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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예상을 깨고 피터캐년 사장과 조세 무링요 감독의 추천으로 강력한 후보였던 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마르셀로 리피가 아닌 대한민국 출신의 레알 마드리드 수석코치 박용휘 내정-
2003년 여름 첼시 풋볼 클럽의 새로운 회장으로 등극한, 세계 17위의 엄청난 부호이자 세계에서 가장 젊은 재력가이자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돈이 많은 재벌이며, 미래 경제 가치가 매우 뛰어난 시베리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독점하고 있고, 세계 3위급 초대형 메이저 정유회사인 시브네프티사의 오너 겸 첼시 풋볼 클럽 회장인 로만 아브라모비치(39) 회장이 이례적으로 오늘 첼시 풋볼 클럽 프레스룸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2006년 5월 29일자로 2년동안 첼시의 지휘봉을 잡았던 조세 무링요(42)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오늘은 우리 첼시구단과 블루스 팬들에게는 매우 슬픈날이다. 3년동안 우리 클럽을 훌륭히 이끌었던 조세 무링요 감독은 오늘로써 은퇴를 하게 되었다. 조세(무링요)의 은퇴이유는 최근 종합검진을 받아본 결과 과도한 스트레스와 뇌출혈 증세로 앞으로 감독직을 계속 맡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주치의 의 의견을 받아들인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감독직을 그만두고 편안히 요양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우린 그를 위해서 어쩔수없이 놓아줄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만 하지마라. 그는 첼시를 위해 다른팀 감독직은 맡지 않기로 했으며 건강을 회복하는 되로 프랭크 아르네센과 함께 첼시의 기술 디렉터로 새로운 인생을 살 예정이다. 감독시절에 이미 선수 보는 안목이 탁월했기에 기대를 많이하고 있다. 짧았지만 3년동안 환상적인 성과를 일궈낸 조세에게 매우 감사하며 이렇게 은퇴하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조세가 예전의 건강으로 되찾기위해 구단차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언론에 떠들고 있는 나와 무링요 와의 불화설이 그의 은퇴 사유가 아니라는걸 다시한번 밝혀둔다.”
"신임 박용휘 감독은 경험이 다소 떨어진다는게 걱정이기는 하나 캐년 사장과 조세,아르넨센 모두 이구동성으로 위대한 첼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박용휘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를 조세의 후임감독으로 임명한것이다. 이미 올 시즌을 앞두고 우리팀은 안드레이 셰브첸코, 로케 산타크루즈, 미하엘 발락, 데이빗 벤틀리, 존 오비 미켈, 크리스티안 키부 등 상당히 재능있는 선수들을 영입해 작년 못지않은 전력보강을 해왔다. 현재 신임 김용휘 감독은 선수단의 효율적인 정리 및 스쿼드 체질개선을 좀 더 요구하고 있어 올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몇명의 선수가 첼시에 입단하게되고 이적될 예정이다. 올시즌 우리팀의 목표는 단하나. 최대한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는것이다. “
한편 前 첼시 감독 무링요는 이어지는 자신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나의 모든 감독생활은 이제 끝났다, 그러나 멋진 추억을 안고 간다. 수술대에 올라 당분간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후회는 없다. 이만하면 멋진 커리어를 보낸것이 아니던가 나는 내 길을 걸었고 꿈속에서 살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첼시에서 감독직이 어떤 일인지 말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은 다시한번 리그우승에 성공했다. 이만하면 괜찮은 퇴장이라고 본다. 물론 나는 스탬포드로 브릿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젠 다시 하나의 팬으로서 돌아온다, 파이를 먹으며 응원노래를 부르고 있을 날 만나면 아는척 좀 해주길 바란다.'
