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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신제(諸神祭)
정 비 석
경사 급한 고개를 기관차는 숨이 꺼질 듯이 허덕이면서 추어 오르고 있다. 고개를 다 추어 오르면 해발 팔백 미터의 고원이었다.
고원―호흡하는 공기에조차 어딘지 모르게 무게가 느껴지고, 산악지대의 특유한 운무가 지워도 지워도 차창에 연막을 드리워서 인제는 유리창 너머로 바깥 경치를 바라볼 수는 없다.
차 안은 동굴처럼 공허하다. 여름철에는 피서객으로 왁실왁실 들끓던 이 철도건만 늦가을인 시방 와서는 승객의 수효는 초저녁의 별보다도 희한하다. 텅 빈 좌석의 여기저기에 엉기성기 외로이들 앉아 있는 승객은 대개가 탕건에 갓 받쳐 쓴 시골 늙은이가 아니면, 당꼬바지에 지카다비 신은 뜨내기 철로 공부들뿐이다.
함구령이라도 내린 듯이 모두들 잠잠해서, 차체를 통하여 울려 오는 엔진 소리만이 리드미컬한 소란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아까부터 기차 시간표를 펼쳐 든 채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하니 애라의 추억만을 머릿속에 더듬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로 요 다음 정거장이 내가 내려야 할 Y역임을 깨닫고 퉁겨 일어서며 창을 열었다.
서울보다는 계절이 동뜨게 앞서는 곳이어서 창으로 휘몰아드는 석양 바람이 살을 에는 듯 차다. 나는 잠바의 단추를 가눠 채우며 앞에 막아서는 산을 쳐다보았다.
설악산―이 설악산을 지난 여름에 나는 약혼한 애라와 함께 이 차창으로 내다보며 피서여행을 즐긴 것이 아니었던가.
여름 한철을 애라와 함께 즐겁게 지낸 산장으로, 지금 내가 철 그른 겨울에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심정은, 역시 그렇게라도 해서 추억을 더듬는 수밖에는 다시는 애라를 만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워낙 약질이기는 했으나 애라는 내가 산장에서 내려온 지 보름도 채 못 되어 죽었다 하니 설령 산속의 공기가 급성폐렴에는 너무 거세었다 치더라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이상, 나는 애라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다. 엄숙한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나 자신에게 타일러도 보고, 또 때로는 ‘한 알의 밑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대로 있으리라.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니라’고 한, 신학교 삼 년 동안에 귀에 멍이 박히도록 들어 온 성경말로 자위도 해보았으나 그처럼 신성하던 성경 구절도 이번 일에만은 아무런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지금 내 트렁크 속에는 구김살조차 없는 신학교 졸업장이 들어 있다. 그 졸업장을 받기 위한 마지막 시험 준비차로 나는 애라를 산장에 남겨 두고 서울로 먼저 올라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자 나는 졸업생만으로 편성된 순회유세대(巡廻遊謝隊)의 한 멤버로서 제주도 등지로 설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었다.
가는 곳마다 나는 그 여행이 끝나면 애라를 만날 수 있다는 오직 그 기대로 해서 열변을 토할 수 있었고, 밤마다 애라의 꿈을 꿈으로써 그와 함께 하느님의 충성된 사도가 되기를 굳게 서약하였다.
그렇게 두 달 반 동안의 긴 여행을 마치고, 벅찬 포부에 가슴 울렁거림을 느끼며 서울역두에 내렸을 때―그러나 모든 것은 허황하였다. 맨 처음 애경에게서 애라의 죽음을 들었을 순간에는 나는 참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였다. 두 달 반 동안의 유세에서 나는 거의 날마다 죽음이라는 말을 써왔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니다. 죽음처럼 우리의 생명을 정화해 주는 것은 없다’고 날마다 밤마다 나는 강단에서 외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행에서의 흥분이 가시고 점차 관념적인 신의 세계에서 현실적인 인간으로 돌아오자 애라의 죽음에 나는 가슴 터지는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전신에 냉수를 쫘악 끼얹는 듯한 슬픔이었다.
‘죽음이란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니다’고 나는 많은 청중에게 부르짖었다. 아! 이 얼마나 나는 민중을 기만한 것이었던가? 이 얼마나 나는 위선자였던가. 허위의 진실에 살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불행의 씨를 뿌렸으며 또 나 자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몇 번이고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위안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토록이나 감격과 감명을 주던 성서의 모든 구절이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잠꼬대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충실한 신의 사도가 되기 전에 나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마음껏 슬픔을 맛보고 싶었다. 지금 나에게는 인간이―신의 아들로 서의 인간이 아니라, 항간에 득실거리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그립다.
이제부터 내가 기록하려는 이 이야기는 적나라한 인간―유다의 후예로서의 나의 신세타령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사도였던 내가 이런 기록을 남기는 데 대하여 세상의 선량한 시민들은 ‘배교자(背敎者)’라는 오명으로 나를 비난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쓰기로 한다.
차가 Y역에 닿았다.
나는 트렁크름 들고 플랫폼에 내렸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도록 지극히 외로운 정거장이었다. 나는 혹시 잘못 내린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혹조차 느끼면서 잠시 가야 할 방향을 모르는 사람처럼 멍청하니 서 있노라니까, 어깨에 타블레트를 걸친 역장이 내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차표 주세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차표를 내주었다. 역장은 그것을 이윽히 눈여겨보다가 얼굴에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여기는 처음이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다.
