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조계사에서는 조계종조 도의국사를 추모하는 다례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한국에 처음으로 선을 심은 도의국사를 선양함으로써 한국 선종의 역사를 오늘에 계승한다는 것이 주최측이 밝힌 도의국사 다례제의 개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도의국사를 한국불교의 종조로 선양하는 이 작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한국불교의 최고 스승으로 꼽히는 원효도 있고, 의상도 있는데 왜 하필 도의국사를 한국불교의 시작점으로 꼽느냐는 것이 불만의 가장 큰 이유이다.
이 불만은 조계종의 명칭으로 이어진다. 왜 하필 ‘조계종’이라는 특정종단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한국불교 가운데 선종, 그 중에서도 조계종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좁히냐는 것이다.
"원효도 있고 의상도 있는데 왜 도의를 한국불교 시작으로 꼽나"
“조계종은 왜 조계종일까.”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는 상당한 문제의식을 내포돼 있다. 지금은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여타 종단들과 구별되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 조계종이라는 명칭은 특정 종단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제가 만든 선교양종이라는 이름 대신 한국불교의 독립성, 정통성을 자처하기 위해 사용한 이름이었다.
조계종은 원래 고려말 선종의 한 종파였다가, 조선시대에는 사라진,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다시 등장한 이름이다. 따라서 여말선초의 조계종과 현재의 조계종 사이에는 긴 시간적 간극과 역사적 단절이 존재한다.
고려말과 일제시대, 500년간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최근 조계종명의 역사를 고찰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됐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김용태 연구교수는 선학원의 주최로 열린 제4회 선리연구원 학술회의에서 ‘조선후기․근대의 종명(宗名)과 종조(宗祖) 인식의 역사적 고찰’을 발표했다.
김 교수의 논문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에서 주최한 학술상 수상작이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조선후기 임제태고법통의 역사성과 근대 종명의 변천과 종조 논란을 조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계종의 종명은 이미 일제시대부터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명에 대한 논란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1910년 이회광이 원종과 일본 조동종과 연합조약을 체결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만해를 비롯한 승려들은 임제종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의 반대로 임제종 운동은 좌절되었고, 선교양종이라는 이름의 사찰령 체제가 출범한다.
김용태 교수는 “19010년대초 임제종 운동이 좌절되고 선교양종을 종명으로 채택한 총독부의 사찰령 체제로 들어가면서 조선불교의 종명과 종조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고려후기와 조선초의 선종을 대표하는 조계종의 전통과 그 상징적 존재인 보조 지눌의 재발견이었다”고 설명했다.
"1941년 방한함을 필두로 이전부터 공론화된 조계종 명칭 채택"
당시 조계종과 지눌에 처음 주목한 이는 송광사 주지를 역임한 보정이었다. 보정은 1910년대 후반 이후 “지눌이 선교 통합의 종으로 조계종을 개창하였다”고 적극 주장했다.
이같은 보정의 주장은 1920년대 이후 김영수와 권상로에 의해 또다시 제기된다. 김영수는 “그동안 임제종 등 다양한 종명이 제기되었지만 일본의 선종과 구별할 필요에서 반드시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권상로는 “신라 때에 자립한 조계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조선불교는 법계상 조계종파”라고 주장했다.
이후 1930년대 방한암은 “해동선종의 초조가 신라의 도의이고, 이후 선종 9산의 조계종 전통이 지눌 및 수선사로 계승되었다”고 주장했다.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의 설립은 초대 종정 방한암을 필두로 이전부터 공론화된 조계종 명칭이 종명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 김용태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때의 종조는 도의가 아니라 태고 보우였다. 조선불교총본산인 조계사의 예전 명칭이 태고사였던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왜 태고가 조계종의 종조로 내세워졌던 것일까. 이는 17세기 전반에 정립된 임제태고법통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임제태고법통은 태고 보우를 통해 전래된 중국 임제종의 정맥이 휴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조선불교가 중국 임제종을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현 조계종은 조계종과 태고법통의 조합에 도의와 지눌이 덧붙여진 형태"
이같은 임제태고법통설은 1625년~1640년 사이에 제기된 것으로, 이때는 인조반정(1623)과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이 발발했던 시기이다. 김 교수는 “이때는 정통론적 화이론과 의리명분이 시대사조로 풍미했던 시기로, 임제태고법통은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배태됐으며, 임제 선종이라는 자의식과 중화 정통성의 계승을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현재 조계종의 종명과 종조는 기본적으로 조계종과 태고법통이 결합된 조합이었고, 여기에 선종의 초전(初傳)을 상징하는 도의와 조계종 전통을 대표하는 지눌이 덧붙여진 형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조계종이 선종의 틀, 특히 간화선의 틀에 갇혀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제기했다.
김 교수는 “조계종 전통의 본질은 지눌의 수행체계에서 알 수 있듯이 간화선 선양 외에도 정혜겸수, 선교융통에서 찾을 수 있고, 임제법통을 표방한 조선후기에도 선교겸수의 지향과 교학 중시 양상이 확인된다”며 “명실상부한 조계종 전통을 되살리고 한국불교의 올바른 방향성 모색하려면 선종 일변도의 이해는 재고돼야 하며, 교학과 정토 등 다양한 전통의 발견과 정체성의 모색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조계종이 한국불교 전통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기 위해서는 오교구산-오교양종-선교양종의 틀처럼 선과 교를 아우르는 통합적 역사인식을 통해 내실을 다지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고려와 근현대를 잇는 가교로서 조선시대 불교의 실상과 정체성을 파악하고 재조명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논평을 맡은 박해당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선종임을 내세우고 있는 오늘날의 조계종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유일한 종파임을 자임하고 있는데, 이는한국에서 형성된 정토신앙과 교학전통 등 다양한 불교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그렇다면 조계종은 종합종이지 결코 순수한 선종일 수만은 없으며, 조선후기나 근대에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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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에 대한 논의, 조계종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질 지 주목
이날 제기된 조계종의 정체성과 조계종명에 대한 논란은 지난 3월 조계종 교육원이 주최한 포럼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당시 학담 스님과 현응 스님의 주장이 상당히 직설적이었던데 비해 이날 학술회의에서 제기된 학자들의 지적은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상당히 날카로웠다.
최근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는 조계종명과 선종으로서의 정체성 논란은 사실 시기적으로 늦은 바가 없지 않다. 이는 그동안 근대불교 연구에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근대성, 근대불교의 시발점, 종명과 종조에 대한 고찰은 조계종의 역사성을 진단하는 시발점인 동시에 조계종의 미래지향점을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종명에 대한 논의가 근대불교 연구의 진작, 조계종의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