결국 그의 능력을 높이산 퍼거슨 감독은 1998-1999시즌에 그를 정식으로 1군 코치로임명하여 그해 트리플크라운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거액의 재계약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중히 거절, 대륙식축구와 영국식축구를 접목시키기 위해 99-00시즌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지도력을 쌓았다. 2000-2001시즌이 끝난후 2001-2002시즌엔 일본 J리그 최고 대우의 계약금과 연봉을 받으며 우라와 레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J리그 역사상 전후무한 시즌 전관왕이자 팀의 첫 J리그 통합우승(전기,후기리그,일왕배,나비스코컵 우승)으로 월드컵 개최로 축구열풍이 일던 일본열도를 들끓게했다.
그후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 직전 수석코치 부재로 고심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2002-2003시즌을 앞두고 2002년 5월 첫 영입을 선수가 아닌 그를 수석코치로 영입하여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컴백하였다. 마찬가지로 전시즌 수석코치 부재로 고전 했던 유럽의 거대 양 클럽들..2001-2002 시즌 유럽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의 델 보스케 감독과 우여곡절 끝에 겨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낸 AC밀란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또한 영입을 시도했으나 박용휘 감독은 결국 친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선택하였다. 그는 그동안 잉글랜드와 스페인, 일본 리그에서 얻은 다양한 지도자 생활을 통해 배운 대륙식 전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잘 접목시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8강이라는 비교적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2-2003시즌 다시 친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으로 돌아왔다.]
[아스날과 함께 잉글랜드에서 가장 대륙적인 축구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구 방위대 레알 마드리드의 벽을 넘을순 없었다. 2002-2003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시작은 불안했지만 결국 아스날을 역전하여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 여름 이적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 데이빗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때 어렸을때부터 각별한 우정을 나눈 절친한 친구였던 베컴의 간곡한 설득으로 그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로 다시 한번 자리를 옮기게 된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의 입단식에서 박용휘 수석 코치와 함께 스페인에서 플레이 하게 되어 흥분된다 라고 소감을 밝히는등 감독을 훌륭히 보좌하고 선수들에게도 신망 받는 등 비록 언론에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실력이 있는 스탭으로 평가를 받아왔었다…………...”
[절친한 친구 베컴과 함께 2003년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나는 읽고 있던 신문을 한 쪽으로 치우고 TV를 켰다. 온통 나에 관한 이야기로 영국
전역이 뜰끓고 있었다. 일주일전에 둘째를 임신한 나의 사랑스런 부인 주희가 저녁
먹으로 나가자고 조르고 있다. 지극정성 현모양처인 주희는 언제나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주는 너무 고마운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 이다.
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날,리버풀등과 함께 잉글랜드 최
고의 클럽중 하나인 첼시의 감독이 되었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이 나를 더욱 더 짓눌렀다.
희의 부탁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우린 런던 번화가인 피카딜리광장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고 비록 라이벌팀 서포터이지만 어느 마음씨 따뜻한 아스날 골수팬이 운영
하는 펍 (Pub)에서 환상적인 저녁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런던에서의 두번째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장으로 계시는 금호아시아나 그룹]
사실 난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중 하나이자 재계순위 7위 금호 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외동아들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날에도 금호 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금호 아시아나그룹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고 결국
내가 태어난것도 못보셨다. 그때문 이였을까? 난 아버지와 어려서부터 항상 갈등이
있었고 결국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항의 표출로 축구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축구를 시작했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아마 당시에 축구선수 그중에서 당시 브라질의 슈퍼스타 소크라테스를 동경해서
무작정 시작했던것 같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자 외동 아들인 나를 아버지처럼
