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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 위치한 고요하고 한적한 마을로 향했다. 거기엔 ‘꽃피는 봄날’이라는 나무 팻말이 달린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더사랑교회였다. 입구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가 보인다. 옆의 나무 팻말엔 마태복음 25:35이 적혀 있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 환대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요섭 목사(더사랑교회 담임)가 능숙한 실력으로 커피를 내리며 방문객을 환대한다.
이요섭 목사는 38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신대원에 입학했다. 보통의 수순대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던 모교회를 떠나 전도사로 새로운 교회에서 교육 부서를 맡아 사역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며 교회의 본질과 미래에 관해 질문했다. 결국 ‘공동체성’에서 답을 찾았다. 곧바로 부서 사역을 내려놓고 ‘갈렙선교공동체’로 향했고 신둔면 장동리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인도 예상치 못한 공동체를 시작한다.
환대의 공동체가 시작되다
이천시 안흥동에는 0세부터 만 18세까지의 아동을 보육하고 양육하는 아동복지시설인 성애원이 있다. 이 목사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26세에 회심했다. 이후, 과거 이 목사의 주일학교 교사이자 성애원 원장인 신경림 선생과의 인연으로 성애원에서 봉사했다. 2000년 12월 말부터 2002년 5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중학생 3명과 한 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신대원 졸업 직후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2012년에 9명, 2013년에 9명, 주사랑 공동체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이들 18명이 성애원에 왔습니다. 아이들이 3-4살이 되던 해에 원장님은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닐 만한 교회를 찾지 못하셨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십자가가 있는데 아이들을 받아 주는 교회는 없었다. 신 원장에게 소식을 들은 이 목사는 당장 이번 주일부터 예배하자고 했다. 그래서 2016년 7월 마지막 주일, 성애원 강당에서 아이들을 위한 예배가 시작됐다. 이는 이 목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그해 초, 목사가 되기 위한 모든 서류 준비를 마치고 안수 받기를 기다리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목사는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자인데, 부르심도 없이 안수부터 받으려니 신학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수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반년 후 성애원 아이들과 예배하게 됐습니다. 글을 모르는 유아들이다보니 주기도문을 외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겐 목사의 축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 목사는 ‘교회의 시작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척의 때와 장소를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은 성애원으로 이 목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다. “예배 주보를 만들려고 보니 교회 이름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말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시편 68:5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고 하시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한 환대가 사랑이라면 그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로 ‘더사랑교회’(the love church)라고 지었습니다. 그 사랑(the love)으로 더 사랑(more love)하자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세워졌고, 2016년 12월에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됐다.
교육을 통해 그 사랑을 실천하다
성애원 예배가 시작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성애원 관계자 몇몇은 예배가 일회성으로 끝나면 여러 사람에게 상처가 될 거라며 반대했고, 이 목사는 목사가 되는 것 자체를 고민했다. 하지만 신 원장의 신뢰와 하나님이 주신 마음 덕에 결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제게 ‘이 아이들은 내가 보낸 양이다. 네가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키고 먹일 수 있다면 목사가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성애원 아이들을 평생 먹이고 치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목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는 교회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과 ‘마을 공동체’가 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의 우상은 대학과 내 집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를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성애원 아이들에게도 양질의 교육과 성인이 돼 살아갈 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에 매이지 않고, 실력을 키우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교회가 돕는다면 다른 어려움은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은 비평준화 지역이기에 중학교 내신 점수에 따라 고등학교 진학이 결정된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선 성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보육 시설인 성애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목사는 본래 전공인 국어 교육을 살려 돕기 시작해 2001년 8월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학교 앞에 위치한 ‘뿌리 깊은 국어학원’에서 성애원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학원 운영이 쉽진 않다. 기존 학생과 학부모 중 일부는 성애원 아이들과 함께 학습하는 데 불만을 품고 나갔고, 학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 교육비와 교재비, 강사비, 월세를 모두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이 목사는 답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교회는 이 길을 따라야 합니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일이 기독교 공동체가 나아갈 길입니다.”
아이들의 지붕이 돼 주고 싶은 이 목사와 더사랑교회의 선한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물들였고 더 넓은 지붕을 만들었다. 이 목사는 그동안 함께 한 18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4-5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찾아오니 이제는 그들만의 예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음 세대 교회를 개척했다. “작년 말, 더사랑교회 주일학교에서 분리 개척한 ‘은혜창고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몇 년간 학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시던 장선영 전도사님이 교회를 맡았습니다. 주중에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교육하고 주말에는 말씀을 교육하는 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도움의 손길은 계속됐다. “오랫동안 교제하며 지낸 김정하 전도사님이 2년 전부터 성애원 예배를 맡아 주고 계십니다. 매주 주말마다 자비량으로 남양주에서 여기까지 찾아와 아이들을 섬겨 주십니다.” 계획 중인 사역도 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국어만 아니라 영어와 수학 교육도 필요하다. 추가 교육을 위해서는 강의실을 임대하고 강사를 구해야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다. 당장 이루지 못해도 도울 자를 붙이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공동체 마을을 통해 더 사랑을 베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는 아이의 성장은 한 가정만의 책임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 즉 공동체의 책임임을 말해 준다. 이 목사는 아이들을 위한 마을을 꿈꾼다. “성애원 아이들이 성인이 돼 자립했을 때 언제든 올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건물적 기능을 넘어 가족 공동체 기능을 하는 집을 제공하기 위해 자립청년 공유 주택인 ‘꽃봄 하우스’를 계획했습니다.”
