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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CCM의 문제점
바이블파워
CCM은 세상적인 음악이다. 성경은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라고 말씀하지만, CCM은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2:15-16).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롬 12:2).
최근 들어 ‘CCM의 대중화’를 선언하며 신인 가수로 신고를 마친 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국민일보>의 보도가 있었다. 기존의 CCM들과 달리 팝적인 요소를 갖춰 멜로디가 쉽고, 크리스천의 생활 모습을 옮겨놓은 듯한 노랫말이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르는 CCM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CCM의 대중화를 선언한 이들 CCM 가수들은 리듬 앤 블루스(R&B), 발라드 같은 전형적인 팝 장르 외에 유로댄스 음악들도 선보이며 대중음악과 경쟁에 들어갔다.
CCM의 세속성은 CCM 자체가 세상의 관능적인 리듬을 빌어온다는 점에 있다. CCM은 주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세상으로부터 모든 형태의 음악을 가져와 사용함으로써, 육신을 즐겁게 해주는 세상 음악들과 분리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성별의 담을 허물고 거룩한 것과 불경한 것,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분짓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모독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신다(겔 22:26).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불경한 것과 불결한 것을 받으실 만큼 거룩하지 않으신 분이시냐는 것이다. CCM은 가사만 ‘기독교적인 듯한’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딤후 3:5) 불경한 세상 곡조를 따르고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CCM이 드려진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성별의 담을 허문 이스라엘의 경우를 상고하면 그 답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시인인(삼하 23:1) 다윗은 악으로부터 그를 구해주신 주 하나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오래 참고 주를 기다렸더니 그가 내게 귀를 기울이사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가 나를 무서운 구덩이와 진흙 수렁에서 끌어내셔서 내 발을 반석 위에 세우시고, 내 걸음을 견고히 세우셨도다. 또 그가 내 입에 새 노래를 두셨으니 곧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양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주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원받은 “내 입에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두셨음에 주목해보자. 신약적으로 봤을 때 “새 노래”란, 팝 음악처럼 우리가 이전에 즐기던 옛 노래가 아니다. 구원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갈 6:15)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이 드리는 찬양은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없이 드릴 수 없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너희에게 말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곡조를 만들고』(엡 5:18,19). 이 “영적인 노래”는 영이 죽어 있는 죄인(자연인)은 부를 수 없다(엡 2:1). 찬양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영적인 노래는 죄인의 죽은 영이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에 부르는 찬양, 곧 “새 노래”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며, 구원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신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을 가져다 쓰는 CCM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찬양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새롭게” 부르는 팝 스타일의 노래를 “새 노래”라고 한다면, 구원받고서 “새롭게” 저지르는 죄들 역시나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새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곡조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대부분이 필라델피아 대부흥 시대에 작곡된 찬송가들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곡조를 주셔서 만들어진 거룩한 노래들이며, 당대의 경건한 영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여러 세대가 지났건만, 지금도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찬양들을 구시대적이라 여기지 않고 처음의 그 감동과 감사로 즐겨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뮤지션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세상 유행과 맞물려 돌아가는 CCM과 거룩한 찬송의 차이이다.
그리스도인은 죄(세상과 육신과 마귀)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존재이기에 세상 음악은 더 이상 우리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록, 발라드, 리듬 앤 블루스, 유로 댄스 같은 팝 스타일의 음악을 부른 것은 우리가 이전에 죄인이었을 때인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다(벧전 4:3). 그 모든 음악의 근원인 “록”은 아프리카 주술 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지 않고 드리는 것은 그것이 감사의 찬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교회음악(敎會音樂), 복음성가(福音聖歌)와 CCM의 정체성
1).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우리 나라 대중음악계에서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 있다면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을 들 수 있다. 줄여서 CCM으로 불리는 이 음악은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CCM 대신 '가스펠송(Gospel-song)'이란 말과 이를 번역한 복음송가란 말로 쓰여왔다.
