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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브라우닝 중기관총(Browning M2 Heavy Machine Gun)
M2 브라우닝은 미군의 제식 중기관총이다. 보병들이 지원화기로 사용하며, 전차 등에도 많이 탑재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나와 꾸준히 개량되어 지금도 쓰이는 손꼽히는 걸작총기. 기관총임에도 높은 정확성과 긴 사거리 덕분에 1967년부터 2002년까지 최장거리 저격 기록을 가지기도 했다.
1918년 미 육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원정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s) 총사령관인 존 퍼싱(John J. Pershing) 대장이 제기한 중기관총의 긴급 조달 요청을 받아들이고, 자동화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브라우닝(John M. Browning)이 직접 M1917을 .50 BMG 탄약에 맞게 재설계한 M1918의 도입을 추진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은 1921년에 들어서 반동 제어력과 발사속도가 개선된 M1921을 소수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존 브라우닝이 벨기에에서 심부전으로 급사한 1926년 이후,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주임 설계기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새뮤얼 그린(Samuel G. Green) 박사의 노력 끝에 좌우측 모두 급탄이 가능하도록 총몸에 개량이 가해진 M1921A1이 비로소 오늘날 널리 알려진 M2의 제식명으로 채택되었다.
여기에는 수랭 방식을 따르는 기본형 이외에도 두껍고 무거운 총열을 갖춘 공랭 방식의 파생형인 M2HB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1938년에는 유효사거리를 더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총열의 길이 또한 36인치(약 914mm)에서 45인치(약 1,143mm)로 연장되는 개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41년과 1945년에만 200만정 가량이 생산되었다. 연합국은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의 다양한 전장에서 여러 형태로 운용했는데, 그 인기는 적국인 일본군마저도 M2를 모방해서 항공기에 탑재할 호 103과 Ho-5를 개발할 정도. 연이은 6.25 전쟁,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군 전체에 걸친 제식 역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8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다수의 대체 시도가 있었는데, 가장 최초라 할 수 있는 M85 중기관총은 M60 패튼(Patton) 계열 주력전차와 AAV-7A 상륙장갑차의 상단 거치용 기관총 및 동축기관총 용도로 1959년에 개발되었는데, 기존 탄띠보다 성능이 우수한 push-through 방식 탄띠를 사용하고 소염기가 장착되었으며 총열을 빠르게 교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복잡한 내부 구성으로 인한 신뢰성 저하와 기존 탄약 체계와 호환되지 않는 탄띠로 인한 비용 증가로 인해 걸프 전쟁까지만 사용되는 데 그쳤다.
그 다음으로는 2000년에 합동 제식 소화기 도입사업(JSSAP)의 일환으로 개발된 XM312는 25x50mm 공중폭발탄 전용의 XM307과 상호 전환이 가능하면서도 경량화를 이룩한 반면, 분당 발사속도가 260발 수준으로 매우 느려졌을 뿐더러 총열의 중량과 두께가 매우 낮아 제원상의 성능적인 측면에서 퇴보했다는 의문점과 더불어 생산 단가마저도 매우 높아졌기 때문에 2009년 이후의 후속형인 XM806과 함께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그 대신 총열 교체가 어려웠던 문제가 해결된 M2A1을 도입하는 차선책을 택한 미 육군은 2010년에 제너럴 다이내믹스 사의 무기사업부(GDATP)와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미 해병대에서도 2017년부터 조달에 들어감에 따라 M2 자체의 제식 수명은 앞으로 10년 이상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등 옛 동구권이었다가 새로 친미 진영에 가담하며 탄종을 나토 규격으로 교체한 경우가 있는데, 이들 국가에선 M2 대신 12.7mm 나토탄을 사용하는 NSV 중기관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총기 자체의 가격이나 성능, 신뢰성 모두 현재까지 M2를 대체하는 중기관총으로 가장 성공적인 방안이긴 하나, 탄종은 같지만 탄띠가 다른 점, 특허권, 쓰던 걸 굳이 바꿀 필요가 크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기존 서방권 국가에서 채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1년, 최초 생산 시작 100주년을 맞이했다. M1911과 더불어 얼마 안되는 장수만세 총기가 된 셈.