전체 교인 20명 남짓한 작은 교회가 한 마을을 세우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목사는 “교회는 세상에 대항하는 공동체가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우상인 ‘내 집’의 대척점에 있는 ‘남의 집’을 세운다면 그게 세상에 대항해 싸우는 게 아닐까요? 우상을 따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우상에 맞선 대안적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합니다”라고 뜻을 밝히고, “우리가 더하기와 빼기를 할 때, 하나님은 곱하기와 나누기를 하십니다. 생각하지 못한 은혜로 이끌어 가십니다”라며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실제로 마을은 이미 시작됐다. 먼저는 마을의 중심이 될 교회 건물이 마련됐다. 아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미디어학과 전병철 교수의 도움으로 임대였던 교회 건물을 매입했다. 2022년 8월 전 교수는 교회 2층으로 이사와 공동체 마을의 1호 주민이 됐다. 두 번째로는 ‘꽃봄 하우스’가 세워졌다. “토지 주인이 믿는 분도 아닌데 교회 사정을 듣고 배려해 주셔서 땅을 매입할 때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계산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가능케 하셨습니다.” 작년부터 지어진 건물은 올해 7월에 완공됐다.
더사랑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교회 표어를 그림으로 말한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과 〈씨 뿌리는 사람〉, 코로나 시기부터 작년까지는 고흐의 〈첫 걸음〉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림 제목은 〈환대의 공동체, 꽃피는 봄날〉이다. 이 목사는 2022년, 더사랑교회 청년이자 웹툰 작가인 이태하 형제에게 교회의 지향점이 담긴 마을 지도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5년간 이 목사와 교회의 비전을 공유한 청년의 손에서 더사랑교회의 꿈이 담긴 마을 지도가 탄생했다. 이 목사는 때를 기다리며 그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1호 주민이 탄생했을 때 예배당에 그림을 걸었다.
지도 오른쪽 위에는 더사랑교회가 자리한다. 그 주변으로는 학교와 밥집과 놀이터가 있다. 완공된 꽃봄 하우스도 보인다. 그런데 현재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도 있다. 제과제빵을 전공한 교회 자매가 일할 제빵소와 목수 집사님의 기술이 전수될 목공센터, 이태하 청년이 일할 웹툰 창작소, 시대에 발맞춘 프로그래밍학교, 그리고 실버타운도 있다. “아이들은 요람 속에 담겨 성애원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제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이들을 책임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노년에도 머물 만한 집으로 실버타운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또 교회에서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의 은퇴 시점이 가까이 왔는데, 사역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셨을 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할 계획입니다.”
공동체를 통해 말씀을 체득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역이 이뤄지고 있다. 성애원 아이들을 위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매월 ‘더사랑데이’를 진행한다. 오선화 작가의 도움으로 문화 공연을 하고, 이후엔 삼겹살 파티를 한다. 매월 90인 분이 넘는 삼겹살을 구워야 하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지만 맛있게 먹어 주는 아이들이 있는 한 사역은 멈추지 않는다. 매달 마지막 주엔 성애원 아이들이 더사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마다 이천에 있는 미션스쿨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아이들을 위한 2부 순서를 진행한다. 학생들 중 교회에 다니는 학생은 단 한 명이다. 그런데도 교회와 함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작년 겨울에는 ‘꽃봄 협동조합’을 세워 공유주택 명의를 조합 이름으로 짓고 있다. 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 목사는 이와 같은 사역을 통해 마태복음 13:44에 기록된 천국 비유를 체득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천국이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고 하시며, 밭에 숨겨진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사람의 비유를 드십니다. 저는 더사랑교회의 사역을 통해, 단순히 지역 안에 속한 마을 개념을 넘어 시공간을 뛰어넘는 마을을 세우시는 하나님과 한 마을을 세우기 위해 소유와 시간과 정성을 바치는 이웃을 경험합니다. 이를 통해 천국 비유 말씀을 삶으로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한 사람, 신경림 원장은 고아의 엄마로 남겠다며 성애원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 한 사람에게 배운 제자 이요섭 목사는 “이분이 있어 제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아이들의 평생을 책임지고자 결심했다. 그의 꿈을 들은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모여 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반갑게 맞이하고 정성껏 대접하는 환대의 공동체, 더사랑교회를 통해 천국 공동체에서 누릴 기쁨을 미리 들여다본다.
첫댓글 아이들의 지붕이 되어주는 공동체~
여러가지로 너무 너무 멋진 환대의 공동체네요~
우리 언약교회가 하고싶은 일들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