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 4월 9일, 마태 28, 1-10
“평안하냐?”(마태 28,9)
+알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세상은 죽음을 물리친 예수님으로 인해서 죽음의 세상이 아니라 부활의 세상, 생명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마태28,2-4.7)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려 달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말씀이 “평안하냐?”입니다.
이 말씀은 “평화가 그대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죽음으로 평화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예수님은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은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인간과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어낸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닙니다. 하늘이 주는 평화입니다. 육체적인 쾌락이나 물질적인 만족감으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부활의 평화입니다.
부활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하고,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1코린 15,50-5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세상이 주는 평화와 주님께서 주는 평화가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무력으로 균형을 맞추는 평화이지만 근본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과 힘이 겨루는 상태인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무력과 정복, 다양한 형태의 제재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의 전략을 따르는 평화가 아닙니다. 세상의 전략을 따르는 이 평화는 사실 전쟁 중에 갖는 휴전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는 온유함과 십자가의 길을 따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이들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악과 죄와 죽음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의 평화는 타협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데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온유하고 담대한 평화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며칠 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칩니다. 겁에 질리고 실망한 군중은 예수님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무력에 의한 평화도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무기는 기도, 온유한 사랑, 용서, 조건 없는 이웃 사랑, 모든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평화가 세상에 도래하는 방식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사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짓누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평화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부활의 기쁨인 평화를 누리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몸과 마음에 평화가 함께하면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이 함께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져 좋은 생각, 놀라운 생각이 떠오르고 건강한 삶을 삽니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싸우고 짜증이 나는데 인간관계가 좋아질 리가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해야 서로를 위해줄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전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평화로운 자(peaceful man)이며,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이다.”
주님 부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화가 언제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 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알레루야 !
신부님 부활을축하드립니다 수녀님 부활축하드립니다
벤드와카페가족모두 부활축하드립니다
그분께서는 죽은이들 가운데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이제여러분보다 먼저 갈리래아로가실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될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말이다
(마태28,2-4,7)
마음이평화로우면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부활의기쁨인 평화를누리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 평안하냐 ? "
(마태28,9)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무태성당 갈릴래아에서 그분을 뵙게될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그분은 되살아 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
+ 찬미예수님
"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입게 될 때에는
"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갔느냐 ? " 고 한 성서 말씀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고린토15/54~55)"
고 한 말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움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요한 14/ 27) "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 할때 어떤 두려움이나
고민도 털어 버리고 평화로운
마음이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저에게 " 평안 하냐? 하고
물으시면서 부활 하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해 주고
계심에 감사 드리면서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평화로운 자,
평화를 만드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 수
있을 은총을 간구 드립니다. 아멘.
신부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