CCM이란 말은 미국에서 들어왔다. 복음송은 무디와 생키가 부흥운동 중 1873년에 뉴캐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가스펠 송'이라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가스펠 음악(Gospel Music)'으로 통칭해 왔다. 그런데 흑인들이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보통 '가스펠'이라 부르는 '블랙 가스펠(Black Gospel)'을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흑인들의 가스펠은 그 창법이나 음악 스타일이 다른 장르와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한편, 백인들은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컨츄리풍의 '서던가스펠(Southern Gospel)'을 오랫동안 발전시켜왔는데, 이 음악도 다른 장르와는 구분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흑인음악(BlackGospel)과 백인음악(SouthernGospel)이 섞여 만들어진 록큰롤(Rock'nRoll)이 등장하면서 기독교 관련 음악도 블랙 가스펠이나 서던 가스펠의 맥과는 다른 음악이 등장하였다. 이 음악은 외양적으로는 일반 팝 음악과 구별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다루고 있었다. 이 음악이 바로 CCM인 것이다. 처음엔 이 음악을 예수 음악(JesusMusic), 또는 지저스 록(JesusRock)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이 음악을 1970년대 말부터 CCM이라는 용어로 부르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차트 전문지인 <빌 보드>는 팝/록 게열의 음악을 CCM으로, 흑인전통 음악인 가스펠과 소울(Soul), 리듬 앤블루스(R &B) 스타일의 음악을 가스펠로 분류하여 차트에 반영하고도 있다)우리 나라에서는 1960~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가스펠', '가스펠 뮤직'을 들여오면서 이들을 '복음성가'란 말로 정착시켰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이나 성가와 대비되는 대중적인 기독교 음악'이라는 뜻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사실 '복음성가'란 말보다는 CCM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지면서 1980년대 말부터는 CCM이란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포괄적 개념으로의 CCM이란 미국에서 흑인음악인 가스펠과 대비되는 크리스천 음악, 즉 팝, 록 계열을 포함한 현대 대중음악 스타일을 띤 크리스천 음악으로 좁게 지칭할 수 있고, 요즘 시대에 육적인 음악의 형태화 하여 따라 가는 음악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2). 복음송(福音頌/Gospel Song)
복음송(福音頌)이란 복음(Gospel)과 노래(Song)가 합쳐진 말이다. 복음송은 주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찬송가(Hymn)나 부흥가(Revial song)와도 구별된다. 이 복음송이 찬송가와 다른 점은 가사보다 음악성에 강조를 둔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화성음을 사용한다든지 불규칙적인 강한 비트를 사용하거나 멜로디가 없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복음송과 CCM의 차이는 별로 없다. 복음송의 가사 내지 찬송가에도 대중 음악의 곡을 붙이면 CCM이 되는 것이다. 이를 굳이 구분한다면 복음성가가 매우 제한된 그리고 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좀 건전하고 은혜로운 찬양이 복음송이라면 감각적인 음악성에 의해 연주를 강조한 것이 CCM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CCM 음반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에는 CCM은 록 밴드인 스트라퍼(Stryper)와 샌디 페티(Sandi Patti)가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기독교 방송(CBS)으로 독보적인 전문 CCM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CCM전문 잡지가 등장하였고, PC 통신을 통한 애호가 집단이 늘어가고 있으며, 국내의 젊은 가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CCM을 시도하고 있다.이 CCM은 기존의 찬송가에만 매달렸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어 쉽게 받아들이고 영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기존의 찬송가를 고집하는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부 기성인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찬송이 필요하다는 주장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무엇이 크리스천 음악을 크리스천 음악답게 만드는가? 간단히 대답하자면 크리스천 음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거나 그와 관계되는 내용을 나타내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진 음악'을 말한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있다.