“네…… 아니…….”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내 눈에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오십 탁이 다 된 이 역장의 부얼부얼하고도 유아한 태도가 나에게 알지 못할 신뢰와 비애의 감정을 자아내 주었던 것이다. 마음의 에트랑제인 나는 이 눈앞의 늙은 역장을 부둥켜안고, 철 그르게 산장에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된 안타까운 사정을 그에게 호소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애라의 죽음도 이 늙은 역장에게 물어 보면 똑 바른 대로 대답을 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때 차가 떠나려고 우렁찬 기적을 울려서 늙은 역장은 손을 들어 차장에게 신호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실어다 놓은 기차는 아무런 아쉬움조차 없이 Y역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부동의 자세로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고 섰는 역장의 뒷모습을 나는 또 나대로 오랜 동안 바라보고 섰다가 경황없이 역 앞 광장에 홀로 나섰다.
그리하여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좁다랗게 뚫린 오솔길을 나는 시냇물을 따라 산으로 걸어올라갔다.
한창 여름철에는 물이 풍부해서 여울에서는 멱도 감을 수 있었던 시내였건만 시방은 계절이 계절이라 개울 바닥에서조차 뿌죽뿌죽 돌이 드러나 보인다.
얼마를 올라가면 앞으로 가로막아서는 미륵바위가 있다. 지난 여름에 애라를 이 바위 위에 앉혀 놓고 나는 여울에서 멱을 감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기다리기에 지쳐 콧노래로 ‘푸른 하늘’을 부르고 있던 애라는 사루마다바람의 나의 몸뚱어리를 보고,
“사슴 같아! 껑충한 꼴이…….”
하며 짜장 한 마리의 사슴이라도 발견한 듯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사슴? 하하하…… 자연의 정기를 지천으로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슴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오.”
“짜장 숲속의 사슴이 아니긴 한데요?”
하며 그는 손에 들었던 돌멩이를 여울에 팽개쳐 물방울을 내게로 튕겼던 것이다.
하나 애라가 앉았던 바위 위에는 지금 낙엽만이 스산스럽게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발길을 멈춘 채 한참 동안 애라의 환영을 더듬다가 무심중에 그때의 애라처럼 돌을 주워 물에 던져 보았다. 그러나 첨벙 하고 공허한 음향만이 있을 뿐, 다음에는 좀더 심각한 적막뿐이었다.
나는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한 그루의 나무, 한 개의 돌에서조차 애라의 추억을 더듬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을 나는 조금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면서도 제 추억마저 뺏어가지 못하는 불행이 내게는 또 얼마나 행복된 일이었던가.
오 리 길의 마지막 언덕에 썩 올라섰을 때 눈앞에 나타나는 회상의 산장―담쟁이덩굴에 둘러싸여, 횹사히 호화로운 기선과 같은 산장이 어느새 계절에 물들어 단풍진 채 잎도 태반 떨어져 있었다.
뜰 안에 우거졌던 코스모스도 몇 날 밤 서리에 꼴사납게 시들었다. 애라가 기·장 좋아하던 코스모스였고, 그러므로 봄내 여름내 손수 가꾸며 가을의 꽃시절을 즐겁게 기다리던 그였건만, 종시 그 꽃이 피기 전에 애라는 가고 만 것이었다. 죽을 날을 모른다는 것은 죽는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이겠느냐마는 그 행복이 살아 있는 나에게는 또 얼마나 불행을 자아내 주는 것인가.
정원의 화초들은 마치 애라의 죽음이라도 조상하는 듯 일제히들 지지리 시들었다.
한참을 화초들과 마주 섰다가 나는 불현듯 산장 문을 열어 보았다. 문마다 앞으로 첩첩이 걸린 채 엄숙한 침묵이다.
“애라! 애라!”
나는 무심코 불러 보며 문을 두드렸다. 굳게 닫힌 이 산장의 어느 구석에서 애라가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 본댔자 나타나지 않는 애라임을 어찌하랴.
나는 무거운 한숨을 입 속에서 깨물어 버리며 산장을 한바퀴 돌고 나서 공막한 감정을 지닌 채 뒷언덕으로 올랐다. 애라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였다.
바다 바라보기를 음악보다도 좋아했던 애라였으므로 그의 무덤을 뒤 언덕 위에 묻어 주었다고 애경은 말하였다.
언덕을 오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저만치서 누가,
“아유! 서방님 오셨에요…….”
한다. 산장지기 김서방의 아내 순실이었다. 순실은 내게로 걸어오며 생글 웃으려다 말고, 그대로 정숙히 고개를 숙여 버린다.
애라와 내가 ‘마돈나’라고 불러 온 이 순박한 여인을 보자, 나는 번개같이 또 한번 애라 생각에 눈물이 솟았다. 애라를 무척 따르던 순실이었고, 애라가 무척 좋아하던 순실을 만났다는 것이 내게는 슬프고도 반가운 일이었다. 순실은 비록 산장지기 김서방의 아내면서도 놀랄 만큼 이지적인 영리한 여성이었다.
애라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 줄 사람은 나와 이 순실이와 단 둘밖에 없을 것같이 내게는 꼭 그렇게만 믿어졌다.
