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우리가 다윗의 믿음과 그의 노래를 관전하고 듣고 감격하는 자리에
있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윗보다 더 확실한 새 언약을 깨닫고는
다윗이 기도했던 그 기도를 내가 하고, 다윗이 불렀던 그 찬양을 나도 부릅니다.
그래서 시103편은 다윗의 시지만 그의 믿음을 따르는 우리의 시도 되는 것입니다.
1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대한 찬양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 다는 오장육부 전체를 말합니다.
거룩한 이름 그의 성호를 찬양하라 주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그의 성호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전 인격적인 예배이며 산제사입니다. 자신을 통째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성령과 진리의 예배(in spirit and in truth 요4:24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통째로 드립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빠지면 안 됩니다.
할아버지가 오시면 온 가족이 다 나와야 하는 것처럼 내 속을 다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몸은 주님 앞에 와 있는데 만약 귀가 딴 데에 가 있으면 안 됩니다.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주신 은택을 무시하지 말라.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그 분의 보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은택이 없으면 보응인데 은택을 잊는 것은 그 분의 보응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2절은 경고성이 들어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는 3절 이하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입니다.
3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죄악은 불법입니다. 불법 중에 우상숭배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는 사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에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우상 숭배를 다 했습니다.
모든 병이란 이 병은 전염병입니다. 병이 나서 치료하는 것만 신유가 아니라
몹쓸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신유이십니다. 건강이 최고의 치유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미 아기 예수로 오시기 전 7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4절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네 생명’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우리의 일생이라는 말입니다.
파멸의 그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를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저주의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내서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워 살아 있는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지심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히4:12)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 곧 나의 장식품이 되도록 하시고,
네 청춘 젊은 시절 곧 건강을 위해 항상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듯이 소성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은 먼저 속에서 찬송으로 나갑니다(1-2절)
그 다음 3절은 내부청소가 됩니다. 모든 어두움의 요소가 끝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 4-5절의 복이 옵니다. 반드시 부정적인 요소가 끝이 난 다음에
긍정적인 요소들이 우리 속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의 내부수리를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아담의 뒤 설거지를 다 이루시기 위함이며 진리의 영으로 임하심은
이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만약 이렇게 안 되면 교회의 리더가 잘 못하든지
아니면 본인이 잘 못 구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신앙이 잘 못되면
개인의 인생한풀이가 되고 맙니다. 이를 교회와 신자 본인이 조심해야 합니다.
6절 “여호와께서 의로운(righteousness)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의를 공의라고 번역함을 용납 못함)
여호와는 압박당하는 일, 억울한 일을 위해 심판하십니다.
신원과 보응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지 말고 차라리 당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마다 양심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논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문제는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국가의 문제도 우파, 좌파가 양심의기준이 다릅니다.
7절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6절은 바로 왕을 심판하시는 것이며 5절은 애굽의 보화를 이스라엘에게 준 것과 같습니다.
그 행위 곧 그 길과 목적지를 모세에게 알리었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 알리셨습니다.
8절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40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참고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을 이해할 겁니다.
9절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항상은 하루 종일(always), 경책이란 바가지 긁듯이 나무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십니다.
그때그때 풀어버리십니다. 꿍하고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 중에 하나가 되는 겁니다.
10절 “우리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여기서부터 드디어 ‘우리’가 나옵니다. 우리의 죄악(불법)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하심은 그대로 보응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우리 위에 쏟아 붓지 않으십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끊임없이 잘못을 저질렀던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11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그건 하늘과 땅의 개념이 너무나 큰 격차가 나므로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십니다.
너희들이 참으로 모르는구나 하시는 겁니다. 단,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이와 같은
인자를 베푸십니다. 이제 11절 부터는 하나님을 알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