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2일 토요일부터 10월 28일까지 6박 7일 동안 아빠와 함께 북유럽 스웨덴, 핀란드에 다녀왔다.
아빠께서는 메쪼오토메이션 한국지사에 근무하신다. 메쪼오토메이션은 핀란드에 본사가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지사를 두고 있는 회사이다. 이번 여행은 아빠께서 핀란드 본사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에 함께 간 것이다. 난 사회과 부도에서 세계지도를 배울 때 위도 경도를 배웠다. 그 때 북극권(북위 66.5도)과 남극권(남위 66.5도)의 추운 나라는 얼마나 추운지 가보고 싶어 했는데 이 기회에 북극권과 가까운 북위 60도~70도 사이에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갔다 오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의 초점은 방문 장소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스웨덴과 핀란드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느끼는 것이다.
출발 (10월 22일 토)
토요일 아침 여행 준비를 하며 빨리 산타에 나라 핀란드에 가고 싶었다. 해는 내가 탈 비행기처럼 높이 솟았다. 그리고 공기는 밝은 내 마음을 더 밝고 상쾌하게 만들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22일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여 11시간 만에 경유지인 파리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직도 22일 밤 7시였다. 시차 덕분에 반나절을 벌어 기분이 좋았다. 그 때 우리는 비행기가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스톡홀름 행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난 우리 속담 중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함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빠와 난 환승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죽어라 뛰어서 겨우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좌석 배정을 늦게 받았기 때문에 아빠와 난 떨어져 앉게 되었다. 조금만 느리게 달렸어도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아휴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찼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은 안도에 한 숨을 쉬었다.
밤 7시 30분 에어프랑스 기내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니 저녁식사가 한참이었다.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연어와 케익 그리고 똥글똥글한 샐러드였다. 난 식사를 하며 스웨덴 사람들의 친절도를 알 수 있었다.
똥글똥글한 샐러드가 뭔지 궁금해서 내 옆자리에 앉은 스웨덴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본 뒤 식물의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식물의 씨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아주머니께 감사했고 스웨덴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날 (스톡홀름)
스톡홀름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한 시각이 밤 11시였다. 택시기사에게 호텔 주소를 보여주며 걸어가는 방향을 물어보았는데 택시를 타야 하는 거리라며 택시에 짐을 실었다. 허나 호텔은 걸어서도 10분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택시 요금은 2만원! ㅠㅠ 스톡홀름 물가 비싸요! 기껏 호텔에 도착해보니 호텔정문은 잠겨 있었고 안내판에는 밤 11시 이후에는 후런트 데스크의 업무가 끝난다고 쓰여 있었다. 우리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작은 호텔을 예약했었다. 안내판에 쓰여 진대로 인터폰을 눌러 호텔직원에게 우리의 신원을 확인시켜주고 호텔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부여 받아 3개의 문을 통과하여 우리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웨덴은 인건비가 높은 가보다. 방은 깨끗하고 단정해서 좋았다.
폭신폭신한 침대에서 일어난 아빠와 나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비행기를 연속으로 두 번 타서 정말 피곤했는데 침대와 아침 식사 덕분에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난 스웨덴에서 하루 밤을 묵으며 스웨덴의 주거문화를 알 수 있었다. 스웨덴은 다른 서양국가와 같이 집안에서 신발을 신었으며 침대 생활을 했다. 스웨덴은 유럽북부 추운 지역에 위치했음에도 난방설비는 창가 벽에 있는 조그마한 스팀히터가 전부였다. 그래서 인지 스웨덴의 침대 덮게는 아주 두꺼웠다. 잘 살면서도 에너지를 절약하는 스웨덴 국민의 근면성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호텔,콘도 심지어 주택에서 까지도 실내 난방온도를 한껏 올려놓고 한 겨울에도 반팔 속옷차림으로 지내고들 있지 않은가? 에너지 과소비국 한국! 우리 모두 반성하여야겠다.
난 스웨덴의 주거 문화 외에 음식문화도 알아보았다. 음식문화는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알아보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가져다먹는 뷔페형식의 식사였다. 쌀은 없고 거무스름한 빵과 달걀, 시리얼, 고기류는 칠면조와 소고기였다. 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빵은 우리나라의 하얀 빵과 달리 거무스름한 빵이었다. 우리나라는 곡물을 수입하면서도 속살만 갈아서 흰빵을 먹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겉껍질을 조금만 벗겨서 만든 몸에 좋고 영양 많은 빵을 먹는다. 달걀은 가운데가 움푹 파진 흰 접시에 삶은 달걀을 윗부분만 까서 올려놓고 수저로 퍼먹었다.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먹어보니 달걀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난 이런 북유럽의 음식문화가 너무 좋다.