금호 아시아나그룹의 차기 경영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지만 난 아버지 처럼 살기 싫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시작한 축구였지만 내가 들어갔던 학교의 축구부들은
전력이 매우 약해서 항상 지역 예선에서 매번 탈락을 거듭했다. 축구에 대한 재능이
없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순전히 반항심으로 시작한 내 축구인생을 하늘이 용납
하지 않으셨던 걸까? 부진한 팀과 함께 나 역시도 재능을 그리 나타내지 못하고 결
국 축구로 대학을 가겠다는 내꿈은 산산조각 났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K리그팀과의
계약은 커녕 연습생 시험에서도 어이없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선수수급이 원
할하지 못한 실업팀으로 진로를 바꿔 입단했으나 수동적이고 엘리트 중심 한국 프로
스포츠 세계에 너무 실망하여 얼마 안되 그만두었다. 절망스러웠지만 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축구종가 영국으로 떠났다. 이대로 축구에 대한 내 열정
그리고 시작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시작한거였지만 어떡해든 성공해서
아버지한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잉글랜드로 무작정 온 난 고민끝에 코치로의 길을 선택하여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였
다. 나에게 더이상 물러설곳은 없었다. 매번 탈락과 실망만 안겨주었던 하늘이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코치시험에 내가 최연소로 합격하는 기적을 안겨다었다. 잉글랜드
에서 처음시작한 나의 경력은 스페인 최고의 클럽의 수석코치로 일하다가 드디어 감
독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어렸을때부터 동경하고 꿈꿔왔던 소크라테스와 같
은 세계를 빛낸 축구스타가 되진 못했지만......만족하며 항상 감사했다. 2002년 1월 J
리그 우라와 레즈 감독 시절 우리는 훌륭하게 전기리그를 우승하고 후기리그를 준비
하기 위해 전지훈련차 미국 마이애미에 갔는데 그곳에서 한 여자가 내눈에 띄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주희. 1980년 5월 17일생. 정말 눈이 부실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여자
였다. 나와는 6살이란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착하고
차분하고 예의바르고 몸과 마음이 모두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루이뷔통과
빅토리아 시크릿의 메인모델로 활동하는 슈퍼모델이였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그동안 나는 바람둥이 기질로 상당한 연애경력과 여성편력으로 유명했었다. -_-;
[나의 아내이자 동반자 주희]
하지만 주희는 달랐다. 처음 만나자 마자 우린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교제를 하게 되었다. 우리 둘다 서로 너무 잘 맞았다. 성격도 그렇고..모든면에서...
주희는 레슬리여대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해서 사람 다루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나의 직업상 곧 우리는 떨어서 지내야 했고 결국 내가 우라와 레즈 감독으로 있을땐
도쿄와 뉴욕을,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로 일할땐 영국과 뉴욕을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로 스페인에 정착했을땐 마드리드와 뉴욕을 서로
국경을 넘나들며 너무나 소중한 사랑을 나눴다. 참, 그동안 끔직하게 많이 나온 국제
전화비를 모두 말없이 감당해준 우라와레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알 마드리드 구단
에게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04년 3월 난 만난지 2년만에 청혼을 했고 그녀 또한 이런나의 청혼을 매우 기쁘게
받아줘 우린 2003-2004시즌이 끝나자마자 6월달에 한국에서 모든이의 부러움과 축
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결혼했다. 우리부부는 서로를 잘 배려했줬고 난 그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베컴,캄비아소,
피구,지단,라울등 내가 지도 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여러 선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부부가 결혼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것이라고 추측한다.지금은 서로 이런
저런 이유로 각자 다른팀에 있게 되었지만 항상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멀리서나마 이렇게 행운을 빌고 있다.
[주희와 신혼여행으로 갔던 타히티 보라보라섬에서]
[레알 마드리드 시절 집근처에 있었던 그란비아 거리]
결혼을 하고 아름다운 타히티로 신혼여행을 갔다오고 마드리드의 최대 번화가 그란
비아 거리 근처에 있는 신혼집에서 단둘이 알콩달콩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면서 난
그녀와 느끼는 행복에 너무나 행복했다. 또 그녀의 밝은 성격에 서로 갈등의 골이 깊
어진 나와 아버지와의 갈등도 조금씩 해빙무드를 타기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치 않고
주희가 2005년 1월 말쯤에 임신을 하여 그해 연말 아들 성민이가 무사히 건강하게 태
어났다. 이제 나도 아빠가 된것이다.
그동안 수석 코치로 있었던 이야기를 좀 해야 겠다. 내가 베컴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
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때 대표적인 스페인 언론이자 反 레알 마드리
드 언론인 엘문도는 나의 잦은 이적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좀 억울한게 유
럽의 구단은 나를 낯선 동양인 코치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으로 항상 1년 계약을
선호했기에 잦은 이직은 나 역시도 어쩔수가 없었다.
