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22-40
아이에게 종교 자유를 허락해야 할까?
모든 사회의 근간은 가정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싶은 물질적, 정신적 사회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오늘 성가정 축일은 우리의 목적이 성가정을 이루어 교회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1. 부모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2. 부모의 가장 큰 지혜는 자신의 삶이 자식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기 자녀들을 최고로만 키우려고 했다가 자녀들의 반격에 크게 상처를 입고 깨달아
『엄마 반성문』이란 책을 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이유남 씨가 내린 결론입니다.
엄마의 바람은 자녀가 항상 1등의 성적과 많은 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항상 전교 1등과 많은 상과 학생회장을 도맡아 했습니다.
아이가 전교 1등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면 지난 성적표와 비교해서 수학은 왜 떨어졌느냐고
야단쳤습니다.
둘째 아이인 딸은 영 공부에 소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치부 때부터 잠도 재우지 않고
공부시켰습니다.
기특하게도 100점을 맞으면 오빠는 전 과목 100점을 맞는다며 한 과목 그렇게 맞은 것 두고 법석을 떨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마음 안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복수심이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줄 수 있는 때가 바로 고3. 전교 1등을 하던 첫째는 고3 때 돌연 자퇴 선언을 합니다.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파묻혀 폐인이 되어갑니다.
둘째 아이도 그렇게 공부 잘하는 오빠도 자퇴하는데 자신은 왜 못하느냐며 아빠 도장을 훔쳐 자신도 자퇴하고 둘이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사실 이유남 씨는 “여자가 공부해서 뭐 하냐?”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빨리 불을 끄라고 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것이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마의 만족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라고 기록된 대로 예수님을 주님께 돌려드렸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은총과 지혜로 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부모는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야 하는데 인간 부모님은 그 모든 두려움을
책임져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자신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성장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 안에 갇혀
성장하지 못합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세상에서도 나를 보호해 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4살 때 여성의 교육권을 주장하다 탈레반에게 얼굴에 총을 맞았습니다. 이에 굽히지 않고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웠고 16세 때 최연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그녀의 용기로 많은 교육에서 소외된 여자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입니다.
그는 교육자였고 딸을 학교에서 교육하고 싶었습니다.
탈레반과 싸우는 말랄라를 응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딸이 총을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길 때
아버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종교의 힘이 작용합니다. 이슬람교도기는 하였지만, 말랄라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었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세상에서 은총과 지혜로 충만하여 강한 어른이 되게 하고 싶다면 아이의 보호자가
하느님임을 알도록 주님께 먼저 봉헌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어른이 되었을 때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아이 때 밥을 먹기 싫다고 하면 그것도 자유로 두어야 할까요? 억지로 먹일 것입니다.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유익한 존재가 되게 하도록 먼저 창조자에게 자녀를 봉헌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을 요셉에게 봉헌함으로써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고, 요셉은 아드님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두려움 없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끊임없이 하느님의 보호로 더 큰 세상으로 내어줌으로써 자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2월31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22-40
그는 하루 1 미터가 아니라 0.01 미리미터씩 성장합니다!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세상 안에서 결혼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모든 분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안에서의 교회, 성가정(聖家庭)을 꿈꿉니다.
그러나 희망 사항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엄청나다는 것을 매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초단기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절규합니다.
한때 목숨 바쳐 사랑했던 그였는데,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는 모습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외치며 울부짖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존재들, 내 분신이요 전부라고 여겼던 자녀들이 이제 머리가 커졌다고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심장을 찌릅니다.
성가정(聖家庭) 건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한한 인내와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여유가 요구됩니다.
인간적인 시각이 아니라 영적인 시각, 주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멤버들도 순탄한 길만 걷지 않았습니다.
워낙 특별한 가정, 워낙 베일에 싸여있는 신비스러운 가정, 영적인 가정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 규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시고 가서 봉헌하였습니다.
그때 성전에 있던 시메온 예언자는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감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향해 특별한 말 한마디를 건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 34~35)
성가정의 주요 구성원이셨던 마리아 역시 성가정을 꾸려가는 동안 수시로 영혼이 칼에 꿰찔렸습니다.
물론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성가정 안에서 천국 체험도 앞당겨 맛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상처와 희생, 각고의 노력과 헌신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성가정 축일에 한 가지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상대방은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천천히 성장합니다.
하루 0.01 밀리미터씩이나 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이 하루에 1미터씩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기대치가 크다 보니 당연히 실망도 상처도 커져만 갑니다.
나자렛 성가정 공동체 안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 성인께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가장 크게 노력한 덕은 인내의 덕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늘 인내하면서, 늘 기도하면서, 늘 격려하면서, 절대로 들볶지 않고,
모질게 대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해나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공동체 안에 부성애가 가득 담긴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기억되고 꾸준히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콜로 3, 12~13)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2.31.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다.'(루카 2, 40)
하느님의
인격이
모여사는 곳
그곳은 바로
성가정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성가정을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가정의
인격(人格)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정과
가족을 만나며
우리와
한 몸이 되십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힘, 그것은 바로
가족입니다.
기도가
울려퍼지는 곳
그곳 또한
가족입니다.
성가정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
가정을
만나십니다.
사랑의 빵과
사랑의 물결은
성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성가정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성가정은
우리가
하느님을
껴안아주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곳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십니다.
살아가는
모든
삶의 시작은
가정입니다.
성가정 안에서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하느님
사랑의 방식은
성가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성가정을 통해
예의와 품위
소통과 배려를
배웁니다.
배우면서
더 깊어지고
실행하면서
한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성가정의 꿈을
이루십니다.
성가정 안에서
자라나는
하느님
자녀들입니다.
소중한
모든 가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