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이 결정되고 난 뒤 가장 감격에 겨웠던 사람은 바로 조규남 감독이었다. e스포츠계에 몸 담은 지도 6년째. 사실 조 감독도 팀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기업의 지원 없이 팀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게임에 대한 열정이 뚜렷하고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선수들을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 감독에게는 지난 2월이 고비였다. 창단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출 수 없다면 선수들이 원하는 팀으로 보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작심하고 여러 기업과 접촉했다. 그렇게 접촉한 기업만해도 20개가 넘는다. CJ그룹으로 창단이 결정된 것도 조 감독의 능력 덕분이다. CJ그룹에서는 “GO팀이 아니면 창단 검토 자체가 필요 없다”고 공표했을 정도다. 창단이 결정되기까지 조 감독도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기획사 조규남 사장 게임단을 만들다
조규남 감독은 취미로 게임을 즐긴 기획사 사장이었다. 각종 마케팅 행사를 담당하고, 이벤트를 기획, 진행하는 업체였다.
취미로 게임을 즐기던 조 감독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김동우(현 GO팀 코치)와 장일석(KBK 우승자, Love.Star로 알려져 있음) 등의 선수들을 끌어 모아 프로슈머라는 팀을 운영했다. 2001년 김동준(현 MBC게임 해설위원)을 영입, 선수를 확보했고 그 해 9월에는 게임아이 이노츠와 계약, 본격적으로 e스포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기획사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게임아이의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하는 활동도 같이 했다.
당시 조 감독은 여의도에 사무실을 지원 받았지만 게임아이의 부도로 인해 2002년 2월 서울 장안동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야 했다. 당시 회사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에 조 감독의 호주머니를 털어 팀을 운영했다. 조 감독은 사비를 털어 운영하면서도 선수들이 필요한 것은 아낌 없이 지원하는 스타일로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첫 스폰서 슈마일렉트론
GO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것도 이때부터다. 장안동 임시 사무실에서 선수들과 상의한 끝에 ‘위대한 하나(Greatest One)’라는 뜻의 GO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없었지만 선수들과 함께하는 감독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선수들이 조 감독을 찾아왔다. 최인규가 그랬고, 김정민이 그랬다.
당시 50개가 넘었던 팀들은 하나씩 무너졌다. 그 많던 팀이 10개로 줄었다. 그 와중에도 조 감독은 버틸 수 있었다. 임시 사무실에서 6개월을 버틴 뒤 조 감독은 든든한 구원투수를 만나게 됐다. 바로 슈마 일렉트론이다. 당시 팀 운영비를 충당하기 어려웠을 때 슈마 일렉트론과 후원계약을 맺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다. 이 때 조 감독은 선수들을 이끌고 서울 구로 지역에 터를 잡았다. 이때가 2002년 9월이다.
데뷔부터 주목받은 GO
GO가 주목을 받은 때는 2002년부터. 방송으로 GO팀을 접한 팬들에게는 2003년에야 GO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2002년 중순부터 GO팀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다. 소속한 선수들이 모두 쟁쟁한 선수라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스타리그와 MSL을 제외하면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가 없었다. 오프라인 대회를 꾸준히 열었던 게임아이가 부도난 뒤 오프라인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당시 e스포츠계에 아낌 없는 투자를 해 온 KTF측에서는 오프라인 대회를 기획했다. 바로 나지트배다.
나지트배는 2002년 7월 1회 대회를 시작으로 2주마다 총 상금 600만원을 걸었다. 나지트배는 총 8번 열렸다. 이 중 GO는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GO의 독주였다. 강 민이 두 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했고 이재훈도 두 번의 우승을 거머쥐었고, 김정민도 우승 1회를 기록하는 등 날아다녔다. GO 이외에 입상자는 박용욱(2차 대회 우승), 조용호(6차 대회 우승), 강도경(7차 대회 우승)이 전부였다.