아무튼 의욕적으로 맞이한 2003-2004시즌. 예상대로 우리의 위대한 갈락티코 전사
들은 전반기에 만족할만한 성적을 냈으나 팀이 갑자기 윈터브레이크 이후로 페이스
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결국 스페인 국왕컵은 레알 사라고사에게 프리메라리그 우승
은 발렌시아에게 그리고 믿었던 챔피언스리그는 8강 2차전에서 AS모나코에게 패배
하는 드라마와 같은 충격적인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맛보기도 했다.
2003-2004시즌 전반기에 보여준 위력적인 모습을 위안삼고 또 연인이였던 주희와
결혼하여 가정이 안정되고 신혼의 힘으로 더욱 힘을낸 2004-2005 시즌. 2004-2005
시즌은 입단이 거의 확실시 됐던 아스날의 미드필더 패트릭 비에이라와의 막판 개인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이적이 결렬되면서 불안 요소를 앉고 시즌을 출발하
게 되었다. 결국 초반부터 불안 요소로 지적된 중앙 미드필더진이 붕괴되면서 후반기에
선전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무관으로 주저 않고 말았다.
[비에이라 영입실패는 곧바로 중앙 미드필더진의 붕괴라는 재앙을 안겨다 주었다. 04-05시즌]
2005-2006 시즌은 2004-2005 시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 또한 더욱 철저히 준
라모스,호빙요,밥티스타 등 미래가 기대되는 영스타를 영입하는 한편 다시 한번
많은 기대를 받으며 시즌을 시작했으나 몇 년전부터 계속 지적된 팀의 전력 불균형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2년연속 충격적인 무관에 그치게 되었다. 그나마 2005-
2006시즌의 위안거리를 찾자면 세비야에서 거액을 주고 데리고 온 라모스가 결코 해
결할수 없을것만 같았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 불안요소를 기대이상으로 해소시
켜줌과 동시에 제2의 이에로라는 수식에 걸맞게 성장해주었다는거와 아내 주희가
2005년 연말에 우리 부부의 왕자님 성민이를 무사히 출산했었던거 정도? 아무튼 몇
년전부터 대내외적으로 팀과 함께 계속 승승장구 하던 나 또한 주춤하게 되었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시즌이 결국 충격적인 무관으로 그치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나
는 잠시 모든걸 잊어볼 겸 휴가차 아내랑 신혼여행으로 갔던 타히티로 휴가를 갈려
했으나 어머니가 아내와 성민이가 보고 싶다고 성화를 하시고 아버지께서 금호 아시
아나그룹의 지분을 더 취득하라고 하셔서 내키지 않았지만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정말 오랜만에... 오랜만에 와본 내방을 보니 정말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웠구나..하
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그룹 경영 지배권을 위해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지분
을 더 취득하고 K리그도 관전하고 난생 처음으로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버
지와의 사이도 아내 덕분에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불편한건 어쩔수 없었지만 오랜
만에 한국에 온 나와 아내 그리고 성민이 까지 우리모두 어린애 모양 들떠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지내던 나에게 일생의 잔환전이 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나
는 그 날이 5월 20일 오후 10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3달전 아스날과 격돌한 챔피
언스리그 16강 2차전 런던 하이버리로 원정경기를 가서 결국 아스날에게 8강 진출권
을 넘겨준 그날의 경기를 아내가 녹화를 해줘 유심히 보고 있었다.
[16강 2차전 아스날과의 경기직후. 1차전 홈경기에서 앙리에게 내준 골이 뼈아팠다.]
그날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졌는지..어디가 문제가 있었는지..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유심히 경기를 보고 있었던중 갑자기 전화한 통
이 걸려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누군지 의아해하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박용휘 씨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이 늦은 시각에?'
'하, 오랜만입니다. 박~ 첼시 사장 피터캐년 입니다.'