스웨덴 스톡홀름 알아보기
인구는 75만 8311명(2002)이다. 발트 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기온은 1월이 -1.6℃, 7월이 16.6℃, 연간 강수량은 555mm이다. 해항, 공항, 지하철, 버스 망이 완비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치, 문화, 상공업의 중심지이다.
스톡홀름은 1250년에 스타덴섬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무렵의 교회와 시장의 광장, 불규칙한 도로 등이 남아 있다.
1950년부터는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도심지를 헐어 새로운 비즈니스가와 공원을 건설하였다. 특히 빈민가가 전혀 없는 것이 스톡홀름의 자랑이다. 시가지는 많은 섬과 반도에 흩어져 있으나 철도, 지하철, 버스 등으로 능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외에는 높고 낮은 아파트들이 뒤섞여 변화의 묘를 보이고 있으며, 건설 당시의 기술과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국의 수도로서 외교활동의 무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핵무기 금지운동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회의가 많이 열리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돌아보기 <10월 23일 일요일 >
호텔에서 빠져 나와 스톡홀름 시내를 돌아 다녔다. 갈 곳을 따로 정해놓지 않고 아무 곳이나 돌아다녔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먼저 구시가지인 감라스탄에 갔다. 18세기 옛날 도시처럼 생겼고 깨끗했다. 벽돌집이 많았는데 그 벽돌집들의 회색과 주황색이 내게 따뜻하고 정감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길바닥 타일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감 있고 편했다. 왜냐하면 바닥 타일무늬가 부채꼴 무늬 속에 또 부채꼴 무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눈을 감고 1800년대 스톡홀름을 상상해 보았다. 내 상상 속에 사람들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마차는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아기자기한 타일을 지나간다. 보지 않았어도 1800년대 스톡홀름 도시가 그려졌다.
우리는 버스, 지하철과 보트버스를 24시간 동안 무제한 이용 할 수 있는
Daily Ticket을 사서 버스와 지하철, 보트버스를 타고 다니며 스톡홀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Daily Ticket은 참 편리했다. 서울도 이런 Daily Ticket 제도를 만든다면 관광객들이 편리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이란 나라는 정말 춥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입술이 건조해진다. 난 건조한 것이 싫어서 입술에 침을 발랐다. 하지만 침을 바를 때는 좋았지만 입술이 다 텄다. 아! 터서 감각이 없는 입술의 느낌이 정말 이상하다. 그날 밤 핀란드 투르쿠행 여객선인 바이킹 라인을 탔다.
핀란드 - 스웨덴 운행 여객선
스웨덴과 핀란드를 잇는 여객선으로 실자라인(Silja Line)과 바이킹 라인(Viking Line)이 있다. 배로 생각되기 이전에 바다에 떠 있는 호텔이라 보는 것이 맞다. 배의 길이가 200m를 넘으며 층수가 7 ~ 8층으로 나뉘어져 선실뿐만 아니라 면세점, 영화관, 공연장, 각종 레스토랑, 디스코텍, 카지도, 사우나, 오락실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가난한 배낭여행에게 흥미를 끄는 것은 구간에 따라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무료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이킹 라인(Viking Line)
스톡홀롬 중앙역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레일패스를 보여주고 예약(예약 센타에서 유레일패스를 보여주고 행선지를 얘기하면 예약번호를 종이에 적어 준다.) 을 해야 한다.
운행시간표
스톡홀롬 STOCKHOLM ⇔ 헬싱키 HELSINKI, 또는 Turuku city
VIKING LINE
STOCKHOLM
HELSINKI
18:00 ▷▷▷▷ 09:00
18:00 ◁◁◁◁ 09:00
운항기간 : 1/1 ~ 12/31
스톡홀롬
▶ 탑승방법 : 탑승 1시간전에 바이킹라인 선착장 매표구에 가서 예약번호가 적힌 쪽지와
유레일패스를 보여 주면 데크(7층)에 탑승할 수 있는 표를 준다.
▶ 선착장 : 지하철를 가믈라스탄 남쪽 Slussen역에서 하차 후 45번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중앙역에서 도보로는 30분 소요된다.
헬 싱 키
▶ 탑승방법 : 탑승 1시간 전에 바이킹라인 선착장 매표구에 가서 유레일패스를 보여주면
데크(7층)에 탑승할 수 있는 표를 준다.
▶ 선착장 : 구시가 감라스탄 남쪽에 있는 트램 정류소에서 셔틀버스로 10분 걸리며,
중앙역에서 걸어서 25분 소요된다.
