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한국 조경의 代母
정영선
선유도·예술의 전당·노무현 묘역까지·… '시크릿 가든'의 진짜 비밀, 이 女人은 안다
김윤덕 기자/조선일보 : 2012.06.16.
선유도공원과 광화문광장 선유도는 원안대로 가서 좋은 작품 됐지만 광화문은 내 생각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텅 빈 채로 역사의 무게감 들게 설계했는데 세종대왕 동상 들이고 꽃밭·잔디 깔더라
봉하 사저와 노무현 묘역 건축가와 "묘역의 새 지평 열어보자" 생각 삼각형 땅에 바위 하나만 놓고 광장 넓혀 극찬·혹평 갈리지만, 그 안에선 절절해진다
서울대 조경학과 1호 졸업생 할아버지 과수원서 태어나 꽃에 파묻혀 자라 아버지가 갖고 온 스위스 달력에 충격 "우리나란 헐벗은 산 투성인데…" 만학 시작
당신만의 시크릿 가든, 욕심없이 가꿔라 꽃 피고지는 계절감 있는 정원이 좋아서 난 설계할 때 소나무 거의 안 써 화려한 꽃보다 고추·상추·오이가 예쁠 수도
아모레 퍼시픽 오산 공장에 7만여평 크기로 조성된 드넓은 정원을 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삭막한 공장에 이렇듯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본 적 있어요? 프랑스의 이브로세 식물원처럼 약용식물 중에서도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전 세계의 식물을 모아놓은 테마 정원이지요. 아이들의 즐거운 교육장이면서, 이 회사 연구 기술자들에게는 훌륭한 원료 식물원이니 단지 보고 즐기는 정원,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죠. 장담하건대, 10년 뒤엔 아주 세계적인 식물원이 될 거예요(웃음)."
한국 조경계의 대모(代母)는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를 섞었다. 거친 조경 일을 진두지휘하기엔 꽤나 작은 체구였으나 목소리는 쩌렁했다.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민낯 탓에 작업 현장에 있으면 누가 감독관이고 누가 인부인지 모른다고 했다. 위트도 겸했다. "내가 워낙 유명해서 명함이 없어요(웃음)."
현대중공업 영빈관의 겨울 풍경. 한옥으로 향하는 뜬다리 길이 눈에 덮여 운치 있다.
◇우면산 홍수와 목동 파리공원
―사람들이 선생님을 한국 조경계의 대모라고 부릅니다.
"누가 그래요?(웃음) 서울대 조경학과 첫 졸업자인 데다 기술사 시험에 여자로는 처음 합격하는 바람에 그런 수식이 붙었나 봐요. 국가에 중요한 조경 사업 있을 때 이렇게 저렇게 참여하게 되니 대모라 하데요. 내가 앞장서 손 들고 나선 건 아니에요(웃음). 작은 정원이든, 큰 공원이든, 하다못해 사소한 자문이든 조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어요. 요만큼 해도 될 일을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했으니 대모라고 해도 되지요 뭐(웃음)."
―'화가에게 캔버스가 있다면 조경가에게는 대지가 있다'고 했지요. 조경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나무 심고 꽃 심고 하는 일은 아니지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을 다루는 작업이 조경이에요. 건축가는 땅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단단한 기반으로 여기지만, 조경가에게 땅은 식물을 자라게 하는 생명체예요. 그렇다고 자연만 잘 알면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요. 땅과 빛과 물과 식물의 유기적 관계는 물론, 거기서 살아갈 사람들의 공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야죠."
―생태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우면산 홍수 보세요. 더 편리하게 산을 오르려고 무조건 길을 내고 공원을 만들고 운동기구 설치했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요. 답답한 게 이 땅을 우리 시대에 다 살고 끝낼 것처럼 개발들을 해요. 후손은 대체 어떻게 살라고."
―정수장을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선유도공원부터 영종도 신공항 조경까지 대작이 수두룩합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무엇입니까.
"내게 만족은 없어요(웃음). 사람들이 껌벅 넘어가는 곳은 선유도공원이겠지만, 내가 초기에 애착을 가진 곳은 예술의전당이었지요. 정말로 애를 써서 조경했는데, 이사장이 바뀔 때마다 여기저기 손대더니 지금 가면 나도 길을 못 찾아요. 디자인한 사람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싶지요. 예술의전당뿐 아니라 지자체 공공 정원도 단체장 바뀔 때마다 조경을 갈아엎더군요. 그 땅의 생태적 특징은 생각 않고 그저 자기들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무턱대고 갖다 심어서 아주 속상해요."
