싶다. 가을이 금세 떠나갈까 싶어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다. 한편 1년을 무탈하게 보냈다는 안도감이 어깨를 감싼다. 난 이런 숲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또 시린 겨울이 오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에 대한 적은 두려움도 있다. 1년을 더 산만큼 원숙해져야 하는데··· 부질없는 걱정이다. 눈이 내리고 살천스런 바람이 휘몰아치면 숲에 있는 생물들은 호흡을 늦추며 휴식에 들어 갈 것이다. 고엽지고 새들까지 떠난 숲에는 곧 고적 찾아들겠지만, 시골 농부들도 겨울이 있어 쉬어 갈 수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겨울이 없다면 끊임없이 고된 노동에 시달릴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국화차를 선물 받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만든 차다. 정성껏 유기농으로 길러서 10월 하순에 꽃을 따서 살짝 덖어서 그늘에서 말린 것이다. 물을 끓여 찻잔에 붓고 꽃을 서너 개 띄운다. 국화꽃이 말쑥하게 다시 피어나며 향기 그윽한 국화차가 된다. 너무 많이 넣으면 빛깔과 향이 진해져서 특유의 은은하고 순수한 본래의 차 맛을 느낄 수 없다. 꽃을 감상하면서 담백하고 개운한 차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한 겨울에도 국화차 한 잔이면 가을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국화차 한잔이면 이내 거실이 사늑해진다. 내년 봄에는 친구가 국화 몇 포기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잘 길러 ‘국화꽃차’를 만들어서 우리 집에 오는 분들께 선물해야겠다. 산촌의 ‘가을’ 전부를 선물 받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내가 유달리 극화차를 좋아하는 것은 향도 향이지만 그 자태가 정결하고 수수하기 때문이다. 또 도시에 살면서 세련되고 지나치게 화려하고 상업적인 모습에 싫증난 탓이리라. 가을의 초입에서 된서리가 내릴 때까지 가을을 지켜주는 고결한 국화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국화차를 마시며
다시 가을이 절정이다.
가을이 통째 내게로 왔다.
함초롬히 사뜻하게 피어나는
오상고절의 순결한 향내가
이윽하게 집안 가득 번지면
거칫했던 마음이
경계를 허물고
이내 그윽해 진다.
잠시 아득하기도 하다가
산처럼 마냥 너그러워진다.
그리움에 떠밀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떠난 사람을 기다리며
설한의 겨울을
염려하는 사람에게
늦가을
국화 향기를
흠뻑 뿌려 주고 싶다.
<졸작 국화차 전문>
첫댓글 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국화 차가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에 녹차를 마셔봤지만, 풀 냄새가 취향이 아는 듯 하여
아직 커피를 마시고 있답니다. 기회가 되면 국화 차를 꼭 마셔 보겠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구름님 간 줄작을 읽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가을이면 국화가 생각납니다.
국화의 순박한 멋 좋습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하세요
가을이 벌써....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건강하시고 이가을 행복하세요
국화 향기를 듬북 받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아득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새 봄과 함께 더욱 건강하세요
며칠 전부터 국화차를 마시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을 하고 있는데
이 봄에 싱싱한 가을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국화차 드시면서 가을 서정을 만끽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직 이르긴하지만 간간히 떨어지는 나뭇잎을보며
향긋한 국화차와 가을을 마시고 싶습니다
좋은글에 머무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가는군요 ..
감사드려요 ...^^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