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숙 / 노루귀
[무념에 드는 길은 현재에의 충실이다]
今人專求無念 而終不可無
(금인전구무념 이종불가무)
只是前念不滯 後念不迎
(지시전념불체 후념불영)
但將現在的隨緣 打發得去 自然漸漸入無
(단장현재적수연 타발득거 자연점점입무)
오늘날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을 구하지만
끝내 무념에 이르지는 못한다.
지난 생각에 마음두지 말고
앞으로의 생각을 미리하지 말며
현재에 있는 일만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면
자연히 무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채근담(菜根譚)>
[노루귀]
글: 정관호
봄을 조급히 다투어
일찍 서두루는 들꽃
그래서 꽃부터 터뜨려놓고
이파리는 뒷갈무리 삼아
천천히 나온다
혹시 꽃샘에 얼까 싶어
잔뜩 털옷까지 두르고는
그래도 꽃잎까지는 보이지 못해
꽃받침으로 대신하고
얼굴 다듬을 겨를도 없었겠건만
흰색 분홍색
드물게는 연자주색 꽃부리가
맑고 보드랍구나
봄을 기다리는 뭇 생령들에게
앞으로 꽃철이 온다고
그것을 알리고 싶어서
저토록 바지런을 떠는가봐.
노루귀(Asian liverleaf)
학 명 : Hepatica asiatica Nakai
꽃 말 : 인내
원산지 : 한국
이 명 :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
[꽃이야기]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우리나라 전국 각지 숲속에서 자생합니다.
낙엽수림 아래의 비옥한 토양 즉 부식질이 많고
배수가 양호한 토양에서 잘 자랍니다.
노루귀는 카멜레온처럼 자기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 내륙지방에서는 자생지에 따라 꽃의
색을 달리하고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같이 척박한
지방에서는 식물개체가 작게 변형된 새끼노루귀로
울릉도와 같이 부식질이 풍부하고 연중 공중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개체가 크고 상록성인 섬노루귀로
진화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다른 식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체가 작은 노루귀는 꽃대가 높이 나와
다른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에 종자를 최대한
전파시켜 번식합니다.
노루귀속은 전 세계적으로 약 7종(種)밖에 되지 않은
작은 속입니다.
우리나라에는 3종이 자라는데 노루귀가 가장 흔하며
새끼노루귀는 남쪽 섬에서만 자라고
울릉도 특산인 섬노루귀가 있습니다.
노루귀는 꽃줄기나 잎이 올라올 때 노루귀 모양의
잎 뒷면에 털이 보송보송 길게 덮은 모습이 노루귀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장이세신(獐耳細辛),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라고도 합니다.
장이(獐耳)는 한자어로 노루귀, 세신(細辛)은 약초명이며,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라는 이름은 봄소식을
알리듯이 이른 봄에 꽃이 눈을 비집고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학명 중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장(肝腸)이란
뜻을 가진 헤파티커스(hepaticus)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개로 나뉘어진 잎의 모양이 간장을 닮아 생겨난
명칭입니다. 영어 이름 역시 유사한 뜻의 아시안 리버맆
(Asian liverleaf)입니다.
노루귀는 예로부터 약용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한약명으로는 장이세신(樟耳細辛)이라 부르는데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여름에 채취하여
볕에 말려 두었다가 약으로 씁니다.
진통, 진해, 소종에 효능이 있습니다.
잎을 따다가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는데,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이 그러하듯 독성이
있으므로 뿌리는 제거하는 것이 좋으며 또한
약간 쓴맛이 있으므로 살짝 데친 다음 물에
쓴맛이나 독성을 우려내고 먹어야 합니다.
노루귀의 꽃 색깔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앞에 간략히 말했지만 자연 상태에서
나는 노루귀의 꽃은 연분홍색, 진분홍색, 남색,
줄무늬가 있는 꽃잎, 가장자리에 흰색의 테가 둘러
있는 것 등 참으로 다양하고 아름답습니다.
크기는 8~20cm 정도이고, 전체에 희고 긴 털이
많이 납니다.
잎은 모두 뿌리에서 돋고 긴 엽병이 있어 사방으로
퍼지며 심장형이고 가장자리가 3개로 갈라지며
밋밋합니다. 중앙열편은 삼각형이며 양쪽 열편과
더불어 끝이 뾰족하고 이른 봄 잎이 나올 때는
말려서 나오며 뒷면에 털이 돋은 모습이 마치
노루귀와 같습니다.
꽃은 3-5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뿌리에서
난 1~6개의 꽃줄기에 위를 향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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