'엇! 안녕하세요..피터..정말로 오랜만이네요(웃음) 잘지내시죠?'
'그럼요(웃음)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이네요(웃음) '
'근데 무슨일로 이 늦은 시각에 전화를 하셨나요? 아 영국은 지금 낮이겠군요'
'말 돌릴필요 없이 본론만 말씀드리죠. 박 당신에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전화를 건 이유는.. 요 근래에 우리 첼시 구단은 조세 무링요 감독이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인해 은퇴를 결정하게 되어 그를 대신할 후임 감독 물색회의를 거듭하고 있었어요. 무링요가 은퇴하면 첼시의 감독직이 비게 되는데 조 당신이 그자리를 메꿔주셔야 겠습니다.'
'네?? 저보고 첼시 감독을 맡아 보라구요? 지금 농담하십니까??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구단은 조세 무링요 감독의 후임자를 놓고 적격자를 조사하던 중, 지난 93년부터 99년까지 그리고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저와 같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해서 일해본 경험도 있고 전 당신이 그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우라와 레즈,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여준 능력을 예전부터 높히 평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무링요 감독도 FC포르투 시절부터 당신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하고 직접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게 자신의 후임감독으로 당신을 강력히 추천했어요. 기술 디렉터 프랭크 아르네센 역시도 당신을 추천했구요.
결국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운영진들과 심사숙고 끝에 박용휘 당신을 첼시의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기로 결정했어요. 아직 감독으로서는 젊고 경험이 적다는 단점이 있으나, 당신의 뛰어난 공격적인 전술 운용능력과 조직력 강화능력. 그리고 선수들을 팀에 잘 융합시키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쉽에 주목했습니다. 첼시가 원하는 감독이 바로 박용휘 당신같은 감독입니다. 미스터 박 부디 저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주십쇼.'
'.............'
그 점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끝내게 우리 세계 스타일 아닙니까? 하하..미스터 박 우리 첼시의 감독이 되어 주시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음....... 며칠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중히 생각해 볼수있게요.. '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신인이나 다름없는 내게 잉글랜드 최고 클럽중 하나인 첼시의 감독이 되라는 제안이 들어오다니...갈등됐다. 친정이나 다름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감독이 되야하나..이 일생일대의 찬스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뿌리칠 것인가. 내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 선것이었다. 그때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차기 잉글랜드 대표침 감독으로 선정된 절친한 선배중 하나인 미들스브로의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생각났다.
맥클라렌 퍼거슨의 뒤를 이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차기 감독감으로 꼽혔지만 퍼거슨 감독의 연장계약으로 결국 맥클라렌 자기 자신을 위해 더늦기전에 도전을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나와서 미들스보로의 감독이 되었다. 나도 맥클라렌 사정과 비슷해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로 일하던 2002-2003시즌 중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위해 맨체스터를 방문한 그와 우연히 술을 함께 했는데 그가 말하길..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절때 놓치지 말아야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기회라도.. 도전해보고 정 안되면 그때가서 후회해도 늦지 않아..' '그래..첼시의 감독이 되서 나의 능력을 첼시에서 마음껏 펼쳐보는거야......'
다음날 아침 가족들에게 저녁에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
일에 대해 무표정이셨지만 날 자랑스러워 하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또 다시 엄청난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리는 감독직을 맡을필요 있냐고 조심스레 만류하시는것
같았고 아내 주희는 내 성격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에 말은 못하지만 조심스레 걱
정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런 나를 위해주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난 첼시에서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결국 고민끝에 첼시 감독직을 수락하고 나와 아내가 런던으로 출국하는날..내가 축 구계에 있는걸 못마땅해 하셨던 아버지 또한 어머니와 아내 주희의 설득으로 드디 어 마음을 열고 어머니와 함께 인천국제공항까지 배웅나오셨다. 짧지만 오랜만에 공 항에서 부자간의 정을 나누었다. 또 아버지는 내가 런던까지 편하게 갈수 있게 아버 지 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의 1등석(First Class)팃켓을 내 손에 꼭 쥐여주셧다. 그리 고 꼭 성공하고 건강하라고 하셨다. 정말 너무나 감사했다.
