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27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도전공소’ 이야기
북여주본당 ‘도전공소’ 이야기
끊임없이 기도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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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계시는 성모 마리아여 묵주의 기도드릴 때에 나를 위로하시며 빛을 밝혀 주시니 모든 걱정 사라지고 희망 솟아오르네. 항상 도와주옵소서, 인자하신 어머니.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북여주본당 도전공소(회장 배영일 필립보)의 예닐곱 어르신들이 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 마을회관에 모여 둘러앉아 ‘묵주기도’와 함께 ‘자비의 기도’를 바친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반기도회(반장 한경진 마르타) 모임도 역시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매일 오후 3시 도전3리 마을회관서 ‘자비의 기도’ 모임
모내기가 막바지인 지난 5월 27일에는 가장 연장자인 김천윤(막달레나·90) 할머니를 비롯해 여섯 사람이 모였다. 평균 연령이 80세다. 가톨릭성가 271번 ‘로사리오 기도드릴 때’를 시작으로 김 막달레나 할머니가 청랑한 목소리로 계(啓)를 하고 나머지 다섯 자매들이 응(應)으로 답한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 참조)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는 거룩한 모습이다.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여 절대자인 주님에게 자신을 여는 인격적인 교류 행위’인 기도하는 모습은 아름답고도 성스럽다.
이 ‘자비의 기도’ 모임은 공소 신자 고복자(크리스티나·67), 조연심(비르지타·73) 씨가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소개한 후, 2007년 6월에 시작했으니 만 7년이 됐다. 도전공소 공동체의 기도회는 “기도는 ‘마음의 호흡’과 ‘영혼의 음식’과 같은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특히 임종하는 이들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를 해왔다. “오, 저희를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 성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이시여, 저는 주님께 의탁합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도전공소 기도 공동체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주님의 가르치심에 따를 뿐이다. 늘 기도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도한다면 기도가 생활 속에 침투되어 마침내 기도와 생활이 단 하나의 현실이 된다.
이윤창(요한 사도·수원 정자꽃뫼본당) 씨는 “세상을 정화시키는 저 분들의 기도 덕택으로 우리나라가 살아감을 느낀다”고 했다.
기도회 끄트머리에 북여주본당 설립 10주년(2004-2014) 기도문을 바친다. “주님의 백성이 일치와 사랑으로 친교를 나누며 주님을 찬미하도록 섭리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한 시간 가까운 기도회가 끝난 후에는 그 자리에 상을 펼치고 텃밭에서 방금 뜯어온 상추와 된장 등으로 함께 식사를 한다.
한 번의 2년 임기를 채우고 8년 만에 도전공소 회장을 다시 맡은 배영일(74) 씨는 “도전3리 마을 80호 중 3가구만 제외하고 77가구가 가톨릭 신자 가정”이라며 “서로 고종·외종·이종 등 친척사이가 많다”고 전했다.
80호 중 77가구가 천주교 신앙 가진 교우촌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도전공소는 매월 첫째 주일 오후 3시에 공소 경당에서 북여주본당 류동환(안드레아) 주임신부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참례자는 50여명. 이날은 외지에 사는 자녀들이 고향에 들러 부모님과 함께 미사에 참례해 독서 등 전례를 돕기도 한다.
공소 인근에는 스승 예수 여주 피정의 집(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 651-2)과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꼬 수녀회 여주 분원(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 674-1),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여주 분원(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 637-1) 등 수도원이 있어 주일마다 미사(06:30, 09:30)에 참례할 수 있다.
강천면(康川面)은 여주시의 최동남단이자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을 이루는 곳으로 지명 그대로 물을 많이 접하고 있는 고장이다. 도전공소 초창기에는 원주교구 풍수원본당 관할이었다. 강천면은 대원군 시대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은둔생활을 하며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 외진 산골이라 종종 농가의 비닐하우스에 고라니가 새끼 네댓을 낳고는 어미가 새끼 한 마리씩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키운단다.
도전리 인근 부평리 부엉골에는 1890년대 교우촌이 형성되어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전신인 예수성심학교가 이곳에 있었다.
도전공소는 배영호(베드로·평택 효명고등학교 교장) 신부 등 성직자 3명, 수도자 5명을 배출했다.
젊은이ㆍ어르신들 합심해 ‘평화의 모후’ Pr. 재창단 기대
도전공소 경당 대들보에는 ‘천주강생(天主降生) 1957년 3월 22일 입주상량(立柱上樑)’이라 적혀 있다. 경당 건물의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를 올린 지 57년이 됐다.
2007년 3월 7일 도전공소 신자 12명의 단원으로 창단된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공소에서 활동을 이어오면서 여러 차례 해단의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협조단원 23명, 아듀또리움 단원 7명 등의 협력으로 남성 2명, 여성 5명의 혼성 쁘레시디움으로 적은 인원이나마 명맥을 유지해왔었다[(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3-03-10)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54238 참조].
그러다가 두 번의 임기로 6년 동안 쁘레시디움을 이끌어온 한경진(마르타·77) 단장 등 4간부의 후임이 나타나지 않고 행동단원들의 출석률이 낮아진데다가 활동도 저조해지면서 결국 2013년 5월 ○일 제○○○차 회합을 끝으로 해단했다. 한경진 씨는 공소의 젊은 자매들과 어르신들이 합심해서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재창단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성기화 명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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