순실과 나는 말없이 덤덤히 마주 서 있었다. 이윽고,
“애라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순실이가 밤을 새워 가면서 애라를 간호하였다는 말을 들은 것이 문득 생각히어서 나는 치하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순실은 입을 좀더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없다. 간곡한 간호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결과일진댄, 이제 나에게 치하를 듣는 것이 오히려 순실로서는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을 것임을 나는 뒤미처 깨달았다.
이윽고 내가 발길을 옮기자 순실은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무덤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이다.
애라의 무덤은 과시 동해바다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다양한 언덕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가 지난 여름에 애라와 내가 최초의 포옹을 한 우리들의 영원한 과수원이었다.
순실은 흙 냄새조차 새로운 무덤 앞에 오자, 차마 이것이 애라의 무덤이라는 말을 못 하고 그대로 고개를 수그려 버리고 만다.
저무는 노을에 직사되어 흙빛이 좀더 붉어 보이는 한 개의 새로운 무덤―이 속에 정말 애라가 드러누워 있는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무덤 속에서 썩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바이블은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굳게 믿어 온 나였건만, 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승천한 애라의 영혼보다 눈앞의 이 무덤이 얼마나 더 절통한 비애를 자아내 주는 것인가.
李愛羅之墓
라고 먹 자취도 새로운 묘표(墓標)가 얼마나 나에게 슬픈 진실로 육박하는 것인가.
나는 무덤 앞에 분향하고 이마를 조아려 절하였다.
향연(香煙)을 맡으며 두 번 절하고 나자, 그제야 정말 애라가 죽었다는 슬픔이 육체적으로 느껴져서, 조수처럼 밀려드는 가슴속의 슬픔을 감당치 못한 채, 나는 풀 위에 쓰러지며 엉엉 소리를 높여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순실이가 어깨를 흔들며 깨우쳤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울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덤 앞에 절한 것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신을 배반하는 최초의 행동이기도 하였다.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십계명의 첫머리에 그렇게 씌어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얼마나 무력한 그 말인가. 절절히 안타깝고 애타고 할 때에 어떻게 무덤에라도 절하지 않고 배겨날 수 있을까. 확실히 허례일는지는 모른다. 하나 허례면 허례인 대로 그 허례가 진실로 느껴짐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애라! 애라! 당신이 사랑하던 희순이가 여기 왔으니 어서 일어나시오!”
나는 이렇게 혼자말로 부르짖었다.
영혼이여! 영혼이 있다면 왜 말이 없는가! 나는 영혼의 실재를 보기보다 오히려 불러도 말 없는 무덤에서 육체의 죽음을 통감하였다.
순실이가 저녁 차비로 산장으로 먼저 들어간 다음 나는 황혼이 짙어
가는 무덤가에서 안타깝게 자꾸만 에라의 이름을 불렀다.
순실이가 나를 찾아 다시 무덤으로 나왔을 때에는 이미 나의 몸은 밤이슬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산장으로 돌아와 보니 순실이는 영리하게도 애라가 쓰던 방을 나더러 쓰라고 깨끗이 치워 놓았다. 애라가 죽던 그때의 그 모양대로 간직해 둔 이 방에 들어오자 나는 또 한번 애라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라가 그 위에서 연명하였다는 바로 그 침대에 누워서 나는 지금 애라가 돌아오기를 헛되이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어떡하면 애라의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서창가 피아노 위에 놓인 화병에는 아직도 시꺼멓게 시들어진 백장미가 꽂힌 채로 있다. 고인은 누구를 연모하면서 저 꽃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병들었을 리 없는 그 마음이었건만 육체를 좀먹는 병마에게는 다시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저물어 가는 황혼 속에 뚜렷이 솟아오르는 맞은편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애라를 그리는 무한한 향수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초열흘 달이 차갑게 나의 창을 비쳐 주었다. 나는 호되게 놀란 사람처럼 펄떡 뛰어 일어나서 밖으로 달려나왔다. 그리하여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라의 무덤의 주변을 산짐승처럼 감돌고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하도 어처구니없는 나를 깨달으면서 과수원으로 내려갔다. 지난 여름에 우리가 찾아왔을 때에는 잎은 우거지고, 가지가지에는 능금이 붉게 영글어서 과수원 전체가 마치 위대한 정열덩어리 같았는데 어느새 열매는 거두어지고 잎은 떨어진 채, 달빛만이 교교히 차가워 옛 싸움터같이 황폐하다. 능금나무 아래에서 애라와 내가 최초의 입술을 나누었을 때에도 달은 오늘 밤처럼 밝게 비치고 있었다. 그날 밤 달빛에 반사되어 붉게 빛나는 능금알을 우리는 얼마나 신비로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미래를 점쳐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도록 순간의 행복에 도취하면서도 우리는 그 순간 속에서 직관적으로 영원을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에덴 동산에서의 이브의 유혹에 강렬한 홍분을 느끼면서, 그러나 그날 밤 우리는 금단의 과실을 따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행운이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여름에서 가을로 철이 채 바뀌기도 전에 희망은 무참히도 깨어지고 말았으니 인생은 이처럼 무상한 것인가.
귀뚜라미도 울지 않는 과수원 안을 나는 지향없이 방황하였다. 걸음걸음에 애라의 추억만이 밟히는 듯해서, 잡시 나무에 기댄 채 달을 우러러보다가 뜻하지 않고,
“애라!”
하고 불렀다.
애라가 달 속에 숨어서 나의 자태를 엿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애라를 부르는 나의 호소에, 천만뜻밖에도 실제로 내 눈앞에 나타난 여인은 난데없는 순실이었다.