분명 CCM은 대중적인 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CCM은 대중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등장한 CCM은 기존의 기독교음악이 갖고 있던 기능보다는 선교와 오락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의 음악과 CCM의 공연 같은 음악은 음악적 분류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즉 예배음악과 CCM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기능을 발휘한다. CCM의 분명한 목적은 예배를 위한 것은 분명 아니라는 사실이다.
3). 찬반양론
이렇게 의견들이 찬.반으로 갈리고 있는데, 각각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에서는 찬송과 복음송이라는 2분법에 의해 복음송과 CCM 이 두 가지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복음송이라는 이름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1) 찬성론
① 교회는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맞은 문화를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CCM은 신세대 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독교 음악이다. 특히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건전한 대용(代用) 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
②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 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③ 음악은 본래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에 선한 메시지를 결합하면 선한 음악, 악한 메시지를 담으면 악한 음악이 된다. 영성은 평온함(serenity)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구약의 예배에는 매우 왕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록 음악 등 비트가 강한 음악에도 기독교 메시지를 접목시켜 사용할 수 있다.
④ 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교역자와 기성세대 교인들은 현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경험, 안목이 극히 빈약한 사람들이거나 보수주의자들이다.
(2) 반대론
① 복음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CCM이 세속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오락적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 태도에 머무르게 하거나 말씀과 기도로 양육된 젊은이들이 CCM을 접함으로써 다시 세속적 오락 문화에 빠지게 되는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어 아름다운 찬송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② 성경 어디에도 음악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한 예가 없다. 비기독교인들은 세속적 음악을 흉내낸 교회음악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모습의 크리스천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③ 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분리할 수 없다. 즉 록, 헤비메탈 등은 가치 중립적인 음악이 아니라 이미 반항성, 성적인 방종 등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는 악한 음악이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악기에 의한 찬양이 언급되는 것은 악기 사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④ CCM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와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CCM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한 문화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CCM 가수들이 표리부동한 신앙과 문란한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4). CCM의 문제점
(1) 문제점
첫째는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선별력의 빈약성과 남용에 있다. 곡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그 양식에 대한 이해가 안 되어 있어 마구잡이로 선곡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내에는 수천 곡의 복음송가와 CCM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들 모두가 적합성과 작품성이 검증이 안 된 채 불리워지고 있다. 어떤 곡은 시상(詩想)을 서툴게 작곡해 부르는 교인들이나 가수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곡들이 많다.
두 번째는 성서 내용이나 기독교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고 모두 성가(聖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국내 교회들은 이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순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크고 작은 교회당에서 얼마든지 확인 할 수가 있다. 세속 가요나 유행가 같은 CCM을 분명한 검증도 없이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세속화를 부채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라는 가면을 쓴 CCM이나 복음송가가 교회당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직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예배음악은 정통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성가(聖歌)는 일반 세속 곡과는 달리 모양새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 란 곡에 기독교적인 가사로 바꾸었다고 성가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성가나 CCM, 그리고 찬송가 등은 처음 작곡될 때부터 교회음악으로 태어났다. 반대로 '동백아가씨' 는 처음부터 세속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음악의 모습과 내용은 세속 음악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고 달라야 한다.
세번째는 CCM이나 복음성가 연주가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점이다.
30여 년 전, 캬바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드럼 세트(Drum Kit(SET)의 반주 음형을 그대로 교회에서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세속화를 초래하는 짓이다. 복음성가 가수들의 창법도 유행가 수들의 방법을 그대로 흉내내는 일도 없어야겠다.
성가 -CCM과 복음성가- 창법에 맞는 발성법 개발이 필요하다. 크래식을 부르는 성악가와 대중가요를 부르는 창법은 다른 것이다. 유행가 가수들의 창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CCM 가수나 복음성가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거북스럽고 역겹게만 들릴 수 있다.