핀란드 영해 (10월 24일 월요일)
스웨덴 스톡홀름 항구에서 일요일 밤 8시에 Viking Line 배가 우리를 싣고 핀란드 투르쿠로 갔다. 아모렐라 배는 축구장 5개만한 넓이이고, 11층 짜리 거대한 배였다. 그 배에는 안내문이 스웨덴 글씨로 되어있고 영문은 없어 자세한 것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 배안에는 침실, 식당, 오락실, 카페 등 여러 가지 시설이 있었다. 모든 시설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빠와 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내는 바다가 보이는 9층 방에서 쿨쿨 자니 정말기분이 좋았다. 24일 새벽 5시 목이 말라 일어났다. 창문밖에는 별과 달이 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별이 이렇게 뚜렷이 보이는 것을 처음 본 나로서는 정말 멋있고 신기했다. 그 많은 별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별자리는 딱 한개 있었다. 바로 북두칠성! 북두칠성은 창문 바로 앞에 있어 잘 볼 수 있었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마다 진하기가 달랐다. 별마다 진하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자리 구경을 마친 아빠와 난 아침밥을 먹고 7시 30분쯤 핀란드 투르쿠에 올라섰다. 투르쿠는 스톡홀름 보다 더 추웠다. 영하 3도쯤 됐다. 한국에서보다 먼저 영하를 느껴보았다. 정말로 추웠다. 투르쿠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고 기차역으로 갔다. 정오 12시 10분 땀페레에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만에 땀페레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쉬다가 일찍 잤다.
호수의 나라 핀란드 알아보기
핀라드의 정식명칭은 핀란드 공화국이고, 정부 형태는 다수정당공화국이다. 핀란드어로는 수오멘 타사발타, 또는 수오미(호수의 나라)라고 한다. 핀란드인은 주로 동쪽으로부터 이주해온 피노우그리아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핀인과, 나중에 남부로 이주해온 스웨덴 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의 일부였다.
위치 :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경도는 15도에서 30도 위도는 60도에서 75도 떨어져 있다.
면적 : 33만 8145㎢로 3.5배 정도 된다.
인구 : 521만 2000명 우리나라 인구의 8분의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 : 헬싱키다. 핀란드 남쪽에 있으며 아주 큰 도시이다.
공용어 : 핀란드어, 스웨덴어, 라플란드어를 쓴다.
통화 : 유로(EURO) 화다. 여러 유럽 나라들과 같이 유로를 사용한다.
종교: 기독교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 : 2만 378$로 우리나라의 두 배나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위 60° 이북에서도 농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후지대가
형성되어 감자가 많이 생산된다. 또 제지, 펄프, 제재등 목재산업도 발달하였다. 연평균기온은 5℃이며 연평균강수량은 660㎜인데, 이 가운데 1/3가량이 진눈깨비나 눈으로 내린다. 그리고 북극과 가까워 라플란드 지역에 백야(해가지지 않는 현상)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자작나무가 생산되어 자작나무에서 채취되는 자일란 과 헤미셀를로즈로 만들어지는 자일리톨 껌의 원산지이며 또한 로바니에미 마을에 산타마을이 있다. 그리고 빙하가 있던 자리가 녹아 생긴 빙하호와 높은 산이 많아 친환경인 수력발전이 많다. 또 자작나무를 때서 열을 만들어 사우나를 데우고, 그 옆의 호수를 포함시켜 더우면 시원한 물에 뛰어드는, 그야말로 몸에 좋은 사우나도 있어 관광객이 아주 많다. 기후나 토양 적으로 불리해 토양학이 세계 최고이고 정보 통신기술도 발달해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있다.
