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釣臺)> 대복고(戴復古)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 만사 낚싯대 하나로 마음 비우게 되나니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삼정승을 준다한들 이 강산과 바꿀까
平生誤識劉文叔(평생오식유문숙) 평생에 유문숙 그대를 잘못 보아
惹起虛名滿世間(야기허명만세간) 부질없는 이름 날려 세상에 가득 채웠구나
[분석1]
<平仄普>
► 형식 : 측기식 / <BAaB>식
► 평측 : 全句의 평측보가 근체시와 유사함. 압운된 운목을 확인치 않으면 근체시로 착오할 수 있음.
<기구>萬wàn 事shì 無wú 心xīn 一yī 釣diào 竿gān
●●○○●●◎(B식)
<승구>三sān 公gōng 不bù 換huàn 此cǐ 江jiāng 山shān
○○●●●○◎(A식)
<전구>平píng 生shēng 誤wù 識(알 식shí, 적을 지zhì) 劉liú 文wén 叔shū
○○●●○○●(a식)
<결구>惹rě 起qǐ 虛xū 名míng 滿mǎn 世shì 間jiān
●●○○●●◎(B식)
►韻脚은 (竿 :상평14 寒韻, 山, 間 : 상평15 刪韻)
위 시는 起句의 운각을 상평15운 刪韻으로 아니 밟고 상평14운 寒韻인 竿韻으로 韻脚을 밟았다. 通韻을 밟은 셈이다. 근체시는 一韻到底가 원칙이다. 따라서 통운을 밟았으므로 고시(고체시)시로 봄이 옳다.(아래 글 참조)
◈ [漢詩에서의 通韻]
두개 또는 그 이상을 가리키고 上의 韻部는 相通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만도 相通할 수 있음. 詩를 지을 때 通韻은 互押이라고 할 수 있음. 平水韻에서 一東과 二冬, 四支와 五微, 十四寒과 十五刪 등 通押할 수 있다고 했음. 古體詩는 通韻이 비교적 관대하고 近體詩는엄격함
◈ 압운[ 押韻 ]
○ 한시에 운을 다는 것으로 <강희자전(康熙字典)>에, "詩賦用韻曰押, 押者壓也"라 하였다. 5언시에서는 대강 제2구에 처음 압운하고 이하 격구(隔句)로 압운하며(첫구에 압운하기도 함), 7언시에서는 첫째와 둘째 구에 같이 압운하고 이하 격구로 운을 단다. 고체(古體)나 근체(近體)를 막론하고 압운하지 않는 구말(句末)의 문자(文字)는 운자(韻字)와 동성(同聲)이 아닌 것을 다는 것이 보통이다.
근체는 고체시에 비하여 압운법이 까다로운데 그 다른 점은, ① 고체에는 환운(換韻)할 수 있으나 근체에는 환운이 없다. ② 고체에는 측운(仄韻)도 압운하는데 근체에는 평운(平韻)만을 단다. ③ 고체는 통운(通韻)이 되나 근체에는 안 된다. ④ 고체에서는 동일한 글자를 중복하여 두 번 압운하는 경우가 허락되나 근체는 안 된다. 이 밖에 고체에서는 예외적으로 매구(每句)에 압운하는 예가 있다(連句韻).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 한시(漢詩)를 지을 때 같은 운자(韻字)를 일정한 곳에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운율(韻律)을 조성하는 수법.
압운은 그 위치에 따라 두운(頭韻)․요운(腰韻)․각운(脚韻)으로 종류가 나뉘는데 보통 압운이라 할 때는 각운만을 말한다. 압운하는 경우 고체시(古體詩)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성자(平聲字)를 사용한다. 압운법(押韻法)은 크게 일운도저격(一韻到底格)과 환운격(換韻格)의 두 가지가 있다. 일운도저격은 한 수의 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운의 글자로 압운하는 격식이고, 환운격은 한 수의 시 안에서 다른 운의 글자로 바꾸어 압운하는 격식을 말한다. 근체시의 압운법은 일운도적격을 원칙으로 하고, 고체시는 두 가지가 모두 허용된다. 또한 근체시의 압운은 대체로 평성자를 사용한다. 오언절구(五言絶句)는 승구(承句)와 결구(結句)의 끝에 같은 운의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로 기구(起句)에 압운하는 경우도 있다. 칠언절구(七言絶句)는 기구․승구․결구의 끝을 같은 운자로 통일시킨다.