교회음악이 종교적인 특성을 갖고 있듯이 성가 연주도 그에 걸맞는 창법이나 연주법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성가 창법에 더 적합하고 더 기도교적인 연주인가란 물음이 있을 수가 있다. 그것은 감각적이거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세속적인 표현성보다 거룩한 표현성 접근이나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표현성 접근 연주가 더 합리적일 것 같다. CCM이 찬송가가 될 수 없다는 이들은 곡에서뿐만 아니라 가사도 찬송으로 부르기에는 내용이나 형태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2) CCM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삼위 일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설픈 신앙을 고백한 신앙고백서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② 내용이 비성서적인 것이 많다.
③ 내용이 위엄 있고, 경건하고, 은혜스럽고, 탈세속적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의 신앙 고백처럼 미숙하고 좀 유치하다.
④ 가사 내용이 청소년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것이 많다.마치 유치한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용어 자체도 저속하다.
⑤ 오락성이 강한 가사로 되어 있다. 감탄사를 많이 사용했고 빠른 템포로 키타나 탬버린 등으로나 신나게 연주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⑥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작사되고 작곡된 것이어야 하는데. 감정적인 흥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진정한 영적 자극에 의해서 된 것인지 아니면 머리로 짜낸 글인지 알 수가 없는 가사들이 많다.
⑦ 개인적인 체험이나 신앙고백이 많아 회중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가사들이 많다. 또 진짜 자신의 신앙고백인지도 의심스럽다.
⑧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다. 가사가 단순하고 짧다. 짧은 시구의 반복으로 예술성이 없다. 내용의 깊이도 없다. 문학에 있어서의 시로 말하면 청소년들의 사랑 타령의 넉두리를 쓴 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잘 쓴 가사 같지만 잘 분석해 보면 유치해서 찬송가사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⑨ 회중이 공감하여 다같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적다.가사의 내용 반복적이고 곡이 빠른 템포로 되어 있어서 젊은이들에게나 부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나이 많은 회중이 합창으로 부르기는 더욱 어렵다.
⑩ 대부분의 작품이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다.
타 종교인이 돈을 벌기위해 작사 작곡해서 전파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재주가 좋아 상업적으로 얼마든지 복음송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특히 복음송을 이용하여 세속화 상업화하려 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비록 기독교인이 작사 작곡했다 하드라도 그것이 돈을 벌 목적으로 아티스트들에 의해 작사 작곡해서 테이프로 냈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다분히 오락성이 강한 음악이 나오게 된다. 주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계층인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CCM 속에 팝음악이 가진 오락적 자극적 상업적 요소가 강화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과 순수성이 왜곡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 CCM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⑪ CCM이 예배음악으로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들의 주장 중의 하나는 예배가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을 드리는 태도도 참되고 진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영적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찬양이란 성령께서 내 몸을 주관하시고 내 영이 내 혼과 몸을 주관하여 드리는 찬양을 말한다.
그런데 TV에 나와서 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신들린 사람과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10대 20 대의 젊은이 악기를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두드리며 마치 신접한 사람처럼 눈을 감고 몸을 흔들고 손을 내저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우성 비슷하게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도취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복음송은 일반적으로 찬송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송을 기독교의 대중음악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중음악처럼 찬송가의 생명은 기나 복음송의 생명은 짧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찬송가는 같은 찬송을 반복해 불러도 권태롭지 않고 은혜로우나 복음송은 쉽게 싫증나고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헤비메탈. 록 등 심지어 대중가요의 곡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인데 세속적인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받아주실 리 없다. 록음악은 섹스와 마약과 범죄를 유발하는 음악이다. 록음악의 많은 내용들이 섹스와 폭력과, 마약, 살인 등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불규칙적인 리듬과 감각에 호소하는 음색 비화성음이 강한 비트음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사람을 폭력과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가져오게 하여 영혼과 몸을 타락시켜 나중에는 자멸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5). 복음송(福音頌)의 허용 범위
그러면 모든 복음송이 이런 문제점만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복음성가의 특징은 찬송가와는 달리 신앙간증을 강조하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결단을 자극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복음송가는 대중지향적이요, 초신자들에게 잘 호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노래를 들음으로써 감정의 자극을 받아 복음적 결정을 내리도록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 적합하다.