하위 구경의 미군 제식 탄약에 비해 월등히 높은 15,000J 이상의 총구 운동에너지를 가진 12.7x99mm NATO 탄약을 사용하므로 평균 유효사거리가 1,830m에 달하며, 500m의 거리에서도 19mm 두께의 강철 장갑을 완전히 관통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구경 빨로 압도하는 화력을 지니고 있어, 대인, 대차량, 대공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12.7x99mm NATO 탄약과 전체 길이에서 69%를 차지하는 45인치(약 1,143mm)의 총열, 노리쇠 뭉치가 움직이지 않고 내부의 격침만 따로 작동하는 노리쇠 폐쇄식(Closed Bolt) 덕분에 명중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1967년 미 해병대 소속의 카를로스 헤스콕(Carlos Hathcock) 중사가 이 총으로 2,286m 저격 기록을 세웠고, 이게 2002년까지 세계 최장거리 저격 기록이었다. 2018년에는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 소속 저격수 앤드류 던컨(Andrew Duncan)대원이 약 2.4km 떨어진 거리(비공식)에서 IS 지도자를 단 한 발의 저격으로 사살했다. 당시 저격수는 저격용 소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M2 브라우닝 기관총을 사용했다고 하며, 저격에 사용된 기관총은 제작된 지 약 40년 정도 되어 박물관 행이 예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6.25에서도 저격총으로 활용된 기록이 있다. 1953년 금성고지전투에 참여했던 미 육군 7사단 존 리차드 카펜터(John R. Carpenter) 소위의 회고록에 따르면 계곡 너머에 대치중이던 중공군의 지휘관을 저격하려 했지만 소총탄이 닿지 않는 거리라서 실패했는데 한 한국군 저격수가 50구경 기관총에 저격용 스코프를 구해와서 총에 장착한 후 영점을 맞춘 다음 다음날 중공군 지휘관을 저격했다고 한다.(여담으로 그 병사는 하루종일 그걸로 자랑을 했다고 한다.)
부피가 상당히 크고 총열이 총몸에 비해 길어 무게 중심이 불안정하며 자체 중량 역시 38kg이므로 도수 운반이 어렵다. 딱히 손으로 잡을 만한 부위도 없어서 M3 삼각대의 다리를 각각 맡아 옮기는 3인 1조 형태의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때는 한 명당 20kg 정도를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미 육군은 총에 티타늄을 적용해서 무게를 27kg까지 경량화했었다.
장전손잡이도 무거운 탓에 이를 원활하게 왕복시키는데 있어서는 일종의 요령이 필요하다. 방아쇠가 있는 총몸 후면을 가슴에 댄 채 끌어당기듯이 조작하는 것이며, 이는 여러 번의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면 쉽게 할 수 있고 팔힘이 따른다면 처음 장전하는 사람도 한 번에 쉽게 해낼 수 있다. 사실 요령이래봐야 별거 아니고 거치된 상태라면 한손으로 아틀 쥐고(총 안돌아가게) 팔 힘으로 당기는게 아니라 상체를 비틀어 몸통힘으로 당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번만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껌
구시대적인 설계를 따르기 때문에 야전 분해만 해도 노리쇠 뭉치 쪽에서 자잘한 부품들이 쏟아져 나와 따로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망실의 위험도 크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만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총열 교체의 어려움이다. 원본인 수랭식은 총열이 완전히 마모되지 않는 한 총열 교체를 할 일이 없기에 총열 교체에 어려움이 있어도 단점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브라우닝 사후에 공랭식으로 개조되면서 이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는데, 이는 두격이 일정하게 표준화되고 총열에 교환용 손잡이가 달린 개량형 모델이 출시된 현대에 들어와서야 해결되게 된다. 원형이라 할 수 있는 M1917 브라우닝과 M1919 브라우닝도 이 단점을 갖고 있다.
이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00발 가량을 지속적으로 발사한 이후의 온도가 130~230℃에 이르게 된 총열을 석면 장갑을 낀 손으로 잡고 나사산을 따라 돌려야 총열 분리가 완료되고 새 총열을 끼울 수 있다. 손잡이가 구비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반용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적이었던 독일군의 MG42는 총열 교체가 훨씬 간편했기 때문에 당시 미군들은 "우리가 석면 장갑 끼고 총 세워서 총열 뽑고 새거 끼고 하는 동안 저 놈들은 그냥 버튼 하나 눌러서 갈아끼고 우리 머리 위에 총알을 갈겨댄다."고 욕했다. 이 문제는 M2HB-QCB나 M2A1같은 개량형에서 해결된다.
M2HB의 총열 조립에서 부터 시작해서 사격까지 준비과정이 잘나온 영상.
보시다시피 전문가가 하는데도 총열의 두격을 잡아주는데 3분가량이 소모되는걸 볼수있다.