[ASIANA AIRLINES의 FIRST CLASS]
항상 난 혼자라 생각했고 주희와 결혼한뒤 많이 바뀌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불신이
가득찼었다. 하지만 이날 그동안 내생각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생각이였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죄송해요 부모님...
[면세점에서 쇼핑하다가 갑작스레 몰려든 언론사들 때문에 잠시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의 수많은 언론들도 나와 아내를 취재하러 왔다. 유명 슈퍼모
델 출신 아내 주희의 영향인지 연예정보 같은데서도 나와 우리부부를 취재하러 왔었
다. 우리부부는 갑자기 몰려든 언론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성실히 인터뷰에
임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런던으로 출국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아내와 성민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시기 때문이다.....
------------------------------------------------------------------------------------------------ 저희 매거진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설문을 읽어주시고 많은 의견 부탁드려요!(__)
[설문조사]
1 첼시에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은 어디이고 백업맴버로 쓸만한 선수는 누가좋을까요?
1. 스트라이커 2. 미드필더 3. 수비수(구체적으로 예 : 센터백 or 윙백) 4. 남는 선수로 트레이드해서 매꿔요. 5. 첼시가 취약하다고?? 보강은 필요 없다.
2 첼시에서 방출되야 할 선수는?
1. 정체가 머냐 제레미 은지탑 2. 왼쪽 윙백이 가능한 크리스티안 키부의 합류로 추워진 웨인 브릿지? 3. 안드레이 셰브첸코, 로케 산타크루즈의 합류로 입지가 좁아진 드록바. 4. 데이빗 벤틀리 합류로 역시 애매하게된 션 라잇 필립스.
P.S 이글은 FM2007을 배경으로 쓰여졌습니다. 글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올라올 예정이구요 댓글이 많거나 반응이 좋으면 더 빨리쓸수도 있겠죠? ^^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첫댓글 신선하네요 ㅎㄷㄷ
은지탑 방출ㅋ 근데.. 약~간 염장글.....
은지탑 ㄱㄱ
ㅋㅋ 신선한데요~~ㅋㅋ 제레미는 방출 ㄱㄱ
.................염장글?!?!?!??!?!?;;;;;;;
헐 진짜 부인임미? ㄷㄷㄷㄷㄷㄷㄷ 일단 소설재밌음.....
정말 부인?????? ㅎㄷㄷ
스트라이커와 라잇 필립스. 근데 정말 여친or 부인이신가요? 궁금궁금;;
;;;;;;;;;;;
저번에도 이거랑 비슷한 글 본거 같은데... ㅋㅋ 빨리빨리 연재해주삼 ㅋㅋ
저기에 나오는 주희라는 인물은 제가 알기론 JJ스톰이라는 전자 현악기 그룹에서 활동하던 그 주희씨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한번 공연하는걸 봣는데 노래도 잘하고 멀리서 보면 한채영하고 비슷하게 생겼더라구요... 1월에 싱글을 낸다고 한것 같았는데... 그분이 맞는건가요?? 근데.. 시꺼먼 바탕... 눈아팠어요.ㅡㅠㅠ
진짜 부인이시면 염장 ㅋㅋ
정말 신선하고 염장인 글이네요 ㅇㅅㅇ!! 암튼 재미있으니 응원하고 많이 찾아보겠습니다 ㅎㅎ 건필이요 ㅎㅎ ps.1번에 3번 윙백이요. 첼시는 진짜 화려한선수층이있지만 윙백만큼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더라구요 ㅇㅅㅇ..;; 2번은 조금많은데;; 제레미, 브릿지, 셰브첸코 모두 조금은 아쉬운 선수들임..;; 셰브첸코는 커리어에비해 조금능력치가 ㄷㄷ;; 라잇 필립스는 정말 무지막지한 속도. 써보면 정말 좋아요 ㅇㅅㅇ. 이상입니다 ㅇㅅㅇ;;
정말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