이 대회 이후 GO라는 팀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각인됐다. 이를 팬들에게까지 각인 시킨 계기는 단체전이다. GO는 <계몽사배 팀리그>와 <라이프존 팀리그>를 연달아 우승하며 팬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었다. 이어 <피망컵 프로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다. 당시 조규남 감독은 하루 차이로 SK텔레콤(당시 동양 오리온) 주 훈 감독에게 팀 그랜드슬램(스타리그-MSL-팀리그-프로리그 우승) 기록을 넘겨주기도 했다.
GO의 '버팀목' 서지훈
최고의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창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슈마 일렉트론이 부도가 나면서 지원도 끊어졌다. 거기에 성적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조 감독은 괴로웠다. 같이 고생하는 처지였지만 선수들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 감독은 2004년부터 이적을 원하는 선수를 각 팀에 보내줬다. 가정 형편의 어려움을 토로한 선수도 있었고, 타 팀으로의 이적을 강력하게 원했던 선수도 있었다. 선수가 잘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서지훈은 끝까지 조 감독의 옆에 있었다. 원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한사코 거절해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했다. 조 감독이 서지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하는 이야기는 ‘고마운 녀석’이다. 창단될 때까지도 서지훈의 존재는 조 감독에게 큰 힘이 돼 줬다.
내 돈은 없다
GO는 선수들의 상금 가운데 30%를 떼어 팀 운영비로 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GO가 스폰서가 없는 기간 동안 벌어들인 상금은 2억원이 훌쩍 넘는다. 조 감독은 이 중에서 30%를 떼 팀 운영에 전부 쏟아 부었다. 선수들은 “감독님이 가져도 된다”고 말했지만 조 감독은 “그럴 수 없다”며 팀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했다.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 감독은 팀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사치를 단 한번도 부린 적이 없다. 선수들을 위한 유니폼 제작과 단체 여행 등에 아낌 없이 투자했다. 여느 기업팀보다 훌륭하게 먹이고, 입히는 등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드시 창단한다
CJ와 창단하기 까지 GO는 수십 개의 기업에서 창단 제의를 받았다. 서지훈에게 1억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하고 조 감독도 동일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곳도 수두룩했고, 팀 인수 비용으로 5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하겠다던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다른 선수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조 감독도 올해가 고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2월 배수진을 쳤다. ‘1개월 안에 후원 계약 이야기가 없으면 팀을 접자’고. 마음을 독하게 먹은 덕분인지 예전보다 많은 기업을 만났다. 지난 해 20개의 기업에게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단 1개월 사이에 7개 기업과 인수 제안을 논의하며 창단에 사력을 다 했던 것. 조 감독은 “정말 2월이 제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GO는 CJ그룹과 S그룹을 놓고 마지막 조율에 나섰고, 선수들과의 회의를 거쳐 CJ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 감독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이 팀을 인수할 때 비기업팀 구단주인 감독에게 지급하는 인수금이 S그룹이 1억원 가량 많이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CJ그룹을 선택한 것. 이유는 CJ그룹이 선수들의 연봉을 더 많이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CJ그룹 파격 지원 약속
팀 인수 창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당시 조규남 감독은 CJ그룹과 수 차례나 만나 회의를 했다. 그 중 가장 민감했던 문제는 조 감독에게 지급할 연봉 문제. CJ그룹에서는 “조규남 감독의 위치와 능력을 생각하면 게임팀 감독 중 가장 많은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며 2억에 달하는 금액을 불렀다. 그러나 오히려 조 감독이 말렸다. 올해는 자신보다 선수들을 챙겨달라는 이유에서다. 조 감독은 계약 첫해에 자신이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대신 조 감독은 선수들의 연봉을 책정할 때 조금 더 신경 써 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간 고생한 선수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금액을 쥐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CJ그룹측에서도 조 감독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숙소에 대해서도 파격 지원을 약속했다. 장기 계약할 곳이 마땅치 않아 방배동 지역의 150평 정도 되는 빌라와 1년 계약을 했다. CJ그룹측에서는 1년이 지난 뒤 더 넓고 편안한 곳으로 이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차량도 최고급 밴을 지원해 선수들의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숙소에 들어갈 부대시설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조규남 감독은 “금액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되는 무제한 지원을 약속 받았다”며 “CJ그룹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만큼 선수들과 함께 최고의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