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로 부친 편지
서교분
참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들에게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 통화도 언제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아들아 잘 근무하고 있지? 아직도 멕시코인가, 한국에는 언제 오고?”
아들에게서 답이 왔다.
“네.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출장 와 있습니다. 오늘밤에 칠레 산타아고에 가서 모레 영국 런던에 갈 예정입니다. 어머니도 날씨가 몹시 무더운데 건강하게 계셔요. 멕시코 다녀가시느라 기내에서 고생 많이 하셨지요?”
“나는 너를 보러 떠난 거란다.”
엄마는 너희들이 나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아.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하나 이뤄가는 아들을 보면서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어려서부터 유학을 보내 준다며 자신 있게 말씀하셨단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전도 필수이고 악기도 다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란다. 유학도 못 간 아들은 엄마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누비는 모습이 자랑스러워. 때로는 힘들어 보이지만 버스로 다니는 것 같다며 엄마를 위로 했지,
아들아 고맙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아픈 누이를 돌보며 한국에 올 때 마다 누이와 영화 보러 가는 약속을 꼭 지켰지.
사랑 하는 아들아!
사랑이란 빈곤한 가운데서 자비함을 잊어버리지 않고 역경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우리가족은 예술의 전당 음악 분수 쇼을 보며 사랑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지.
오늘의 삶을 미워해서는 아니 된다. 삶을 사랑하며 살아라.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인 것이란다.
아들아, 뇌성마비 누나의 그래픽 전시회를 열어주어 엄마를 기쁘게 해주웠지, 엄마도 보이지 않게 고생했던 추억이 떠올랐어.
칠보 그래픽, 비지올 베이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청 앞 컴퓨터학원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으로 올라가야했어. 온 신경을 써다보니 손 발 머리가 뻗쳐 나와 누나는 계단을 구를 수도 있었는데 가슴에 빛을 달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면했든가. 심지어 안고 주저앉아 넘어지는 바람에 엄마 엉덩이는 깊은 바다 빛으로 몇 개월을 살았단다.
보다 못한 경비아저씨들은 우리가 도착하기만 하면 함께 잡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어. 고진감래라고 남들보다 반복하여 더 공부해야 하지만, 뜻이 있으면 이뤄진다는 속담이 맞았어. 누나는 자격증을 받았고 덕분에 나도 컴퓨터 인증 자격증을 동시에 받았단다.
엄마는 머리에 책깍 책깍 소리가 한동안 났단다. 항상 삶과 죽음에 기로에서 엄마는 기도를 했다.
그래서 늘 기쁨이 넘치지.
아들아 고맙다.
누나와 나를 위해, 73개국 유명 관광지 정보를 이 메일을 통해 보내주어 다 보느라 몇 날 밤을 지새웠다.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브라질로 정하고 싶다.
미안하다. 너무 먼 나라라.
너는 성실한 삶을 몸에 미리 익혔구나. 성실은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밑거름을 우리에게 주는 것 같다. 건실한 삶의 보람은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길에는 작은 배려에 고마워하며 작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야 말로 큰 것을 얻는 길일 것이다. 모든 삶은 다 작은 것에서 화가되고 복이 되는 법, 세심하게 주의를 살피며 살아가겠지.
요즘 장마에 비바람 치는 것도, 매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면 나무는 말라 죽는 법인데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란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고 흔들린다는 걸 명심 하렴. 엄마는 나이답지 않게 여행갈 생각하면 더 신이 난다. 철부지가 소풍날에 마음이 허공에 들뜨듯이 설렌다. 지금 이시간도 충실히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 아들아,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잘 지내.
서울에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