율시(律詩)는 원칙적으로 매련(每聯)의 둘째 구에 압운하나 수련(首聯)의 첫째 구에 압운하는 것도 허용된다. 고체시의 압운은 근체시보다는 관대하여 평성자 이외에 상성자(上聲字)․거성자(去聲字)․입성자(入聲字)도 쓸 수 있다. 일운도저격은 평성자를 가지고 운을 달아도 좋고, 측성자를 가지고 운을 달아도 좋다. 환운격의 경우는 평성자와 측성자를 서로 바꾸어 씀이 원칙이다. 오언고시(五言古詩)는 일운도저격을 제일격(第一格)으로 삼고 칠언고시(七言古詩)는 환운격을 제일격으로 삼는다. 고체시 중에는 칠언고시체의 매 구에 운을 달게 되는 시체(詩體)가 있는데 이를 백량체(柏梁體)라고 한다. 고체시의 압운법을 근체시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근체시의 압운법이 시의 종류에 따라 엄격하게 지켜지는 단일 방식이라면, 고체시의 압운법은 여러 가지로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심경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2.25)
►釣竿[钓竿 <diàogān(r)>] 낚싯대 (釣낚시 조, 竿장대 간)
►誤識[误识 <wushí>] 착각하다. 잘못 알다.(誤잘못할 오, 識알 식)
►이 시는 엄광(엄자릉)을 위한 헌사이다.
► 유문숙: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
►[퍼옴]
엄광(嚴光)은 본래 성이 장(莊)이었다. 후한 명제(明帝)의 이름인 장(莊)을 피해 엄(嚴)이라 하였다. 자는 자릉(子陵). 엄자릉(嚴子陵) 또는 줄여서 엄릉(嚴陵)이라 부른다.
후한의 광무제 유수(劉秀)와 어릴 적 함께 뛰놀고 공부한 사이였다. 광무제가 왕망(王莽)의 신(新)나라를 제압하고 제위에 오르자 산 속에 숨었다. 광무제가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했더니 양피옷을 입고 못에서 낚시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광무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그는 예전 친구사이처럼 대했고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다. 조정 대신들이 그의 무례함을 들어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청했으나 광무제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광무제와 함께 밤새 얘기를 나누다 함께 잠이 들었는데 광무제의 배 위에 다리를 걸친 채 태연히 자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천문을 관장하는 태사(太史)가 "간밤에 천상을 보았사온데 하나의 객성이 북극성을 범했습니다. 별일 없으십니까?"하고 광무제에게 물었다. 광무제는 웃으며 "나의 친구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라 말했다.
광무제가 그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의 벼슬을 내렸으나 엄광은 벼슬을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엄광이 은둔한 곳의 지명(地名)을 엄릉산(嚴陵山), 그곳 여울을 엄릉뢰(嚴陵瀨) 또는 엄자뢰(嚴子瀨)라 한다.
동려현(桐廬)현에서부터 오잠(於潛)까지 걸쳐 있는 16뢰(瀨) 가운데 두 번째 여울이다. 그가 낚시질하던 곳은 엄릉조대(嚴陵釣臺)라 부른다.
훗날 송나라 때 시인 대복고(戴復古)가 이런 엄광의 기상을 시로 읊으니 <조대(釣臺)>다. 대복고(戴復古)가 <조대(釣臺)>에서 그의 절개를 높이 칭송했지만 어찌 그뿐이겠는가. 절의(節義)를 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엄광(嚴光)을 으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례로 명(明)나라 중기의 문인 나기(羅玘)는 그의 <서계어락설(西溪漁樂說)>에서 "순(舜)임금은 왕위에 오르기 전 뇌택(雷澤)에서, 주나라 때 여상(呂尙)은 문왕(文王)을 만나기 전까지 위수(渭水)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나오고 말았다. 큰일을 위하여 그 즐거움을 끝내 기리지 못했다. 최후까지 그 즐거움을 놓지 않은 채 순절한 사람은 고금에 꼭 한 사람 엄릉(嚴陵)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명(明)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朱元璋/高皇帝)은 "내가 천하의 죄인을 살펴보건대 죄인으로서 엄광보다 더한 놈이 없다"며 그의 처신을 일축했다. 신하의 견지에서 본 엄광과, 황제의 관점에서 본 엄광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랐던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포의(布衣)를 고집한 엄광은 제왕에게 복종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고한 선비의 전형으로 널리 칭송 받았다. 광무제는 '방자한' 엄광을 관대히 대하고 도리어 크게 예우함으로써 도량이 넓고 현명한 군주라고 인상을 남겼다.
►대복고(戴復古 , 1167 ~ 미상), 남송 태주(台州) 황암(黃巖) 사람. 사(詞) 작가. 저서에 『석병신어(石屛新語)』와 『석병집(石屛集)』, 『석병사(石屛詞)』가 있다.
►논시십절(論詩十絕) - 대복고(戴復古)
대복고의 논시십절중 네번째. 손과정의 서보에서 초서로 집자한 한시이다.


논시십절(論詩十絕) - 대복고(戴復古)
논시십절(論詩十絕) - 대복고(戴復古)
意匠如神變化生(의장여신변화생) / 꾸밈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변화가 일어나고
筆端有力任縱橫(필단유력임종횡) / 붓끝이 힘이 있어 종횡으로 내달린다.
