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성분
김윤한
가장 투명한 아픔들이 병 속에 웅크리고 들어 있다 정해진 모양이 없어서 괴로움의 형태에 따라 변한다 건조한 곳에서도 녹지만 습기 찬 곳에서 더 잘 녹는다 투명한 눈물을 닮아서 마실수록 점점 더 슬퍼진다 사는 것이 힘들수록 맛은 더 달게 느껴진다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침몰시킨다 입술을 적시고 온몸을 적시고 마침내 영혼을 적신다 함든 곳만을 찾아 스며드는 가장 쓸쓸한 액체이다 사람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므로 술이 뭔지 무슨 맛인지를 모르고 평생을 살았는데 이 시를 읽고 알 것 같다. 소주의 성분이라니, 전혀 낯선 작품이지만 그 속에 삶의 전부가 들어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어렸을 때 막걸리를 담그다 술이 잘못됐다고 소주고리에 앉혀 시루에 불을 때던 어머니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액체를 가늠하며 불을 조절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를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씩 술에 취하여 길가에 주저 앉아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그랬다. 술은 곡식을 익혀 삭여낸 액체다. 시초의 발견이 어떻든 역사적으로나 현시대에서도 사람의 심기를 조절하고 혈액순환을 도와 일시적인 힘을 준다. 슬퍼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어느 모임에서나 단결과 화합을 위하여 서로 나눠 마신다. 한 방울의 술을 빚으려면 많은 곡식이 소요되는 것이라 가장 귀중한 음식이다. 과하게 마시면 중독되어 많은 부작용을 낳지만 시름을 잊고 힘을 돋우는 데는 최고의 활력소다. 김윤한 시인은 술의 과학적인 해설을 넘어 삶의 철학을 읊었다. 술병 속에는 가장 투명한 아픔이 들어 있다는 시작은 절창이다. 술이 되는 과정에서 삭이고 삭인 인내와 끓고 끓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데 사람의 삶도 이와 같아 많은 아픔으로 이뤄진다. 참아내지 못한다면 삶을 이룰수 없다. 그 아픔의 모양대로 술의 형태도 변하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마시는 상대도 변하는 것이며 삶이 힘들수록 맛은 짙어진다. 그러나 거기에 중독되면 마침내 영혼이 침몰되는 부작용이 따른다. 김윤한 시인은 술의 형태와 과정을 삶에 얹혀 냈으나 술은 가장 쓸쓸한 액체이므로 반복으로 기대어 산다면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이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