핀란드의 역사는 BC 7200년 이전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으며, 2개의 뚜렷한 핀우골족의 석기시대 유물이 남아 있다. 기원 무렵에 이곳으로 발트 해의 핀족이 이주해왔다. 1581년에 핀란드는 대공국이 되었다가 1634년에 스웨덴 왕국에 합병되었다. 세계적 지배세력으로서의 스웨덴이 쇠퇴하자 핀란드는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에 놓였다. 러시아는 핀란드에 대한 권리를 재 주장했고, 1721년에는 대북방전쟁의 종결로 핀란드 영토의 일부를 양도받았다. 1808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핀란드를 침범했고, 1809년 핀란드는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핀란드의 국가주의가 성장한 시기였다.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고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핀란드 독립의 토대가 마련되어 1917년 12월 6일에 독립을 선포했다. 1939년에 일부 영토를 합병하자는 소련의 요구를 핀란드가 거절하자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고, 짧은 전쟁을 치른 후인 1940년에 핀란드인 들은 휴전을 간청하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핀란드 전쟁(1939∼40)이 시작되자 핀란드인 들은 러시아 영토로 진격해 들어갔으나 1944년에 평화가 정착되자 본래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1944년에 체결된 화해 배상금 조항 때문에 핀란드는 막대한 경제적 고난을 겪었으나, 종전 후 소련과의 관계는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강대국과의 비동맹 정책을 일관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1973년 8월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73년에 (주)핀란드 한국 상주공관이 설치되었고, 1977년 9월에 주한 핀란드 상무관 실이 개설되었다가 1978년 11월에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970년에 헬싱키에 설치되었던 북한의 무역대표부는 외교수립과 함께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의 밀수사건과 1983년의 핀란드 전 국회의장에 대한 뇌물사건으로 북한 외교관들이 2차례 추방되기도 했다. 북한과 핀란드 간에는 무역협정(1969. 10)·방송협조협정(1979. 4)이 체결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발류와 합성수지를 포함한 대한 수입액은 7,556만 달러이고, 우리나라에 밍크와 기계류를 포함한 대한 수출은 1억 8,291만 달러이다. 1991년 6월 현재 한국 교민은 30명이고, 체류 자는 31명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핀란드인 들은 대사관, 제지관련회사, 모피관련회사 직원 등 약 100명 정도 된다.
핀란드 땀페레 (10월 25일 화)
25일 화요일 아침 아빠는 회사에 교육받으러 가시고 나 혼자 오후 내내 땀페레 시내 구경을 했다.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의 크기가 내가 사는 일산신도시만 했고 공장이 많았다. 상점도 많았는데 주로 옷가게와 음식점이 많았다. 어디나 도시에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호수의 나라인 핀란드 땀페레에는 산은 보이지 않고 호수와 강 그리고 나무들이 평지에 많이 있었다. 그런데 온통 자작나무와 소나무 들이었다. 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아빠께서 이틀 동안 오만원을 주시며 자유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 음식점은 비교적 가격이 싸고, 레스토랑의 값은 비쌌다. 음식점에는 밖에 가격표가 있는 곳도 있었고, 가격표가 없는 곳에는 살짝 들어가 가격표를 비교해 보았다. 결국 비교적 가격이 싼 어느 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곳은 뷔페식 이었다. 난 피자와 샐러드, 닭 날개를 많이 먹었다. 가격은 팔천 원이었다. 뷔페는 우리나라 보다 가격이 쌌다. 그리고 땀페레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혼자 돌아다니기가 불편하지 않았고 마음이 편했다. 땀페레에는 어쩌다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와 달리 사람들이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스웨덴 사람들은 금발 머리가 많았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검은머리와 금발머리가 섞여 있었다. 머리카락만 보면 동양과 서양을 섞어 놓은 듯 했지만 얼굴과 체격은 서양 사람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람 모두 남, 중부유럽인보다 키가 크고 눈동자는 파랬다.
땀페레를 구경하고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아빠가 오셨다. 아빠께서
“회사 직원들하고 하키 보러가자!”
하셨다. 하키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하키 경기장은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오늘 경기는 땀빠라대 HPK이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짝짝짝 땀빠라 짝짝짝 땀빠라!” 라고 외쳤다. 여섯 명의 땀빠라 팀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HPK팀에게 한골 먹혔다. 경기는 점점 격해졌다. 하키스틱으로 상대팀을 넘어트리고 벽에 부딪히게 만들었다.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뼈가 으스러질 경기 같았다. 골을 먹힌 땀빠라 팀에게는 얼마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이 넣지 못했다. 그럴 때 마다 관중들은
“에! 이~!”
를 큰소리로 외쳤다. 땀빠라 선수가 스틱으로 골을 몰고 가는 것을 한마음으로 쫒아가다 골로 연결이 안 되는 순간 동시에 에!이~하니까 재밌었다. 저절로 나도 따라하게 되었다. 선수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계속 따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와!”를 외쳤다. 땀빠라 팀이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땀빠라 응원팀은 일제히 일어나 땀빠라를 외쳤다. 와! 핀란드 사람들은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가 축구를 좋아하듯 핀란드 인들은 추운 지방이라서 얼음 위에서 하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아이스하키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경기가 끝나고 땀페레 직원들과 러시아, 덴마아크, 그리고 아빠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에게 자꾸만 작은 한섭 이라고 불렀다. 아빠 이름이 한섭 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은 에릭 이라고 했는데도 계속 작은 한섭 이라고 해서 난 작은 한섭이 되었다.