용인 호암미술관에 조성된 전통 정원‘희원’. 한국 전통 정원의 백과사전이라고도 한다.
―선생님이 틀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에요. 트렌드라는 것이 있고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겠죠. 특히 식물은 시대에 따라 호불호가 굉장히 강하니까요. 그러나 관료들의 간섭이 지나친 건 맞아요.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을 받은 선유도공원만 해도, 어떤 시의원이 와서 여기엔 이런 나무를 심어야 한다 간섭하고, 어떤 유명 문인이 와서 여기엔 이런 시설물을 갖다 놔야 한다며 충고들을 한대요. 목동 아파트단지의 파리공원은 그래서 아주 웃기게 됐죠."
―파리공원도 선생님이 조성했습니까.
"그럼요. 그 공원 만든 건축가와 조경가가 아직 살아있는데 그 예쁜 공원을 구에서 망쳐놨어요. 연못이 수영장으로 됐다가 다시 연못으로 바뀐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어느 구의원이 '아이들이 물속에 있으니 남사스럽다' 하니까 바로 바꾼 거래요. 이런 후진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지난해 조선일보에서 최고의 건축물과 최악의 건축물을 설문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고 1위인 선유도공원과 최악 1위인 광화문광장이 모두 선생님 작품입니다.
"선유도공원은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던 강홍빈 박사가 간부들 다 있는 자리에서 '반드시 원안대로 시행하라'고 못 박고 추진한 덕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어요. 강 박사가 도시계획 전문가예요. 광화문광장은 우리가 현상 설계에서 당선되긴 했지만 원안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 광화문광장을 텅 빈 채로 역사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국가 상징 광장으로 조성하고 싶었다고요. 그런데 거기에다 세종대왕 동상을 앉히고, 유치한 꽃밭을 만들고 잔디까지 깔더라고요. 세종로이니 세종대왕이 와야 한다는 건 언어도단이에요. 그럼 율곡로에는 율곡 동상을 세워야 하나? 죽어도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놔서 소송 직전까지 갔죠. 내가 생난리를 치니 담당 국장이 와서 빌고. 꼴찌로 선정된 건 당연해요."
―청계천 조경은 어떻습니까.
"세종대왕 동상이나 청계천의 다슬기 조형물이나 문화 공간을 직설적으로 해석했다는 게 문제예요. 공공 영역의 조형물은 오랜 숙의를 거쳐 설치해야 합니다. 시민 몇 퍼센트가 찬성했다고 세종대왕 동상을 들여놓아선 안 돼요. 전문가 집단의 합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청계천 다슬기 조형물(원제 '스프링')은 올덴버그라는 유명한 팝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그게 청계천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어울리느냐 말입니다. 하천이니까 다슬기? 그럼 물속에 세우든가요(웃음)."
◀ 아모레 퍼시픽 오산 공장에 조성한 정원에서 정영선 선생을 만났다. 불같은 성질에 평생‘남의’조경만 맡아주느라 아직 본인의 정원은 마련하지 못했다.“ 최근에야 시골에 집을 하나 장만했죠. 이제 겨우 나무 몇 그루 심었을 뿐이라 언제 완성될지는 몰라요. 하하!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발주자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나갑니까.
"내 성질이 워낙 괴팍해 그런가 충돌한 일은 별로 없어요. 의견 차이가 있으면 달래고 어르지요. 주차장이 될 뻔한 여의도 샛강을 공무원들 설득해 산책로로 만든 건 지금 생각해도 뿌듯해요. 설계는 내가 그냥 해줄 테니 풀숲으로 남겨두자고 설득했어요. 김수영의 시까지 읽어줬다니까요(웃음). 겨우 설득한 뒤 생태학자, 조류학자, 어류학자들 모아서 생태공원을 설계했지요. 내가 제일 걱정한 건 억새였어요. 억새밭이 우범지역이 될까 봐서. 또 하천 때문에 모기가 많아졌다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미꾸라지도 몰래 사다 넣었답니다(웃음). 그러면서 주민들 반응이 어떤가 살폈는데, 오히려 무척 감사해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로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아파트값이 1000만원이나 올랐다고. 나 참(웃음)."
