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31
경주남산으로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퍼붙는다. 천둥.번개가 친다.
이 길을 꼭 가야만하나?
그래도 길을 나섰으니 가야한다.
한번 무너지면 두번 무너지고 결국은 아주 무너지고 만다.
흔들리지 말고 그 길을 가자.
비가 오면 오는대로 천둥.번개가 치면 치는대로
신라천년의 아름다움을 느끼러 가자.
경주시 탑동 보광사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일성왕릉으로 간다.
왕의 무덤에 큰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천팔백년의 세월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가 순간으로 만나는 그 느낌을
일성왕은 신라 제7대 왕으로 말갈족의 침입을 자주 받아
국력의 소모가 심하였는데, 농사를 장려해 제방을 수축하고
전지를 개간하는 등 농정에 진력했다.
또 민간에서 금은주옥 등의 사치품의 사용을 금지했다.
사적 제173호로 지정된 일성왕릉은 153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경주시 탑동 경주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일성왕릉)
왕릉에서 윗쪽으로 소로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서장에 해목령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걷다가 부흥사로 가는 소로길을 찾아 든다.
늠비봉에 올라서니 비는 그쳤고 안개가 골짜기를 타고 산을 넘는다.

늠비봉에는 5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석탑은 경주남산 전망대에서 흘러 내려온 능선의 끝자락에 서서
부흥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주변에 흩어진 탑재들을 모아서 정돈해 놓았다.


탑은 안개속으로 모습을 감추기도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늠비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부흥사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부흥사로 내려간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목련과 벗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부흥사 인근에 있는 포석골 선각황금불좌상을 참배한다.
내력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니 마음으로 느낄 뿐이다.
황금불이라는 표현은 선각된 돌의 색깔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선각 황금불좌상)
경주남산은 민중불교가 꽃을 피운 불국토이기에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들이 마애불이나 석불로 화현되었을 것이다.
[황금불 찾아가는 길]
부흥사에서 남산순환도로로 연결되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좌측으로 포석정으로 내려가는 능선상의 소로가 있는데,
이 소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아래 사진과 같이
묘지 위쪽에 바위가 있는 지점에서 묘지 아래로 내려가야한다.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서 포석정방향으로 내려가면
윤을곡마애불좌상 이정표가 있다.

(윤을곡 마애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된 윤을곡 마애불좌상은
'ㄱ'자형 바위의 동쪽면에 한분의 약사여래불을 새겼고,
북쪽면에 두분의 불상을 새겼는데 그 중의 한분이 또한 약사여래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신라흥덕왕 10년(835년)에 조각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마애불을 참배하고 희미한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묘지가 있는 능선상의 소로를
만나게 된다. 그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능선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산을 내려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역시 좌측능선길로 내려간다. 능선좌측에 밭과 저수지가 보이는 곳
약30m전방에서 우측으로 묘지가는 길로 접어들면 정확하게
창림사지 삼층석탑으로 가게 된다.
(창림사지 삼층석탑)
창림사지는 경주시 배동 산 6-2번지 서남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창림사지는 삼국사기에 신라최초의 궁궐지로 기록된 유서깊은 곳이다.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초기에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었다.
1824년 석탑은 사리장엄구를 도굴하려던 자에 의해 되괴되었고,
이 때 조탑사실이 기록된 창림사무구정탑원기가 나와 이 탑이 신라 문성왕17년
(855년)에 조성된 것이 밝혀졌다.
이 곳 寺域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이 쓴 시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쌍두귀부와 주초석들만이 남아 있다.
창림사지에서 산기슭을 따라서 남간사지 당간지주가 있는 곳으로 간다.
(보물 제909호 남간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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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논을 경작하면서 지주의 아래부분이 약 50㎝정도 드러나 있으며,
바닥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부가 없어서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던 받침돌도 찾아볼 수 없다.
지주 안쪽 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세 군데에 뚫어 놓았는데,
특히 꼭대기에 있는 것은 십(十)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로,
보존된 상태도 양호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답사소요시간 약3시간 정도)
첫댓글 이곳은 전부 가보지 못한 곳이군요. 언젠가 가볼날이 있겠죠. ^^
아하~3월 천지부부랑 다녀왔던곳인데..후기 사진을보니 넘 반갑네요..남산의 돌 ,흙,바람까지도 유물입니다....황홀할따름입니다...
순례가 일찍 끝나서

경주에서 내리고 싶은 맘은 간절했으나 

담을 기약하며 올라왔네요

늘 신선한 바람을 몰아다 주셔서 감사하구요^^&

() () ()
경주 가고 싶당.
함 가 보세요.사계절 항상 아쉬움을 남기는 곳이랍니다. 출출 하시면 한전 뒷담길에 금오정에 맛깔 나는 정식도 드시구요....깔끔하고.맛있고,분위기도 좋고 또 싸기 까지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