핀란드 땀페레 (10월 26일 수요일)
눈이 잔뜩 왔다. 기분이 너무 좋다! 가을에 눈을 보고 땀페레 관광은 어제 많이 했기 때문에 호텔 앞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놀았다. 5유로를 주고 장갑을 사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핀란드 눈은 한국 눈과 조금 달랐다. 때가 전혀 묻지 않은 깨끗한 눈이었다.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함박눈이 온 핀란드에서 눈사람을 만들 때 눈이 잘 뭉쳐져서 너무 기뻤다. 눈사람 얼굴 꾸미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뭇가지 와 나뭇잎으로 눈, 코, 잎을 꾸미려고 했는데 아무리 꽂아도 꽂히지 않았다. 내가 눈을 너무 다졌기 때문이었다. 우~ 나뭇가지 박기는 포기하고 대신 눈을 팠다. 눈 코 잎을 모두 파자 완성됐다. 눈사람이 귀엽고 포근해 보였다. 핀란드 눈은 못보고 돌아가나 걱정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눈사람도 만들고 아주 잘 놀았다. 아빠께서 너무 춥고 걱정 되닌까 돌아다니 지 말라고 호텔 주변에만 있으라고 했는데 그래도 다리 있는 곳에 가고 싶어 잠깐 나갔다. 그런데 진짜 장난 아니게 추웠다. 그래서 다리만 잠깐 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여행 마지막 날인 10월27일의 헬싱키를 포함하여 10월 가을에 6박7일의 북유럽여행을 즐겁게 마쳤다. 북유럽에는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있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 자유롭고 배도 타보고 핀란드에서 눈도 보고 혼자 돌아다녔던 경험도 참 좋았다. 북유럽 여행은 추웠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음식도 맛있었고, 거리가 한가로워서 여유롭고 넉넉했다. 북유럽은 춥지만 않다면 살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자연도 잘 보존 되어있다. 하지만 너무 춥다. 가을만 되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한겨울에는 영하 30도 까지도 내려간다고 한다. 나라면 추워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핀란드는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그런지 사우나를 발명했다. 뜨거운 김이 나와 땀을 내게 해준다. 발명 이란 것도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다닌 여행 중 가장 추운 지방으로의 여행이었고 자발적인 계획과 행동이 가장 많았던 여행으로 기억된다.
첫댓글스웨덴과 핀란드를 잘 돌아보고 왔구나^^ 자연환경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끼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좋은 여행이였다 느껴져^^ 모든 삶이 자연과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았을것 같아. 하키나, 사우나를 보면 말야. 그럼 우리나라는 무엇이 하나로 이어지던가????? 우리가 읽은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다음주에 읽을 '산적의 딸 로냐'도 스웨덴 동화지. 거기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배경이 재윤이가 쓴 글에서도 많이 느껴져. 로냐는 그 색깔이 확연히 드러나지^^ 자연환경, 어느나라든 그 나라에 맞게 주어진 보물일거야. 그 자연과 함께 어떻게 해 나갈지는 그 나라사람들의 몫이지. 이번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구나. 물론 그 두 나라도 나름대로 문제점이나 혜택을 받고사는 만큼 위험도 안고 살겠지. 하지만 뒷날, 먼 먼 뒷날을 생각해 본다면. 먼저 나부터 생각해야지 싶다. 피곤할텐데 이리 글을 빨리 올리다니 정말 고맙다. 재윤이 여행기만 묶어 글을 모아두면 좋을 것 같다^^ 고마워
첫댓글 스웨덴과 핀란드를 잘 돌아보고 왔구나^^ 자연환경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끼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좋은 여행이였다 느껴져^^ 모든 삶이 자연과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았을것 같아. 하키나, 사우나를 보면 말야. 그럼 우리나라는 무엇이 하나로 이어지던가????? 우리가 읽은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다음주에 읽을 '산적의 딸 로냐'도 스웨덴 동화지. 거기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배경이 재윤이가 쓴 글에서도 많이 느껴져. 로냐는 그 색깔이 확연히 드러나지^^ 자연환경, 어느나라든 그 나라에 맞게 주어진 보물일거야. 그 자연과 함께 어떻게 해 나갈지는 그 나라사람들의 몫이지. 이번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구나. 물론 그 두 나라도 나름대로 문제점이나 혜택을 받고사는 만큼 위험도 안고 살겠지. 하지만 뒷날, 먼 먼 뒷날을 생각해 본다면. 먼저 나부터 생각해야지 싶다. 피곤할텐데 이리 글을 빨리 올리다니 정말 고맙다. 재윤이 여행기만 묶어 글을 모아두면 좋을 것 같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