맺는말
세상에는 클래식도 있고, 아름다운 가곡들도 있고, 또 가요나 팝송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음악들은 모두 인간의 노래들이다. 따라서 진정한 음악은 그리고 최고의 음악은 찬송가이다. 우리가 찬송 이외의 음악들을 찬송가보다 한 차원 낮추는 것은 이들의 노래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지성과 감성, 의지 등에서 나온 모두 인본주의에 의해서 된 것이요, 타락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클래식하는 사람은 그것이 지닌 예술성 전통성의 고상함에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 질 수 있고, 클래식을 우상화함으로 영적인 타락 속으로 빠져들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그 영향력이 크다. 미술이나 문학은 그 작품을 돈을 주고 사야만 감상할 수 있어 그 향유 계층이 넓지 못한데 음악은 스위치만 틀면 누구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이다.또 음악은 그 영향력이 몹시 크다. 미술이나 문학은 음악만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미술로는 병을 못 고쳐도 음악으로는 고칠 수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지만, 괴상한 음악, 불협화음의 음악은 사람을 흥분 허무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한다. 우선 가사만 보아도 저속한 것들로 이루어 졌다. 가요의 대부분 내용은 그리움-만남-이별- 슬픔- 허무 등의 공식으로 되어 있다. 특히 락음악은 완전히 사탄의 음악이다.락 음악은 1950년대 초,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 공통점은 성관계할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한다.
락 뮤직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달 후에, 캐나다 어느 신령한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짐. 설교도 중 어느 아가씨가 뱀같이 몸을 조이면서 개 짖는 소리 "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다. 내가 내 천사들과 이 땅에 내려와 모든 청소년들을 타락시켜버리겠다." 정말로 그 뒤 2년 후 영국의 4인조 락 그룹이 전 미국을 초토화 시켰는데, 이 그룹이 유명한 비틀즈다. 락 음악의 내용은 주로 인생찬미, 살인, 쎅스 마약, 폭력, 자살 찬미. 사탄 숭배, 십자가 모독 등으로 되어 있다.
락 음악의 리듬은 뒤틀리는 음과 환각적인 고조임, 메탈록의 힘은 단 30분만에 사람의 몸에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환각상태에 빠지게 한다. 괴상한 몸짓 현란한 조명. 전자악기의 요란한 금속성, 광기어린 마귀 같은 얼굴화장. 미친 사람 같은 복장, 찢어지는 괴상한 목소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적이고 발작적이고 집단적인 히스테리, 저돌적인 춤. 노래가 끝나면 찾아오는 것은 허무감-자살충동, 술, 마약복용 생활 자체가 정리되지 않고 불안 초조로. 들떠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찬송가다. 다시 말하면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요, 제물이요, 기도요, 신앙고백이요, 헌신이다. 그러므로 찬송가의 바른 이해를 통해 바르게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성도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드려야 한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찬송을 잘못 불러서 찬송의 가치를 격감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어 졌다고 해서 예배의 본질이 바뀌어져서는 안 되듯이 시대를 핑계삼아 찬송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이 참되시니 찬송도 참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찬송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하나님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참뜻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이 진정과 신령이라면 거기에 드리는 찬송도 거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수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거짓 찬양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 향하는 예배가 사람에게 향하는 복음성가를 가지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는 볼 수 없다.사탄은 교묘한 방법으로 온전한 찬양을 드리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다. 교회 음악을 세속화시키는 것은 사탄을 도와주는 행위이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청년 종합예술이니 시대의 흐름이니 하는 명목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할 교회음악을 세속음악으로 조작시키는 일은 세상과 영합하는 일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복음송의 난립은 좋은 찬송가를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는 찬송가는 잘 부를 줄 몰라도 복음송은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찬송은 고리타분하고 복음송은 활기가 넘치고 신나는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아직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르게 가르쳐 바르게 인도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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