그뿐만 아니라 총열 삽입부와 노리쇠 뭉치 사이의 두격(Headspace)을 전용 간극 게이지(Feeler Gauge)로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며, 총몸 후방의 다이얼형 장치를 통한 격발 간격(Timing)까지도 맞추지 않으면 발사가 아예 되지 않거나 심할 경우 탄피가 파손되어 급탄 도중에 걸리거나 폭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M2가 설치된 대공초소에서는 빈 7.62mm 탄약통 같은 데다 게이지를 넣고, 거치대에 용접을 해서 보관하기도 하였다. 게이지가 없을 때는 인식표(군번)을 겹쳐서 대신 쓸 수 있다고 교육 자료에 나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일일이 시행할 여유가 없는 실전에서는 귀중한 식수를 냉각 용도로 뿌려가며 벌겋게 달아오른 총열을 식히려고 노력하거나 아예 휘어질 때까지 그대로 사용하다가 발사 불능 상태에 빠지자마자 M2 자체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
1918년 미 원정군의 요청에 따라 존 브라우닝의 감독을 포함하여 콜트 사와 윈체스터 사의 협력을 통해 개발된 M1917 기반의 초기형으로, 당시에 미완성된 .50 BMG 탄약 사용 여부를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사속도를 비롯한 전반적인 성능이 매우 불안정했다.
1923년 미 육군과 미 해군에 시범 채택된 .50 BMG 탄약을 사용하는 최초의 양산형으로, 7년 후인 1930년에는 사망한 존 브라우닝 대신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콜트 사에서 총몸 쪽에 전면적인 재설계를 거쳐 수랭 및 공랭 방식 전환과 양방향 급탄이 가능해진 M1921A1으로 개량되었다.
1933년 미 육군 항공단과 미 해군 항공대에 도입된 기총형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운용된 대부분의 항공기에 탑재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비행 중의 공기 흐름만으로 충분히 냉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분당 750~850발의 높은 발사속도를 나타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UH-1 이로쿼이(Iroquois) 헬리콥터 전용의 M231의 제식명으로 바뀌어 운용되기도 했다.
.50 BMG 탄약에서 비롯된 피프티 캘(Fifty Cal) 이외에도 듀스 아줌마(Ma Deuce; ma=mother, deuce=2)라는 미군 한정의 특이한 별칭이 있는데, 이는 1980년대까지 미국의 전화 사업을 독점했었던 AT&T 사의 애칭인 벨 아줌마(Ma Bell)에서 유래한 것이다.
. 옛날 옛적, 대한민국 육군에는 이것을 이용한 가혹행위도 있었다. 50 총검술과 50 포복이 그것. 내용은 명칭 그대로, 간단하다. 총검술은 50 기관총의 총열을 들고 하는 것이다. 무게 9킬로그램의 쇠파이프로 하는 총검술이다. 그보다 좀 더 무거운 M60도 있지만 이건 50과 다루는 병과가 다르고, 파지(손에 쥐기)가 훨씬 편한 반면 50 총열은 그냥 매끄러운 쇠파이프라 정말 힘들다. 과거 병사들은 지금보다 체구가 훨씬 작고 빈약했다는 점도 유의. 또한 50 포복은 50 기관총을 두 팔에 끼고 하는 높은포복이다. 중량은 약 30킬로그램? 그래도 낮은포복이 아닌 높은포복이라 다행.
탄약은 원래 총기 상부의 커버를 열고 링크를 끼운다음 커버를 닫고 장전손잡이를 당기는 방식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커버를 열지 않고 장전이 가능하다. 링크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끼운 다음 장전손잡이를 두번 당겼다 놓으면 초탄이 약실에 장전된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입난이도가 높은 컴뱃바이블에도 해당 내용이 있고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에도 구현되어 있다.
기관총으로써는 드물게 방아쇠 부근에 조정간이 있어 단발 사격이 된다. 그리고 사격시 M1919 브라우닝과 마찬가지로 탄피는 총몸 밑으로, 링크는 우측으로 배출된다.
