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西瓜, Watermelon)
수박을 볼 때마다 오래전 그 여름날 수박 서리하던 선배들이 떠오른다.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집에서 중학교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통학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부모님이 읍내에 월세방을 하나 얻어 주어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자취를 하게 된 곳은 군인관사였다.
예전에 남원 지역에 공수부대가 주둔한 적이 있었는데 군부대 간부들을 위한 관사를 20여 채 지어 군부대 간부들이 거주하다가 군부대가 옮겨가면서 일반인에게 분양하였다고 한다.
내가 살게 된 월세방의 집주인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지뢰를 밟아 상이군인으로 전역한 미혼의 젊은 사람이었다.
본래 성질이 사나운지, 아니면 상이군인이 되어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간혹 읍내에 나가 술 먹고 싸우는 경우가 있었다.
근처에 그 상이군인의 형님네 가족이 살고 있어서 돌봐주고 있었는데 그 형님이 참 고생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구조는 방이 3개 있었는데 가운데 방 하나는 집주인이 살고, 나머지 두 개는 각각 월세방으로 내놓아서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한쪽 방에는 나와 친구, 그리고 2년 선배, 이렇게 셋이 방 하나에서 생활했다.
다른 방 하나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3명, 중학교 1학년 1명이 살고 있었다.
다른 방에 있는 학생들은 서로 학교가 다르고 나이도 차이가 나서 별 대화 없이 지냈는데 간혹 수돗가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였다.
예전 주택은 수도가 마당 한 가운데 있어서 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세수도 하고 쌀도 씻고, 설거지도 하고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어느 여름날 자고 일어나 아침에 수돗가에 가보니 한쪽에 커다란 자루가 있는데 그 안에 시퍼런 토마토도 있고, 참외도 있고, 수박도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등학교 3학년 형 3명이 밤 중에 수박 밭에 가서 서리를 해 온 것이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수박 서리, 닭 서리 등 남의 것을 서리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요즘엔 절도에 해당하는 행동이지만 예전에는 그다지 그런 의식 없이 서리를 하곤 했었다.
물론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수박 서리하러 갈 때는 옷을 다 벗고 간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혹시 주인에게 들켜서 도망치다 보면 옷을 입고 있으면 뒤에서 옷을 잡아당겨서 잡힐 수도 있지만 옷을 벗고 가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건 수박 서리를 해다 놓았는데 수박을 잘라보니 아직 익지 않은 것이었다.
깜깜한 밤중에 아무런 불빛 없이 서리를 했으니 익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어 그냥 따온 것이었으므로 거의 다 익지 않은 것이었다.
수박 서리해온 형들도 멋쩍어하고 우리는 수박 맛 좀 보나 했다가 실망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수박과 참외, 토마토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래전의 일인데도 기억 저 깊은 곳에 있다가 여름이면 슬금슬금 기어 나오곤 한다.
여름철에 대표적인 과일은 뭐니 뭐니 해도 수박이 으뜸이다.
수박은 쌍떡잎식물 박목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며,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다.
대표적인 여름 제철 과일로 여름을 상징하고 있다.
한 마디로 여름 과일의 대명사. 하지만, 들기가 무겁고, 자르기도 힘든 과일이다.
수박을 다른 말로는 서과(西瓜)라고 하는데, 수박이 서쪽에서 전해져 온 과일이라는 뜻으로 서과라고 했다는 것이다.
수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고려 때라고 한다.
수박은 열매를 식용하는 과채류다.
과일로 분류되는데, 어차피 실생활에서의 채소냐 과일이냐의 구분은 계통분류학적인 고찰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따른 임의적 구분에 불과하다.
당장 친척뻘인 초본성 박과 열매 중에서 호박, 오이 등은 다 채소인데 수박과 참외는 과일 대우를 하는 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단맛 때문에, 혹은 반찬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과일로 분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미국에서는 토마토가 채소냐 과일이냐의 논쟁으로 법정에까지 간 적이 있고 결론은 채소라고 판결이 난 적이 있다.
어쨌건 수박은 시장이나 상점에선 과일로 분류된다.
사회적으로도 과일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박은 대개 사람 머리통보다 큰 열매가 덩굴에 맺히며 수분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과육의 대부분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91% 수분, 6% 당 등)
수분 함량이 높아서 땀을 많이 흘린 여름에 섭취하기에 좋다.
이뇨 작용을 일으켜 밤 중에 빈뇨에 시달리게 하므로 자기 전에 먹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 고속도로 등 화장실을 오랫동안 가지 못하는 일을 앞두고는 절대로 수박을 많이 먹지 않는 게 좋다.
소변 때문에 애먹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에는 수박이 어느 계절에나 나오지만 예전에는 여름철에만 볼 수 있었다.
산골 마을에서는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드물었다.
수박 심을 만한 땅이 있으면 다른 채소를 심어서 식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하는 절박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수박을 밥 대신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반찬을 만들 수도 없는 것이었으므로 수박 장사를 하기 위해서 재배하는 사람 외에는 수박을 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산골에 살면서도 수박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수레에 수박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수박을 파는 장사가 오는데 그때 수박을 맛보곤 하였다.
산골에서는 돈이 없으니 여름에 가지고 있는 것은 하지 무렵에 수확해 놓은 보리밖에 없으므로 보리를 주고 수박을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수박을 샘이나 우물 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서 잘라 먹으면 참 시원했다.
무더운 여름에 땀 뻘뻘 흘린 후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으면 땀도 멎고 갈증도 해소되는 일거양득의 과일이 바로 수박이다.
요즘에 전통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수박을 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서 놀라고 만다.
물론 수박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그만큼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 파는 것이므로 그 가격도 비싸지 않다고 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가격을 주고 사 먹기에는 부담이 갈 수도 있다.
모든 물건이 그렇지만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 마진 때문에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여름에는 수박을 사먹게 된다.
.
수박을 보다가 오래전 그 모습이 떠올랐다.
수박 서리를 하던 그 형들은 지금쯤 노인이 되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 살다 보니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 채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오래전 그 여름의 덜 익은 수박은 평생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첫댓글 수박을 서과(西瓜)라고도 하는군요
지식 충만!!ㅎ
수박에 얽힌 추억담 즐감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인 듯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반세기 정도 지났으니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토마토를 파는 곳은 채소 가게가 아니라 과일 가게인데 왜 채소일까?
그냥 간단하게 따 먹을 수 있으면 과일, 잎사귀를 먹는 것은 채소로 통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미국에서 토마토를 채소냐 과일이냐 논쟁을 하고 법정에 까지 간 이유는
세금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될 듯합니다.
開東 선생님!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데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주 오래 전의 일이 문득 기억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주로 어렷을 때 추억이죠. 저도 수박에 얽힌 추억이 몇 가지 생각납니다.
화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의 일들이 그만큼 깊이 저장되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딸이 손녀를 맡기고 속리산 산행을 갔네요.ㅎㅎ
옆에서 손녀는 아직 꿈나라 여행중 편안한 휴일 맞이하고 있다가 작가님 글을 만났습니다.ㅎ
수박의 얽힌 추억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여름엔 역시 수박이 최고죠.
敍琳선생님!
감사합니다.
손녀와 함께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름도 끝자락인데 아직 늦더위가 조금 남은 듯합니다.
건강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좋은 수필 잘 읽습니다. 수박이 서과라는 말 처음 알게 되었네요 원산지는 아프리카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더위가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수박을 과일로 취급하는 것은 제사상에 오르기 때문에 그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분이 좋고 보기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름엔 수박이 최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