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보물 숨기기 2
다음 날 새벽, 나는 두 개의 연장을 준비 했다.
하나는 쇠톱이고 또 하나는 주먹만 한 자물쇠였다.
나는 그것들을 들고 하얗게 서리가 내린 잔디밭을 달렸다.
고분군 보존상의 문제로 1997년 7월 15일 문화제 관리청의 영구비공개 결정에 따라 관람이 중지 되었다.
1미터 50센티 정도의 높이의 무덤으로의 입구는 이와 같은 팻말이 세워져 있었고
왕릉 안으로의 입구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러나 철문의 문고리에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물쇠 하나만이 덩그러니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근래에 개방 될 일은 없다.
CCTV 하나 없이 허술했고, 그랬다하여 쉽게 접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벽돌 하나를 뺀 후 보물을 감출 것이라 다짐했다.
가로세로 벽돌의 개수를 세어 그 숫자만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숫자를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숫자는 내가 살아있는 이상 기억할 수밖에 없는 숫자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다.
왕릉은 국가 문화제이고 이곳을 훼손한다는 것은 중대한 범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 숨긴다면 보물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그곳은 안정된 땅속이며 한번 파 해쳐 보물이 나온 곳을 또 파헤쳐 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제이며 감사자가 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는 것만으로 보물을 찾는 이이게 위험성도 충분하다.
최대한 들킬 일 없이 나는 보물을 숨기는 일은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날은 채워진 자물쇠를 쇠톱으로 잘라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물쇠를 채우는 일로 끝내고
둘째 날에 나는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문으로 들어가 벽돌하나를 파낸 후 보물을 감추는 것이다.
그리고 열쇠를 금강에다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10분 내에 쇠톱으로 자물쇠를 잘라낸다.
나는 쇳가루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아래에 신문지를 까는 치밀성까지 보였다.
그리고 쇠로된 문에 몸을 기대에 지긋이 밀어본다. 뻑뻑하지만 문은 열리고 있다.
나는 문을 닫고 쇠고리에 자물쇠를 채워 넣는다.
무사히 끝난 것이다. 나는 내가 꽤 대담해 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보물 때문인지 내가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비가 내렸다. 신문 배달을 함에 있어서 비는 최대의 방해꾼이다.
일단은 신문이 젖지 않게 비닐에 쌓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평소처럼 문 앞에 아무렇게나 신문을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토바이를 타며 비의 끈적거림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껴야했으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데 있어 시아를 흐려버린다.
흐리다는 것은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이고 기분 좋지 않은 끈적거림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천천히, 시아가 흐리다는 것은 가장 큰 위험성이다.
그러나 보물을 숨기는 데는 더없이 좋았다.
가장 큰 위험요소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을 돌리다 말고 새벽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무령왕릉으로 갔다.
이번 준비물은 칼과 먼지떨이였다.
왕릉 철문까지는 진흙이어서 나는 봉분의 잔디를 밟고 철문 앞의 지지석으로 직접 내려간다.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연다.
비에 젖은 비옷과 신발은 가지런히 철문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맨발로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왕릉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높이는 1미터정도여서 나는 랜턴을 들고 허리를 굽힌다.
발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다.
나는 왕릉으로 들었고 생각했던 것처럼 바닥에는 많은 먼지가 쌓여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다. 그리고 있을지 모를 무덤의 주인에게 예의를 표한다.
이렇게 무래하게 들어온 것을 용서해 주시고 내 보물을 탈 없이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솔직히 왕릉 내부는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전혀 습하지도 않았고 따뜻했다. 그것이 나에게 안식을 주기도 한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주변을 살펴본다.
내가 알고 있던 왕릉 내부의 모습 그대로였고
다른 느낌이라는 것은 벽돌하나하나가 무척 조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발굴 후에도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벽면보다는 바닥이 낳을 것 같다.
혹시나 보물을 숨겨놓은 벽돌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일 테니 말이다.
나는 오른쪽 모서리에서 가로 세로로 내 생일의 월과 일이 교착하는 벽돌을 가리킨다.
나는 벽돌과 벽돌은 긴 시간이 지나 서로 붙어 있을 줄 알았는데 벽돌 사이는 그리 견고하지 못하다.
나는 두 개의 칼로 벽돌과 벽돌사이에 찔러 넣어 내가 목적으로 한 벽돌을 어렵지 않게 빼낸다.
벽돌 아래는 고운 흙이었고 나는 그 흙을 두 줌 정도 손으로 파내 내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보물을 꺼냈다.
빛나는 나의 보물이여. 이렇게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구나.
나는 보물에 키스를 했고 이마에 맞대었고 볼에 비볐고 가슴에 한동안 꼭 껴안고 있었다.
이렇게 이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나는 조금 더 나의 보물과 더 같이 있고 싶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반드시 찾으러 올 거라는 다짐을 하고 보물을 벽돌을 파 낸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한줌의 흙을 그 위에 올린다.
마치 봄날 씨앗을 심는 농부처럼 나는 그 흙을 손으로 지그시 누른다.
벽돌을 덮어야 했지만 좀처럼 벽돌을 덮을 수 없다.
나는 그 흙에 대고 키스 한다.
벽돌을 덮고 그 벽돌 위에 키스한다.
그리고 내가 이 보물을 다시 찾으러 올 때면 당신 왕릉도 진정으로 깨어날 것이라 말했다.
나는 이곳에 내 발자국을 없애기 위해 왕릉 바닥 전채를 먼지떨이로 털어버린다.
털면서 왕릉 입구로 나간다.
문을 열고 찬바람이 내 머리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서야
비로소 나는 내 일을 완수 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끝났다. 그리고 허전했고 담담했다.
나는 신문을 돌리러 갔고 가던 길에 금강교 위에서 열쇠를 던져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보물을 숨기기 위해 금강교 트러스를 올랐던 일,
선태의 배위에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했던 일, 술과 비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조금 전 무령왕릉에 보물을 숨겼던 일.
나는 예전보다 많이 과감해 졌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앞으로 내게 더 많은 일들이 닥쳐 올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맞서 대응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