4.1. 20mm 기관포와의 비교
12.7mm와 유사한 대구경 총기류는 존재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독일군은 7.92mm보다 큰 기관총을 쓰느니 그냥 20mm 기관포를 쓰는 걸 더 선호할 정도다. 그래서 냉전기 서독군은 M47 및 M48A2 전차, F-86 전투기에서 M2를 운용했으나 보병대대 중화기로는 운용하지 않았다. 현대 독일연방군은 KSK에서 운용하는 정찰차량의 차재화기로 50구경 기관총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주장이 온 이유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20mm 기관포나 12.7mm나 생각보다 큰 중량 차이가 나지 않게 됐는데, 그에 비해 화력은 최소 5배, 일부 연구결과에선 12배 이상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하지만, 20mm 기관포의 이런 평가는 20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에는 M2보다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서 인력으로 운반이 쉽지 않았다. 2011년인 현재에도 20mm를 운용 할 수 있는 플랫폼은 한정적인데, 더 큰 위력에 따른 강한 반동을 버틸만한 특수 삼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자재가 없는 곳에서 20mm탄을 쓰려면 장약량을 줄여야 하므로 동급의 20mm, 심지어 12.7mm와 비교해도 탄도 성능과 관통력이 밀릴 수 있는 것이 문제. 게다가 20mm탄은 서방세계 전 지역에 공통으로 퍼진 12.7×99mm 50구경탄과는 달리 기종마다 20×102/139/110/128mm로 조금씩 달라서 보급도 어렵다. 정 뭐하면 용접해서라도 장착대를 만들어 쓸 수 있는 M2에 비해 특수 삼각대가 필요한 등 아무래도 M2보다는 비싼 배치 가격도 문제라 알보병 대대에서 마음껏 사용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총기 본체 무게는 20mm와 12.7mm가 동급이더라도 탄약 휴대량은 동급이 될 수 없다. 또한 12.7mm로는 상대가 안 되는 동시에 20mm로만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표적 자체가 많지 않다. 그리고 경장갑 표적들은 그런 거 잡으라고 잔뜩 보급한 값싼 일회용 대전차 로켓이나 무반동총, 값은 비싸도 확실한 대전차 미사일 같은 대체재가 있다.
M2를 대규모로 굴리는 미군은 애매한 20mm따윈 집어치우고 경차량에 탑재 가능한 경량화된 Oribital ATK의 M230LF 30mm 기관포출처를 도입해 제식화 시켰다.
한편 러시아군은 14.5×114mm탄을 쓰는 KPV가 있기 때문에 20mm 기관포로 교체는 고려하는 않는 듯하다. 14.5×114mm탄을 개량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는 데다 그 이상은 23mm 내지 30mm 기관포로 긁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들 역시 탄약 휴대량과 총기 중량 문제로 14.5mm보다 12.7mm를 대체로 더 선호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12.7mm vs 20mm 논쟁은 과거에도 있었다. 공대공 무기로서 20mm와 M2 50구경의 효력을 직접 비교한 군사보고서가 그 증거인데, 2차대전 당시 미 해군은 HS.404 20mm 기관포와 M2 브라우닝 50구경 기관총을 직접 비교한 결과, 종합적으로 20mm 기관포의 성능이 M2 50구경 기관총에 비해 3배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정작 현대에서는 20mm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편이고 12.7mm가 승자가 되는 형세이다. 20mm는 기관포 중엔 화력이 약하다고 평가되어 30~40mm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고 보병용으로는 운용이 불가능하기에 12.7mm보다 열세에 놓여있다.
서로 다른 구경의 탄종의 효과를 비교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시험에 의거한다면 탄중량의 10%가량을 차지하는 인화물질을 함유한 2차 대전기 고폭(HE)탄이나 소이(incendiary)탄은 대체로 비슷한 크기와 중량을 지닌 일반 금속탄에 비해 두 배 가량 더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어떤 중기관총보다도 20mm 기관포가 중량 대비 효율성이 높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50 M8 API 탄은 1g 이하의 인화물질을 담고 있는 반면, 20mm Hispano SAPI 는 (50구경과) 비슷한 관통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10배 이상의 인화물질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이러한 우월성을 인정하며, .50 M2 와 20 mm 히스파노를 비교한 결과 기관포 쪽이 3배 더 효과적이라고 평했다. 달리 말하자면, 영국 왕립공군(RAF)이 전쟁 후반기에 자주 사용하던 20mm 기관포 4문의 무장은 미육군항공대(USAAF)의 50구경 6정의 무장에 비해 아주 약간 더 무겁지만 그 파괴력은 두 배 이상이었다.
Anthony G. Williams, "기관포냐 기관총이냐: 2차대전 항공무기 논쟁" 중 발췌
문제는 미국의 20mm 라이선스 계획들이 줄줄이 망해서 대전 중 20mm를 사용한 항공기는 일부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