“서방님 …… 인제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
어느새 순실은 바로 내 옆에 와 서며 조용한 말로 타이르는 것이다. 순간 순실의 눈동자가 차디찬 달빛에 반사되어 마치 쟁반 위의 수은같이 영롱하였다.
“김서방, 장에서 돌아왔수?”
“아직 안 오셨어요. 아마 내일 오실라나 봐요.”
이렇게 간단한 문답을 끝내고 나서 나는 앞서서 산장으로 내려왔다. 방에는 이미 남포가 켜져 있었고, 창가 화병이 놓였던 피아노 위에는 가을 국화가 한 분 아담히 놓여 있었다. 반만큼 핀 흰 국화가 몹시도 사람을 반기는 듯하였다. 나는 잠시 국화를 허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순실에게는 이렇게 국화를 가꾸는 아취가 있었던가고 혼자 놀랐다.
자정이 지나서 나는 자리에 누웠으나 이 방에는 두 달 전만 해도 애라가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좀체 잠이 들지 않았다. 오랜 동안 엎치락뒤치락 볶이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으나, 나는 이내 애라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꿈으로 소스라쳐 깨었다. 나는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기에, 십 분 후에는 벌떡 일어나 서울에 있는 애라의 동생 애경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애경!
언니의 추억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기에는 나의 가슴은 너무나 좁은가 보오. 애라의 무덤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는 것이 없었소. 무덤 앞에 분향했을 때 가냘프게 타오르는 것은 오직 향연뿐이었소. 그 실낱 같은 향연이 애라의 넋인 양하여 나는 한껏 그것을 들여 마시었소.
애경! 왜 언니의 죽음을 진작 알려 주지 않았소. 그의 주검을 단 한 번이라도 내 눈으로 보았다면 이렇게까지 그의 죽음이 슬프지는 않았을 것 같소. 지금 나는 꿈속에서 언니를 만났소. 하도 반가운 김에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하려고 눈을 떴을 때에는, 그러나 그는 이미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소! 꿈이라기엔 너무나 기억이 생생하고 현실이라기엔 어처구니없게도 모두가 허황하오.
애경! 언니가 죽은 지도 오늘째 예순 날인가 보우. 이제 나흘이면 음력으로 구월 십오일이니 나는 여기서 내 손으로 애라의 생일 제사를 지내 주려오! 기독교 신자가 제사가 무슨 제사냐구요? 애경에게는 놀랍고도 우스울 그 일이 그러나 내게는 너무나 엄숙한 진실이오. 레위의 제사장이 비둘기와 양을 잠아 놓고 하느님께 제사지내듯, 인제 내가 애라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고인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 주는 그것뿐이오. 나는 오로지 그 일로 해서 한겨울을 이 산장에서 지내기로 결심하였소. 너무나 감상적이라구 애경은 웃을 것이오. 그러나 진실이란 항상 감상적인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비로소 깨달았소…….
이튿날 먼동이 채 트기 전에 나는 단장을 들고 뜰에 나섰다. 꽤 차가운 아침이었다. 황폐해진 정원을 한바퀴 휘돌아서 뒷산으로 올라가려는데 초막께서 순실이가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인사성 있게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과히 추우시진 않으셨어요?”
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인사를 받고 나서,
“서리가 대단한데요.”
하고 말하며 뜰을 살펴보았다. 간밤에는 유난히 기온이 차가웠던지
뜰에는 챤서리가 한 겹 깔려 있었고, 그 때문에 가뜩이나 엉성한 코스모스 줄기가 좀더 추잡해 보였다.
“꽃들이 죄다 시들었군요.”
“참, 코스모스를 죄다 떠버려야겠어요!”
순실은 내 기분을 알아차렸음인지, 그렇게 말하며 초막으로 걸어간다.
이윽고 순실은 행주치마를 졸라매며 손에 낫을 들고 나타나더니, 서리에 시든 코스모스 줄기를 뜨기 시작하였다.
한대 한대의 꽃줄기가 순실의 손에 토벌되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문득 지금 베어지는 저 꽃들은 애라의 손으로 심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따라서 순실은 마치 나의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애라의 추억을 후려갈기는 것만 같아 가슴이 후비었다.
정원이 마침내 훤해졌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허감에 잠기고 말았다.
“인제 시원해졌죠?”
순실은 낫을 땅에 놓으며 허리를 편다.
“너무 허무하군요…….”
“코스모스보다도 명년에는 들국화를 심는 게 좋을 것 같애요.”
하고 순실은 제 취미대로 무심코 한마디 던진다. 나는 그 무심한 한 마디에 무슨 숙명적인 암시라도 받은 것같이 가슴이 눌리어 잠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히 서 있을밖에 없었다.
순실도 역시 그옥한 눈으로 나를 마주 보는 채 오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연같이 둔탁한 침묵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문득 ‘에헴!’ 하는 난데없는 기침 소리에 순실과 나는 똑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간신히 정신을 걷잡아 좌우를 살펴보니 의외에도 산장지기 김서방이 장승처럼 울타리 안에 서서 화살같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것은 폐부를 뚫는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나는 김서방이 순실과 나 사이를 의심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닫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찔매다가 이어,
“아! 김서방! 인제야 장에서 오우?”
