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史記 列傳), 소진열전 소자열전 중 일부
*臣聞明主絶疑去讒, 屛流言之跡, 塞朋黨之門,,,臣聞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신문명주절의거참, 병류언지적, 색붕당지문,,,신문비언왈, 영위계구, 무위우후‘, 금서면교비이신사진, 하이어우후호?, 부이대왕지현, 협강한지병, 이유우후지명, 신절위대왕수지).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의심을 끊고 참언을 제거하고(絶疑去讒) 유언비어의 흔적과 붕당(朋黨)의 문을 틀어막는 것(屛跡塞門)에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중략)
속담에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군주가 서쪽 진나라를 향해 손을 모아 복종하고, 끝내 신하의 신분으로 진나라를 받들면 이는 쇠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나라 군주가 현명하고 무력이 강대한데도 오히려 쇠꼬리의 오명을 얻게 되면 이는 군주에게 커다란 수치가 될 것입니다.
*위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史記 列傳) 소진열전(蘇秦列傳) 소자열전 중 소진이 조나라의 조숙후에게 유세한 내용과, 소진이 한소후에게 유세한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사기 열전(史記 列傳)은 사기 중 압권으로 불리며 내용과 문체가 만연체로 모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마천이 해당인물의 특징적인 면모만 선별적으로 기록해 놓은 덕분이라고 하며, 사기 총 130편 가운데 절반이 넘는 70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전에는 백이와 숙제를 시작으로 한문제때까지 활약한 귀족. 관료. 장군. 책사. 자객. 토호. 은자. 미희 등 온갖 유형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 기준은 선(善)과 의(義)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고 이치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원망의 취지를 담고 있고, 그리하여 열전은 이상과 현실의 괴뢰를 따지는 데서 출발한다고 하고, 모택동은 중국에는 두 편의 대작이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합니다.
*소진열전(蘇秦列傳)은 종횡가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소진에 관한 전기로, 소진은 귀곡자 밑에서 장의와 함께 유세술을 배운 뒤 열국을 종횡하며 세상을 다스렸는데, 전국시대에 진나라에 맞서 한. 위. 제. 초. 연. 조의 육국을 연합하는 합종책을 내세워 육국의 제상을 지냈고, 열국을 진나라와 묶어 생존을 꾀하도록 한 장의의 연횡책과 대비되며, 소진의 활약을 집대성한 책이 ‘전국책’이고 소진의 유세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이 소자열전입니다.
*사마천(司馬遷, 자는 子長, 기원전 145년~86년, 한경제의 치세인 기원전 145년 전후에 사관으로 재직한 사마담의 아들)의 필생의 역작 사기(史記)(太史公記, 또는 太史公書로 불리기도 함)는 오제부터 한무제까지 제왕의 역사를 기록한 본기(本紀), 역대 제왕과 제후의 연표를 기록한 표(表), 고대 중국의 역법, 치수, 경제를 기록한 서(書), 역대 제후와 공신들의 연대기인 세가(世家), 정치가, 학자, 군인, 자객, 해학가 등 각종 인물의 흥망사를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사마천은 한무제 때 천문역법을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 후 49세 때 황제를 무고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부친의 유한과 사마천 개인의 통한을 승화시킨 작품인 사기를 작성하기 위해 당시 죽음만도 못한 것으로 여긴 굴욕적인 궁형(宮刑, 거세형)을 자청해 죽음을 면한 후 세기의 역작 사기를 저술하여 후대에 역사를 거울로 삼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치를 깨닫는 사감(史鑑)의 전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기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대의멸친(大義滅親)으로, 치국평천하의 대의를 위해 친인척으로 상징되는 소의(小義)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극도로 싫어하는 호리오해(好利惡害)를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했고, 사기 중 열전은 사기 총 130편 중 70편에 달하는 것으로 사기의 꽃에 해당한다고 하고(열전을 읽지 않으면 사기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열전만 따로 번역한 책이 많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