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카타리나 ‘대화’
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에게 “온유하고 흠 없으신 어린양이여, 당신이 죽으면서 옆구리를 찔리실 때, 당신의 심장까지 찔리고 터지도록 허락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나의 ‘진리’가 너에게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까닭은 아주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를 말해주마. 인류를 향한 내 열망은 무한하건만, 실제로 당하는 고통과 아픔은 유한하여 내가 지닌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없었다. 내 내밀한 가슴을 너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내가 유한한 고통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와 물을 함께 흘림으로써 네가 받은 거룩한 물의 세례가 내 피의 힘으로 이루어짐을 너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피의 세례도 보여주었으니, 여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나를 위해 흘린 피로 세례를 받는 이들과 연관된다. 그들이 비록 다른 세례를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피가 나의 피로 말미암아 힘을 발휘한다. 또 다른 이들은 세례를 간절히 열망하지만 받지 못할 때 불로 세례를 받는다. 피를 떠난 불의 세례는 있을 수 없으니, 피는 사랑 때문에 흘린 것이요, 따라서 피는 신적 사랑의 불과 융합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제시되고 있는 기본적인 논거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피가 구원적 사랑의 상징으로서 갖는 총체적 의미에다 통합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한결 복잡해지고 있지만, 실상 전통적인 '피의 세례' (순교)와 '열망의 세례' 및 '물의 세례'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단일한 구원으로 진입하는 다양한 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초기 관문은 회개와 화해라는 '전진적인 세례'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영혼이 이 피의 세례를 받는 두 번째 방법은 이렇다. 우선 나의 신적 사랑이 전제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어떻게 죄를 범하는지 나는 알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죄를 범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연약성을 비롯하여 다른 어떤 것도 그들에게 범죄를 강요하지 못하지만, 연약하기 때문에 곧잘 사멸할 대죄에 떨어지고, 그리하여 성스러운 세례를 통해 피의 힘으로부터 이끌어 낸 은총을 상실하곤 한다. 따라서 나의 신적 사랑은 그들이 거룩한 통회와 거룩한 고백으로 피를 관장하는 열쇠를 손에 쥔 내 사목자들에게 고백하는 순간 받아낼 수 있는 전진적인 피의 세례를 마련해 두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사제는 죄를 사하면서 이 피를 영혼에게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고백하기 불가능하다면, 진심 어린 통회만으로도 내 자비의 손길은 그들에게 이 소중한 피의 결실을 충분히 부여한다. 물론 나는 그들이 고백할 수 있으면 고백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백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기로 작정하는 자는 이 피의 결실을 누리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는 순간에 고백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을 경우, 이 결실을 얻어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죽는 순간에 모든 일을 올바로 정리하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우둔한 짓은 결코 없어야 한다. 너의 부당한 고집을 보고 내 신적 정의가 발동하여 “너는 네 생전에 능히 할 수 있었는데도 내 생각을 해주지 않았다. 따라서 네가 죽는 지금 나도 너를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겠다."고 말할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므로 그 누구도 얼렁뚱땅 해서는 안 되고, 만약 지은 죄가 있을 경우 최후의 순간까지 밀어두지 말고 피에 대한 갈망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보다시피, 이 세례는 전진적이요, 영혼은 내가 너에게 일러준 방식대로 시종일관 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 너는 내가 십자가 위에서 행한 고행이 비록 유한할지라도,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얻어 누린 고난의 결실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이 세례를 통해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무한한 신적 본성이 유한한 인간적 본성과 결합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말씀'인 나 안에서 고통을 당한 것은 내가 입고 있던 이 인간 본성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본성이 서로 융합되어 있는 까닭에, 영원한 '신성' 역시 내가 더없이 불타는 사랑으로 겪어낸 그 고통을 직접 떠안았던 것이다.
내가 행한 일이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고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실제로 겪어야 했던 육체적인 고통이나 간절한 열망으로 인한 아픔이 무한하다는 것은 아닌데, 이유는 십자가 위에서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서 그 모두가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를 구원하기 위한 내 열망과 고통이 맺은 결실은 무한했고, 그래서 너희는 이 결실을 끝없이 얻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무한하지 않았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류 전체가 원래 모습을 되찾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피의 세례(다시 말해서 피의 결실)가 너희에게 한없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를 범하는 자들 또한 새롭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옆구리가 열리는 사건을 통해서 이 점을 너에게 알려주었다. 너는 거기에서 내 가슴에 담긴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바, 내가 너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 어떤 유한한 고통보다도 훨씬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너에게 내 사랑을 끝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떻게? 불타는 내 사랑으로 쏟아낸 피의 세례를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위시하여 받고자 원하는 자들 모두에게 베푸는 일반 세례-피와 불길과 합일하는 것으로 영혼과 내 피를 융합시키는 물의 세례-를 통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너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피와 물이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내 뜻이었음을 확인시키는 데 있었다.
이상이 바로 네 물음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대화’ /바오로 딸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1347년 3월 25일 - 1380년 4월 29일,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염색업자의 25명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한 그는 결혼시키려는 부모에게 반항해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 전념했다. 열여섯 되던 해 도미니코 제삼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마리아·성인들에 대한 환시가 더욱 잦아졌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환자와 같은 절망적인 환자들을 간호했다. 1375년 피사를 방문하던 중 오상 성흔을 받았고, 아비뇽의 교황좌가 로마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자신의 신비 체험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400여 통의 서한을 남겼다. 1461년 시성되었고, 1939년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지명되었으며,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