하고 물으며 몇 걸음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 서방님이 오셨구려? 이 어인 일입쇼? 제주도에 가셨다더니 언제 오셨는뎁쇼? 저는 어제 장터에 갔다가, 허허허, 막걸리 몇 잔 걸쳤더니 꼼박 취해서 이렇게, 허허…… 이만해두 다 늙은 탓인가 봅죠, 허허허…… 참 서울댁은 다들 안녕하시겠습죠?”
김서방은 나라고 알고 금시로 표정을 누그럽혀 교사스러운 너털웃음을 연방 웃어 가며 허리를 굽신거리며, 손으로 뒤통수를 쓱쓱 쓸며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나는 김서방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에 뒷산으로 올라갔다. 하나거니는 동안에도 아까 본 김서방의 독살스럽던 눈초리가 암만해도 마음에 꺼리어서 견딜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아까 그 장면이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젊은 아내를 혼자 두고 하룻밤을 밖에서 자고 들어온 김서방에게는 결코 심상히 보이지 않았을는지도 모르는 그 풍경이 아니었던가.
나는 김서방에게보다도 순실에게 뎌없이 송구스러웠다. 이내 수다를 떨고 허풍을 치고 한 김서방이기는 했으나 한번 자리잡고 들어앉은 의혹심이 그렇게 손쉽게 사라졌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항상 불행은 부질없는 상상에서 온다고 한 아랑의 말이 기억에 떠올라서, 장차 순실에게는 어떤 불행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상상에 나는 치가 떨렸다.
사흘이 지났다.
김서방네 가정에서는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었는지 순실은 조금도 전과 다름없이 침착하였다. 애라의 생일 제사를 바로 내일로 앞둔 전날 저녁에 나는 과수원을 산보하고 있었다.
마침 해는 지고 달은 채 빛을 펴지 못한 무렵이어서 낙엽을 밟으
며 오랜 동안 나무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이따금씩 스산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울리며 지나가고 나면 대지는 소조히 밤의 세계로 잠들어 가는 초저녁이었다.
이윽고 달빛이 교교해지면서 과수원에는 허수아비 같은 그림자가 수다하게 나타났다. 바람이 한순 지나고 과수원 전체가 무한한 고요 속에 잠겨 버리려는 그때,
“서방님…….”
하고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능금나무 그늘에서 나를 부르는 여인은 순실이었다.
나는 반가웠다. 이때처럼 순실을 반겨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왜 그렇게 반가웠던지 모르나, 나는 무턱대고 반가웠다. 가뜩이나 김서방에게 의심을 받고 있을 우리가 이렇게 달밤의 과수원에서 단둘이 만난다는 것이 슬기롭지 못한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웬일인지 무척 반가웠던 것이다.
순실은 가까이 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전보를 한 장 내밀어 준다.
‘아홉시 도착, 영접 고대 애경.’
애경이가 내 편지를 보고 언니의 생일 제사에 참례하려고 오는 모양이었다.
“작은아가씨께서 오신다죠?”
소학교 오학년까지 다녔다는 순실은 전보를 미리 읽었던지 그렇게 물어서,
“그런다는군요. 내일이 애라의 생일이니까…….”
“오래 계시다 가세요?”
누구를 두고 묻는 말인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글쎄 애경은 이내 갈걸요. 나는 이 겨울을 여기서 나겠습니다만…….”
“여기는 겨울 날씨가 꽤 춥죠?”
“…….”
“여기는 겨울 날씨가 꽤 춥죠?”
“그렇지두 않아요. 하지만 겨울엔 눈밖에 없는걸요.”
“눈……?”
“산두, 들두, 집두 죄다 눈 속에 묻혀 버려요. 하두 눈뿐이어서 겨울이면 사람이 무척 그리워져요.”
순실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나는 눈 속에 묻힌 산장의 지붕 밑에서 애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겨울을 기어코 여기서 나리라 결심하였다. 겨울이면 사람이 그립다는 순실을 위하여도 그것은 보람 있을 일일 것만 같았다.
“겨울엔 사냥꾼이 가끔 오겠군요?”
“네, 서울서 총바치들이 가끔 밀려와요.”
“대개 무슨 짐승들인가요?”
“노루가 젤 흔해요.”
“노루……? 노루! 노루…….”
나는 노루라는 말에서 나를 ‘사슴’이라고 불러 주던 애라를 연상하면서 몇 번이고 곱씹어 뇌어 보았다.
그리고 총 맞은 노루가 피를 홀리며 눈 위에 쓰러진 비참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짜장 나 자신이 한 마리의 노루가 된 듯이 네 다리가 수물거렸다.
십 분 후에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장으로 내려왔다. 정거장에 마중 나갈 시간이 되어서 내가 밤길 오 리를 왕복해야 할 행장을 차리고 나섰을 때, 순실도 따라 나서며,
“저두 마중 나가겠어요.”
한다.
“무얼…… 혼자 갔다 오죠…….”
억지로 뿌리치고 싶지는 않았으나 역시 같이 가기는 마음에 꺼리었다.
순실은 더 따라서려고 하지도 않고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본다. 달빛에 물들어 진주처럼 영롱한 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보아서는 안 될 그 무엇을 본 듯해서 소스라치게 놀라 사슴처럼 언덕길로 내달으며 저도 모르게,
“아아, 순실! 순실!”
하고 부르짖었다. 애라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오직 순실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에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Y역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차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나는 남포등이 꿈처럼 몽롱한 플랫폼을 혼자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 이외에는 승객도 영접객도 없었다.
