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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국내 반도체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정보는 비공개하면서 미국 현지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정보는 지역 주민의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 공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미국 텍사스 주정부를 상대로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관련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텍사스 주정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유해화학물질의 전산화 작업이 완료된 2005년 이후부터 2012년까지의 관련 정보를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텍사스주 ‘지역사회 알 권리법’에 따르면 미국 환경청이 정한 기준치 이상의 유해화학물질을 보관하고 있는 기업은 이에 대한 정보를 소방서 등 비상대응기관에 매년 제출해야 한다. 이 법은 일반 시민들이 관련 자료를 요청할 경우에도 해당 정보를 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삼성 오스틴 반도체 공장이 현지 당국에 매년 제출한 화학물질 관련 보고서에는 사업장에서 사용, 관리하고 있는 화학물질의 이름, 고유번호, 구성 성분, 보유량 등이 기록돼 있다. 유출, 폭발 등 화학물질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를 위해 보관 장소까지 표시하고 있다.
2012년 보고서를 보면 삼성 오스틴 사업장에 기준치 이상으로 보관돼 있는 56종의 유해화학물질 관련 정보가 기재돼 있다. 국내에서 여러 차례 누출 사고가 발생해 유독성이 익히 알려져 있는 불산의 경우 오스틴 공장에 320파운드 (약 145kg)가 있으며, 보관 장소와 불산의 인체 유해성 관련 정보도 명시돼 있다.
미국 현지 공장 인근 주민들이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알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을 통해 입수한 삼성 디스플레이의 아산 사업장 안전 보건 진단 보고서를 보면 삼성은 안전검사 실시 현황, 유해 및 위험 요인 관리 상황 등 사실상 공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평가할 수 있는 내용 대부분을 영업비밀로 분류해 비공개 처리했다. 심지어 보호구 지급과 착용 여부, 최근 3년 간 재해발생 현황까지도 영업비밀로 처리했다.
그러나 과연 해당 정보가 영업 비밀로 보호해야 할 성질인지, 기업이 무분별하게 영업비밀을 명분으로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할 정부는 기업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게 제출한 화학물질 유통량 조사 자료를 보면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은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며 정보 보호 요청한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 시민은 물론 국회의원도 관련 정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자국민의 알 권리는 ‘영업비밀’이라며 무시하고 미국 국민들에게는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삼성의 모순된 주장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대기업의 영업비밀을 기업 입맛대로 폭넓게 인정하면서,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에 걸려 직업병 산재 소송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알권리도 가로막히고 있다. 자신이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돼 병이 들었는지 알 길이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질병과 작업환경의 연관성을 스스로 증명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 답변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의 경우 “설계, 재료, 장비, 인력 운영” 등 대부분이 영업비밀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또 위험물질에 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은 아니라며 직원들의 건강이 “경영의 제 1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미국 노동자와 시민을 위해서는 공개하는 자료를 자국민에게는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적 태도가 드러나면서 삼성이 ‘영업비밀’이라는 규정을 이용해 자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