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열정의 계절
문희봉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산이 더위를 먹는 짙푸른 녹음 속에서 사람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 하나, 둘 구령 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그의 품속에 든 사람들의 가슴속도 검푸른 색으로 도배되어 있으리라. 이 계절 나는 별을 따며 동무들과 멱 감던 개울을 생각한다. 그 개울 속에는 연꽃이 지천이었다. 연꽃은 연못에서만 피는 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두 눈동자 속에도 피는 7월의 꽃이다.
어릴 적 여름산은 짙은 흙냄새를 내뱉고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내 뇌리에는 빨간 여름이 머물러 있다. 이마를 불태우는 햇덩이를 동무 삼아 나는 여름과 친했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7월의 햇살은 건강한 남자의 근육 같다. 근육질의 남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해진다. 아울러 7월은 가을을 사는 지혜를 터득하는 달이다. 풍성한 결실을 위한 확실한 준비, 강렬한 생의 의욕으로 투철한 삶이 진행되는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맑아지는 7월, 미루나무 이파리가 자지러지게 웃어댈 고향 신작로가 그립다. 한창 열정을 보이는 매미의 저 우렁찬 화음, 7월의 태양을 잡고 구애하듯 매미가 울고 있다. 그래서 7월을 태양의 달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폭풍이 치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젊음과 열정과 건강과 모험을 저버리지 않는 7월은 확실히 태양의 달이다. 거기에 바다가 그리워지는 달이다. 깊고 푸른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대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강태공들! 오늘은 푸르름을 미끼로 자신을 낚아 보면 어떨까? 낚싯줄에서 감지되는 팽팽한 긴장만큼 등 푸른 고등어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가 뚝 그친 뒤에 달려오는 맑은 바람, 싱싱하게 살아가는 푸른 숲, 씻은 듯 깨끗한 봉우리, ‘쏴’ 하고 가지마다 들려오는 매미 소리, 그 청신함이란 가을을 열두 배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끓는 냄비 속을 막 빠져 나온 양 후끈 달아 있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 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 주던 가문비나무, 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매일 만나도 기적처럼 경이롭다. 갈수기라 수량은 많지 않지만 머지않아 찬란하게 깨어날 초목들의 생명력의 원천이 바로 저거로구나 싶어 절로 경건해진다. 한여름의 햇빛은 원시처럼 순결하고, 하늘이 감청색으로 보일 정도로 공기는 투명하다. 소나기 지난 후 홀연 지평선에 걸린 무지개는 선연한 쌍무지개다. 골을 타고 건너오는 바람 소리, 산자락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소쩍새의 고운 음성이 한여름의 음악이 되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