차는 이내 와 닿았다. 나는 삼등 찻간으로 달려갔다. 두루마기에 대관을 쓴 사내가 한 사람, 육십이 다 되어 보이는 지팡이 짚은 노파가 한 분, 내리는 사람은 그뿐으로 애경은 종시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에 미참이 진 게로군!”
혼자 중얼거리며 막 밖으로 나오려는데, 저만치 뒤에서,
“희순 씨!”
야무지게 부르며 애경이가 상사말처럼 기운차게 달려온다.
“아, 애경! 어디루 내렸누?”
나는 애경에게로 마주 달려가며 물었다.
“이등을 탔었죠!”
“이등 차? 호오! 호화판이로군그래!”
“신혼여행하는 폭 잡었죠, 호호호…….”
“신혼여행?”
신혼여행이라는 말에 나는 일순간 정신이 현혹해짐을 느끼며 애경을 마주 보았다. 고무공같이 탄력 있어 보이는 몸에 다갈색 양장을 휘감고 펴머넌트를 밤바람에 휘날리며 남포등 밑에 서 있는 애경은, 짜장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같이 요기로워 보였다.
거리를 빠져서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참, 편지 주셔서 고마웠어요.”
하고 애경은 생글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을 묵살하고 나서,
“양친께서두 내가 산장에 온 줄 아시우?”
“아시다뿐이겠어요! 겨울을 산장에서 나신단 말씀을 들으시구 펄쩍 뛰시면서 가뜩이나 약한 몸이 어떻게 그 기홀 감당해 내겠느냐구 하시면서 저더러 어서 가 데리구 오라구 그러시던데요. 말하자면 제가 특사루 온 셈이에요.”
애라가 죽은 후에도 내게 대한 그들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고 나는 눈시울이 절로 달아올랐다.
“서울이라구 별로 신통할라구요.”
“그러기 서울루 오시라는 게 아니라 어느 온천장이나 그런 데루 가시라는 거예요. 그리구 저더러도 쓰키소이(시중꾼)루 같이 가라나요!”
“온천으로? 애경과 함께……?”
나는 의식적으로 반문하며 면구스러워할 만큼 그를 빤히 마주 보았다.
애경과 나를 온천장으로 보내려는 것이 양친의 의사에서 나온 분부인지, 혹은 애경 자신의 희망인지를 판단 못 한 채 나는 약간의 불쾌감까지를 느꼈다. 애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추억 이외의 것으로 보충한다는 것은 내게 다시 없을 모욕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애라와 함께 셋이서 산장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달 밝은 저녁에 셋이 베란다에 모여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다가 애경은 문득 언니에게 조금도 꺼리는 일 없이 나의 팔을 잡아당겨 제 가슴에 품으며,
“난 이 세상에서 희순 씨가 고작 좋아!”
하고 농조로 지껄인 일이 있었다.
그저 그뿐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애라는 그날부터 사흘 동안 구미를 잃어버리고 경황없이 시름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나는 애경의 행동을 단순한 장난으로 알았고, 따라서 그런 데까지 신경과민한 애라를 나무랐던 것이나, 이제 보면 그때의 그 일이 노상 농만이 아닌 것같이 여겨진다.
역에서 산장에 오기까지에 애경은 언니 이름을 한 번도 입 밖에 낸 일이 없었다. 나는 부질없이 애경에게 편지 낸 것을 후회하였다.
산장에 도착하자 애경은 애라의 방에는 들를 생각도 않고 곧장 제 방으로 달려간다. 내가 애라의 방에 한번 들르라고 하니까,
“아이 싫어요! 그 방보다 내 방이 좋은걸. 어서 내 방으로 오세요. 재밌는 얘기 들려 드릴게요.”
하며 성화같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애라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해야 할 애경이라고 믿었던만큼 나는 적지않이 실망을 느꼈다. 그래서 나만은 애라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겨울을 이 산장에서 나야겠다고 혼자 다짐을 두고두고 하였다.
믿었던 애경이가 석 달도 채 못 가 언니를 배반하였다는 슬픈 사실에 나는 그날 밤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요, 내가 예수의 진리를 저버리는 것도 사람으로서 용혹무괴하겠으나 그러나 에경이가 친동기인 언니의 죽음을 석 달이 멀다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암만해도 생의 비극 같기만 하였다. 종이의 표리와 같은 것이면서 생과 사는 이렇게 격리된 두 세계일까. 나는 웬셈인지 자꾸만 애경에게 반감이 가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따라서 밤이 깊어 갈수록 신경은 점차 흥분되어 마침내는 이불을 박차고 파자마 바람으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는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누며 애라의 무덤께로 걸어갔다.
애라는 내가 이렇게 찾아온 줄을 아는가 모르는가. 혼령이 있다면 어서 나타나 나를 위무하여라, 고 나는 무덤가 풀밭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밤은 삼경이라 사방은 죽음같이 고요하고 달은 누구의 눈동자처럼 맑고도 차다.
음률같이 리드미컬하게 나부끼는 미풍! 한껏 슬픈 것도 같고, 한껏 기쁜 것도 같고, 한껏 허무한 것도 같고― 음향과 빛깔과 감정이 한 초점 위에서 어울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이 시각이라고 느껴지는 그때 어디선가 멀리서 말다툼 소리가 들려 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사내의 목성이요, 자세히 음미하니 김서방의 고함이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깨달으며 순간에 저번날의 그의 의혹에 찬 시선을 회상하였다. 나는 일어섰다. 소리의 방향을 더듬으며 머릿속에는 순실의 참혹한 주제를 상상하였다.
