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해도 신지도에 가려면 뱃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두 개의 대교로 연결되어 더이상 섬이라고 할 수 없다.
2005년에 완도와 신지대교, 2017년에는 장보고대교가 준공되었다.
이로써 신지도는 문명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축복의 섬이 되었다.
완도항에서 바라보는 맞은 편이 신지도이다.
지금은 장보고대교와 신지대교로 연결되어 육지화 되었다.
신지도는 이제 손쉽게 찾는 완도의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2005년 말 완공된 신지대교는 신지도와 육지를 이어준 통로가 됐다.
이로 인해 완도는 해양 휴양지로의 입지에 날개를 달게 됐다.
1,110m 바다를 왕복 3차선으로 이어 놨으니, 천지개벽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곳 신지대교 휴게소에서 ‘명사갯길’이 시작된다.
나지막한 산줄기를 오르내리며 해안을 끼고도는 고즈넉한 길이다.
명사갯길은 10km 남짓으로 약 4시간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물하태나루터' 이름이 예뻐서 내려갔지만 실망...바로 뒤돌아 나왔다.
송곡선착장으로 이동하여 평화로운 어촌 풍경에 빠져들었다.
금곡마을로 이동하여 '이광사문화거리'로 들어섰다.
조선 후기 대표 서예가인 이광사는 신지도에서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신지중학교 담벼락을 따라 이광사의 글씨와 작품을 새겨 놓았다.
밭에는 냉이꽃이 활짝 피어 길 가는 나그네를 유혹한다.
원교 이광사 문화거리가 끝나는 곳에 원교목(圓嶠木)이 있다.
원교는 처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앞 바닷가에 소나무를 심었다.
바다와 붉은 황토가 보이지 않게 하려 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 나무가 2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낙낙장송이 되었고, 원교목으로 불리고 있다.
메마른 황토 위에 신지공소가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다.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뜸한지 성모님도 외로워 보인다,
그가 유배생활을 했다는 곳에 초가의 모형을 본뜬 집을 완성했다.
그런데 유배인이 살았다기에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모습이다.
눈을 부릅뜬 동백꽃이 원교의 억울한 눈빛을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기록상 신지도에 유배 왔던 인물은 총 45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뒷뜰에 원교 이광사의 흉상이 새워져 있었다.
얼굴에서 꼿꼿하고 기품 있는 선비의 기개가 느껴진다.
원교는 우리나라 고유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조선 후기서화가이다.
이광사는 독특하고 웅혼한 필력 탓인지 사찰의 대웅전 현판 글씨를 많이 썼다.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침계루', '천불전' 등의 글씨를 이광사가 썼다.
지난 2023년 신지도에 완도해양치유센터를 개관했다.
해양자원을 활용해 심신을 치유하는 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설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어 앞날이 걱정되었다.
여러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우리가 아는 밝을 명(明) 자를 쓴다.
신지도는 울 명(鳴)자를 쓴 명사십리(鳴沙十里)로 그 뜻이 다르다.
‘명사(鳴沙)’를 그대로 풀이하면 ‘우는 모래’라는 뜻이다.
유배 온 선비 이세보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설움과 울분을 실어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에도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우는 소리가 10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우네,
천리 길 달려온 파도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서 우네
눈앞에 청산 두고
청산에 가 닿지 못하는 세월
울모래등 기어서 기어서 넘으면
부서지고 부서진 마음
그 푸르름에 가슴 적실까
우네,
십리 가득 펼쳐진 은빛 모래밭
만파로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들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 우네.........................................................김신용 <명사십리> 전문
신지도는 소안도와 함께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대곡리 구릉에는 항일운동가의 뜻을 기리는 '신지항일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은 창공으로 솟구치는 항일 독립투사들의 드높은 기상을 상징한다.
동쪽 끝에 있는 동고지마을에 멋진 해수욕장이 있다.
약 700m 정도에 달하는 아름다운 백사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명사십리해수욕장에 가려서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신지도의 최고봉 상산에 오르기 위해 산길을 올라갔다.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운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인동장씨 가족묘지 앞의 너른 공터에 주차하고 올라갔다.
단청도 하지 않은 조촐한 절, 청해사(영주암)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약 30여분만 오르면 상산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
청해사 입구에 '섬자리숲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등산로 주변에서 이제 막 피어난 현호색꽃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통신중계탑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이곳에서 아래로 약간 이동한 곳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다.
아담하고 귀여운 상산(해발 352m) 정상석 앞에 섰다.
발치 아래 전개되는 무아지경의 풍광들이 수고를 보상해 준다.
푸른 바다 위에 올망졸망한 섬들이 둥둥 떠 있는 풍경이 압권이다.
상산(象山)에서는 신지도와 고금도를 이어주는 장보고대교가 멋지게 보인다.
힘들게 올라온 가파른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장도 청해진유적지에 들렀다.
청해진(淸海鎭)은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설치된 진(鎭)이다
장보고의 청에 따라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장도에 설치하였다.
초기에는 해적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거점으로서 설치되었다.
이후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서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숲으로 다가갔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의 한가운데에 당집이 있었다.
장자리마을에서 정월대보름날 이곳에서 당제를 모신다고 한다.
모시는 신격으로는 장보고, 송징, 정년, 혜일대사 4분이다.
완도읍으로 돌아와 키조개삼합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 당사도에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