須教自我胸中出(수교자아흉중출) / 모름지기 스스로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와야지
切忌隨人腳後行(절기수인각후행) / 남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건 결단코 꺼린다.
논시십절(論詩十絕) 전편 소개
1.
文章隨世作低昻(문장수세작저앙) / 문장이란 시대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
變盡風騷到晩唐(변진풍소도만당) / 시경초사로부터 시작하여 만당에 이르렀다
擧世吟哦推李杜(거세음아추이두) / 온 세상 사람들 이백 두보만 읊조리지만
時人不識有陳黃(시인불식유진황) / 진사도와 황정견을 알지 못한다
2.
古今胸次浩江河(고금흉차호강하) / 고금에 마음 속 생각이 강하처럼 넓고
才比諸公十倍過(재비제공십배과) / 재주는 다른 이보다 열 배도 더 뛰어나다
時把文章供戱諧(시파문장공희해) / 때로는 문장을 우스개로 삼았으니
不知此體誤認多(부지차체오인다) / 문체로 사람들을 그르침이 매우 많았다
3.
曾向吟邊問古人(증향음변문고인) / 일찍이 시단에서 옛사람에게 물으니
詩家氣象貴雄渾(시가기상귀웅혼) / 시인의 기상은 웅혼함을 귀하게 여긴다
雕鎪太過傷於巧(조수태과상어교) / 깎고 다듬기 지나치면 기교로 해치고
朴拙惟宜怕近村(박졸유의파근촌) / 질박 졸속은 의당히 촌스러워질까 두렵다
4.
意匠如神變化生(의장여신변화생) / 구상이 신묘하면 변화가 생겨나고
筆端有功任縱橫(필단유공임종횡) / 붓 끝에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須敎自我胸中出(수교자아흉중출) / 오로지 가슴 속에서 우러나게 해야 하나니
切忌隨人脚後行(절기수인각후행) / 남이 간 길을 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
5.
陶寫性情爲我事(도사성정위아사) / 성정을 묘사함을 나의 일로 삼아야지
留連光景等兒嬉(유연광경등아희) / 보이는 경치에만 머무는 것은 아이들 짓
錦囊言語雖氣絶(금낭언어수기절) / 비단같은 시어는 기절하다고 해도
不是人間有用詩(불시인간유용시) / 세상에 쓸모 있는 시는 아니니라
6.
飄零憂國杜陵老(표령우국두릉로) / 떠돌며 나라 근심하니 두릉의 노인이요
感寓傷時陳子昻(감우상시진자앙) / 감우시로 세상을 슬퍼했으니 진자앙이로다
近日不聞秋鶴唳(근일불문추학려) / 근일에 학 우는 소리 들리지 않고
亂蟬無數噪斜陽(난선무수조사양) / 어지러이 매미만 지는 해 보며 울어댄다
7.
欲參詩律似參禪(욕참시률사참선) / 시율을 탐구하려면 참선하듯 해야하니
妙趣不由文字傳(묘취불유문자전) / 묘취는 문자의 전달에 있지 않도다
箇裏稍關心有悟(개리초관심유오) / 그속에 갇혀 마음에 깨달음이 생겨나면
發爲言句自超然(발위언구자초연) / 흥취 솟아 올라 자연히 초연해진다
8.
詩本無形在窈冥(시본무형재요명) / 시란 본래 형태 없이 아득한 곳이 있어
網羅天地運吟情(망라천지운음정) / 천지를 망라하여 읊는 마음을 움직인다
有時忽得驚人句(유시홀득경인구) / 때로 홀연히 놀라운 싯구를 얻지만
費盡心機做不成(비진심기주불성) / 심기를 다써도 짓지 못할 때도 있다
9.
作詩不如作文比(작시불여작문비) / 시 짓기는 문장 짓기와 비교하기 어려워
以韻成章怕韻虛(이운성장파운허) / 운 맞춰 한 구 짓고도 운이 두려워진다
押得韻來如砥柱(압득운래여지주) / 운을 단 것이 지주산과 같아져서
動移不得見工夫(동이부득견공부) / 옮길래도 옮겨지지 않아야 제대로 된다
10.
草就篇章只等閒(초취편장지등한) / 시상 떠올리기는 아무나 하는 일
作詩容易改詩難(작시용이개시난) / 시를 짓기는 쉬우나 고치기는 어려워라
玉經雕琢方成器(옥경조탁방성기) / 옥은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그릇이 되는 법
句要豊腴字要安(구요풍유자요안) / 시구는 풍부하고 글자는 정확히 써야 한다
[출처]논시십절(論詩十絕) - 대복고(戴復古)|작성자대교약졸
<2014.10. 15 孤松 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