김서방의 초막이 가까워 오자, 내 귀에는 다음과 같이 횡포한 말이 들려 왔다.
“……요 토라질 년아! 그놈이 네년 때문에 온 게 아니구 뭐란 말이냐? 어서 바른 대루 실토를 해라! 목숨이 아깝거든 실토를 해. 요 능지를 할 년 같으니.”
이런 사나운 욕지거리와 함께 등불 빨간 창호지에 미친 두옥신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었다. 잴싹! 탁! 하고 맹렬한 폭음도 들려 왔다.
김서방이 아내 순실을 치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순실은 아무 찍 소리조차 없다.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김서방의 을렀다 메는 꼴과 순실이가 무진 매를 맞으며 죽어대령으로 입을 악새려물고 있는 무서운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어른거린다.
“이 주리를 틀어 죽일 년아! 그놈이 맛이거든 썩 내 눈앞에서 없어져라. 요 배라먹을 아귀년 같으니…….”
이런 욕지거리와 함께 또 폭행과 난타가 시작된다.
“이년아, 아가리가 붙었느냐? 왜 대꾸가 없어…… 그럴 테지…… 무슨 대꾸가 있을라구. 있거든 있는 대루 말해 봐, 이년아!”
그러나 순실은 역시 아무 대답이 없다.
“흥! 악지가릴 못 뗄 젠 너두 네 죄를 알기는 아는가 보구나! 이년아, 화냥을 놀면 어디선들 못 논다구 하필 과수원까지 따라갈 건 뭐 드란 말이냐…….”
하고 김서방은 살기가 등등하다.
김서방의 시선이 항상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치가 벌벌 떨리었다. 겁을 집어먹어야 할 죄를 지은 것은 없지만 아무튼 내 행동이 남에게 그런 의심을 사게 되었던 사실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바로 그대로 방에 뛰어들어가 그런 일이 절대로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변명이 김서방에게는 도저히 곧이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재밤중에 남의 가정 싸움을 엿듣고 있은 그 일부터가 더욱 의심을 사게 될 것 같아, 나는 맹렬한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니, 그들의 싸움을 중재할 수 없을 바에는 더 엿듣고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어서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달려오고 말았으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겨울을 산장에서 나기로 했던 결심을 나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실을 위하여 나는 하루바삐 이 산장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깨달 았다.
밤이 거진 샐 무렵이었다. 바로 옆방인 애경의 방에서 쿵 하고 바람벽 울리는 소리가 난다. 애경이가 잠결에 몸이라도 뒤채는가 보다고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조금 후에는 ‘휴―’ 하고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애경은 또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 한숨을 쉬는 것일까.
잠잠한 몇 분이 지난 뒤였다.
“희순 씨!”
하고 애경이가 문득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자코 있으려니까,
또 얼마 후에,
“희순 씨! 희순 씨이!”
좀더 명확한 음성이다.
나는 피뜩 애경의 그 고혹적인 육체가 연상되어서, 애경이도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희순 씨…… 희순 씨!”
이번에는 쿵쿵쿵 바람벽을 마구 두드리며 부른다.
“애경이! 왜 안 자구 그러는 거야?”
나는 질책하듯 소리쳤으나 기실은 나 자신에게 타이르는 경계이기도 하였다.
“희순 씨! 나, 무서워 죽겠어요! 내 방으루 좀 와주세요.”
“옆방에 사람이 있는데 무섭긴…… 어서 한잠 더 자요, 아직 밤이 멀었으니 …….”
“무서 죽겠는걸요…… 어서 좀 와요.”
애경은 몸부림까지 치는 듯하다.
마지못해 나는 일어났다. 복도로 나와 애경의 방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내가 애경의 방에 들어갔다가는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기고야 말 것 같은 직감이 느껴져서 이 유혹을 어떻게 하든지 이겨 내야 하겠다는 맹렬한 자책심이 솟아올랐다. 치가 부르르 떨린다. 나는 손잡이를 맥없이 놓았다.
“어서 들어오세요!”
하는 애경의 재촉이 들려온다. 나는 다시 손잡이를 붙잡았다. 바로 그때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란 주기도문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어서, 나는 손잡이에서 손을 펄쩍 떼었다. 그리하여 쏜살같이 얼른 밖으로 뛰어나오고 말았다.
두 시간쯤 후에 다시 산장에 돌아왔을 때에는 아침해가 이미 앞산 위에 솟아 있었다. 애경과 복도에서 마주쳤으나, 아침 인사도 않고 뾰로통해 있었다.
나는 세수를 하려고 후원 우물께로 왔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고 있던 순실은 나를 보자 여느 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침착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데, 도무지 간밤에 악형을 겪고 난 사람 같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덜미께에 푸릇푸릇한 자국이 보였을 뿐…… 인내란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것일까 하고, 나는 새삼스러이 감격을 마지못하였다.
그때 김서방이 불쑥 나타나더니,
“서방님, 안녕히 주무셨습죠? 허허, 오늘은 좀 누그러졌는가 본텝쇼? 아 참, 오늘이 보름이니 생일 제사를 지내야 헙죠? 허! 세월은 빨라서 돌아가신 지 어언간 석 달이 되었는가 본뎁쇼, 허 참…….”
