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전기차가 미래”
1896년 9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내러갠셋파크 경마장 출발선에 전기차 2대, 가솔린차 5대가 나란히 섰다. 총성과 함께 차들은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차는 리커(Riker) 전기차 회사의 삼륜차였다. 무거운 납축전지와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가 초기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앞섰던 것이다. 125년 전 이 경주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꺾은 가장 오래된 레이스로 기록됐다.
▷이달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제너럴모터스,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되돌릴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2030년부터 미국에서 팔리는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채우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20세기 초입에 반짝 인기를 끌다가 1908년 선보인 포드 ‘T모델’ 등 싸고 성능 좋은 가솔린차에 밀려 사라졌던 전기차가 확실한 대세로 떠올랐다.
▷지구 전역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가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언을 재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보다 55% 줄이는 계획을 6월 말 발표하면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고, 폭스바겐그룹과 BMW도 2030년까지 신차 중 전기차를 절반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연일 이런 소식을 듣다 보니 차를 바꾸거나, 처음 장만하는 사람이라면 전기차, 가솔린·디젤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를 샀다가 머잖아 바꿔야 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구매자 중 40, 50대 고소득층이 많은 걸 보면 아직 청년 등에게 전기차 가격은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최소 15∼20년 정도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기차 가격을 좌우하는 배터리 가격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주요국에 친환경차만 수출하는 시점을 2040년으로 잡아둔 현대차·기아는 다소 급해졌다. 올해 1∼7월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 친환경차가 작년 동기의 약 3배로 늘어나는 등 흐름은 좋다. 연내에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내년엔 기아 ‘EV6’가 수출되기 시작하면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다. 그보다는 전기차가 불러올 산업구조 변화가 문제다. 엔진차에 비해 전기차는 부품 수, 생산 인력이 30% 이상 줄고 자율주행 기능 등에 대한 투자는 훨씬 많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다간 닥쳐오는 전기차 시대의 파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