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결정권자로 모시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맡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100퍼센트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려는 순간 사탄은 내 옆에서 속삭일 것이다.
“야, 너 미쳤어? 그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너 잘 됐다. 몽골에 선교사로 가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래?”
“너 직장에서 쫓겨나고 싶니? 가뜩이나 능력 없다고 상사 눈 밖에 났는데, 네가 어떻게 잡은 직장인데….”
“너 왕따 되고 싶어? 요즘은 네트워크가 힘이라는데. 인맥 관리 하려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다가는 망한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시는 분 내지 엄격한 분, 잘못을 지적하시는 분으로 여기게 만든다.
대부분 아직 미혼인 사람은 기도할 때 ‘주여! 모든 것을 주 뜻대로 이루어주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속으로는 ’결혼만은 내 뜻대로 하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헌신을 다짐하는 기도를 할 때 “주여, 이 몸을 주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 ‘그래도 이거, 이거, 이거는 안돼요’ 하는 게 있다. ‘하나님,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라고 바란다.
설교를 들을 때도 자신이 허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움츠러든다.
“하나님, 여긴 제 영역이에요.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방해만 하지 마세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하나님, 이건 하나님과 타협이 안돼요. 나는 내 길을 가렵니다.”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는 하나님께 내려놓지 않고 움켜쥐는 것이 있다.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대학진학 문제가 특히 그렇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업하는 방식에 그런 요소가 많다. 혹시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실까 봐 “이것만은 안 되는데…” 하면서 막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원하시는 이유가 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다.
남미의 인디언 부족들 중에 항아리를 이용해서 원숭이를 잡는 부족이 있다. 원숭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목이 좁은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둔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원숭이들이 다가와 항아리를 살핀다. 그러다가 그 안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잡는다.
그런데 항아리의 목이 좁아서 원숭이가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원숭이는 바나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눈만 말똥거릴 뿐이다. 원숭이를 잡으러 인디언들이 다가오는데도 말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나에게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은 것일까, 아니면 바나나가 원숭이를 잡은 것일까?’
원숭이의 수준에서 보면 자신이 바나나를 잡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원숭이를 잡은 인디언의 눈에는 바나나가 원숭이를 잡은 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항아리 속 바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나나를 손에서 놓는 것이 우리를 자유하게 만드는 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붙잡혀 있다. 특별히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이용규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