김서방은 대꾸도 없는 말을 혼자 늘어놓는다. 어젯밤의 김서방의 입에서 오늘은 또 어떻게 저런 간사한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오직 아연할 뿐이었다.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는 말은 정히 이 김서방을 두고 이른 말 같았다.
열시쯤 되어서 우리는 제사상을 차려˙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제사상 위에는 백반 한 그릇, 민어가 한 꼬리, 전어 한 집시 그것뿐이었다.
분향한 후 술을 따라 놓고 나서 그 앞에 엎드려 세 번 절하니 슬픔이 안개같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순실은 소리 없이 울고 애경은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순실의 참배가 끝난 다음에는 김서방이 저도 참배한다고 서두르는 것을 나는 단연 막아 버렸다. 아주 단출한 제사였으나 나는 비로소 처음 애라에게 부채를 갚은 듯이 기분이 가벼워졌다. 산장으로 돌아오자 애경은 나에게 말하였다.
“희순 씨! 인제 제사도 끝났으니 오늘루 내려가세요, 네!”
“글쎄…….”
내려가다니 대체 어디로 내려가자는 것일까. 나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채 애매히 대답하였다. 어젯밤 초막에서 일어난 비극을 몰랐던들 나는 겨울을 여기서 나겠다고 고집했을 것이나 인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글쎄가 무슨 글쎄예요. 제사를 지냈으니 내일 첫차루 내려가요, 네!”
“글쎄 원…….”
“남자가 무슨 글쎄가 그렇게 많아요? 아무래두 내려가셔야 할걸 척척 내려가시지…….”
“아무려나!”
“아무래두 내려가셔야 할 거 아녜요?”
“…….”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미 나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 진종일 나는 천치처럼 산과 들과 과수원을 헤매고 있었다. 생도 사도 내게는 대범 무의미하게만 여겨졌다. 신을 절대의 극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일방적인 정신이 부러웠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나는 아무와도 마주 서지 않았다.
다시 밤이 왔다. 두려운 밤이었다. 나는 어젯밤 초막에서 일어난 광경을 생각하다가 자정 가까워서 나도 모르게 밖에 나섰다. 김서방네 초막에서는 어젯밤과 같은 일이 오늘 밤에도 또 일어나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근심에서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초막께로 가만히 걸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이 무슨 일일까. 김서방네 가정에서는 오늘도 어젯밤과 꼭 같은 풍파가 또 벌어진 것이 아닌가. 김서방은 오늘 밤은 술까지 취해 있었다.
아내를 차고, 치고, 부수고 하다가는 제김에 제가 쓰러지고 쓰러져서는 제물에 어린애처럼 엉엉 목을 놓아 울다가 또 벌떡 일어나 순실을 닦아 부수고 하는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 창호지 한 겹 사이 둔 방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일초를 더 참고 섰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새를 가르고 들어설 수도 없는 일이기에 두 주먹을 부르쥐고 산장으로 달려올밖에 없었다.
인제는 애경의 지시대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아무래도 여기를 떠나야만 한다.
“순실 ―”
순실을 엄습하는 불행을 무엇으로 막아 낼 수 있을까. 나로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도는 하루바삐 내가 여기를 떠나는 그것뿐이었다. 내게는 무척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 이상 나는 더 주저하지 말고 오늘로 애경과 함께 이 산장올 떠나야만 한다.
앞으로 내게 어떤 험로가 벌어지든 간에 나는 순실을 불행에서 구해 내기 위하여 일부러라도 애경을 등에 짊어지고 산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먼동이 훤히 트자 나는 애경을 깨우려고 산장으로 돌아오다가 우물가에서 순실을 만났다. 순실의 태도는 여전히 침착하였다. 나는 어젯밤 일을 물어 보려다가 문득 혀를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우린 오늘 떠나렵니다!”
하였다.
“네? 왜요? 겨울을 여기서 나신다더니…….”
깜짝 놀라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커다란 실망의 빛을 발견하고 가슴 설레었다.
“역시 떠나야 할 운명인 것 같아서…….”
하는 나의 대답에 순실은 잠자코 고개만 수그린다.
마음과 마음이 침묵 속에 교섭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그것이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무심중에 순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가만히 불렀다.
“순실 씨!”
“…….”
순실은 부르르 치만 떨 뿐이다. 그리고 원망 가득 찬 눈으로 하염없이 나의 가슴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실 씨!”
하고 부르며 그의 손을 힘 있게 붙잡았다.
“겨울이면 당신은 무척 사람이 그립다고 했죠? 어느 하늘 아래에 가더라도 나는 당신이 그리울 게요.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가 보우!”
순실은 고개만 처뜨리고 그만이다.
“순실 씨! 한 사람을 참된 맘으로 영원히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를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은 듯하오. 자, 안녕히 있으시오.”
순실과 나는 마지막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어린 시선을 똑바로 내 눈에 붓는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잠시 순실의 눈을 황홀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고요히 팔을 들어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들겼다.
나는 나의 행동에 아무런 죄악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 앞에 세례를 받을 때와 같이 지극히 경건하고 엄숙한 감정뿐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육(肉)과 영(靈)의 경계를 영원히 방황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숙명적인 비운을 지닌 채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산장을 떠났던 것이다.
(『한국단편문학전집』, 백수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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