―빅 히트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 덕분에 선생님도 유명해졌겠습니다.
"이미 유명했다니까요(웃음)? 난 그 드라마 보지도 못했어요. 얼마 전 미국에 갔더니 '시크릿 가든' 예쁘더라고 얘기하는 사람 많더군요. 건축가인 헬렌 박이 조경을 공부한 뒤 건축을 배운 사람이라 서로 뜻이 잘 통했어요. 건축과 조경의 소통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여전히 조경을 건축의 부속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경과 건축이 서로 잘났다고 떠들면 좋은 작품 안 나와요. 단지 보기 싫은 외관을 가리기 위해 나무를 심어달라고 하면 난 절대 안 해요. 건축과 조경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입니다."
◇노무현 봉하 사저와 묘역
―아시아선수촌, 선유도공원, 희원 등 건축가 조성룡씨와 협업을 많이 했더군요.
"오래된 친구죠. 보통 건축가들이 큰 프로젝트만 하려고 하는데 그분은 작은 건축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분이라 좋아요. 승효상씨와도 많이 했어요. 조경에 관한 한 나를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건축가죠. 당신이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시고."
정수장이었던 공간이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부활한 선유도 공원. / 조경설계‘서안’제공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작업했습니다. 승효상씨와는 노무현 묘역을 협업하셨지요.
"사저는 남편이 아파 입원했을 때 부탁을 받아 경황없이 작업했지요. 조경이라고 해서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에요. 시골집에 어울리게 마당, 담장, 뒷산으로 연결되는 공간에 나무를 심은 정도지요. 주말에 내려가 대통령과 마을 답사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봉하마을에 살던 노 대통령은 완전히 농사꾼 모습이었죠. 밀짚모자 쓴 채 오리 키우고 벼농사 짓고 동네 청소하는 모습을 눈으로 봐서 그런지 그분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참 아파요."
―노무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노무현 묘역'에는 한번 가볼 필요가 있다고 하더군요.
"늘 보아오던 묘역은 아니지요. 건축가나 나나 묘역의 새 지평을 열어보자는 생각은 했어요. 삼각형 땅에 바윗덩어리 하나만으로 표석을 삼았고 그 주변 광장을 넓혀놓았죠. 극찬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절절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60~70년대 척박한 시대에 조경이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경북 경산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내가 태어났어요. 언덕에 사과꽃이 만발했고 바위 일곱 개 밑에 백합과 매리골드가 한창이던 풍경이 지금도 나의 이상향이죠. 교사였던 아버지도 학교와 사택을 온통 꽃과 나무로 꾸며놓으셨어요. 물지게 지고 그 꽃밭에 물 주는 일이 언제고 맏딸인 내 몫이라 키가 요것밖에 못 자랐지요(웃음).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져오신 스위스 달력을 보고는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전쟁 후 우리나라는 헐벗은 산투성이인데, 어떻게 하면 스위스의 산처럼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까 동경하다가 서울대 농학과에 간 거예요."
용인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의 중정(中庭). / 조경설계‘서안’제공
―당시에는 조경학과라는 게 없었지요?
"만날 벼농사, 콩농사 짓는 법만 배웠죠. 직장 생활 하다가 뒤늦게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조경과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만학을 시작했어요. 교수보다 나이가 많아 출석 부를 때 나를 '언니'라고 호명했지요(웃음)."
―마당 있는 집을 구해 정원을 가꾸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또 한꺼번에 하려고 욕심내지 않으면 돼요. 큰 나무 심으려고 조급증 낼 필요도 없지요. 서울 어느 집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주었는데 그 집 초등학생 아들이 나 하는 걸 어깨너머로 봐두었다가 자기만의 텃밭을 만들었더군요. 온갖 채소와 허브로 어찌나 잘 꾸며놓았던지 무척 감동했어요. 텃밭 일기까지 쓰던걸요. 매일 돌보고 가꿀 의지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어요."
―나무와 꽃은 어떻게 선택합니까.
"비싼 나무, 진귀한 꽃일 이유가 없지요. 나는 정원을 설계할 때 소나무를 쓴 적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꽃이 피고 지고 하면서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원이 아름답죠. 고추, 상추, 오이 심는 것이 화려한 꽃보다 예쁠 때가 있고요."
―칠순을 넘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