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2021년 3월 18일(목), 미세먼지 많음,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마을 외
산수유(山茱萸, Cornus officinalis Siebold & Zucc.)는 층층나무과(Cornaceae) 낙엽활엽 소교목이다. 일본명은
산슈유(サンシュユ, 山茱萸)이며, 영명은 Japanese Cornelian Cherry, Japanese Cornel이다. 중국명은 샨주위(山
茱萸)이며 산채황(山菜黃), 실조아수(實棗兒樹), 촉산조(蜀酸棗), 촉조(蜀棗), 홍조피(紅棗皮), 석조(石棗), 육조(肉
棗) 등으로도 부른다.
우리나라 이름인 산수유가 혹시 일본명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
반대다. 우리나라 산수유가 그간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식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20년대 광릉지
역에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산수유 거목 두세 그루를 발견하였으며, 그 뒤 우리나라 학자들이 우리나라
가 자생지임을 확인하였다. 일본에는 1722년에 우리나라 어락원을 통해 들어가 지금은 사방에 퍼졌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 때 다음과 같이 대나무 숲을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왕위에 오른 후에 왕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후나 궁 안의 사람들 모두 알지 못했고 오로지
복두장(?頭匠)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장차 죽
으려 할 때 도림사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향해 외치기를,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하였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것
이 싫어서 이내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단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났
다.[도림사는 예전의 입도림 주변에 있었다]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頭匠一人知之 然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唱云 吾君耳如驢耳 其後風吹 則竹聲云 吾君耳如驢耳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 則但聲云 吾君耳長
[道林寺 舊在入都林邊])
산수유의 학명은 코르누스 오피키날리스(Cornus officinalis)이다. 여기에서 속명 코르누스는 각(角)이라는 뜻의
라틴 어 코르누(cornu)에서 유래되었으며, 종소명 오피키날리스는 약용한다는 뜻이다. 산수유의 약효로는 보간
(補肝), 보신(補腎), 정기수렴(精氣收斂), 허탈(虛脫)을 고삽(固澁)하는 효능이 있다. 요슬두통(腰膝鈍痛), 현운(眩
暈), 이명(耳鳴), 유정(遺精), 빈뇨(頻尿), 간허한열(肝虛寒熱), 허한부지(虛汗不止), 신요산맥(心搖散脈), 구사(久
瀉)를 치료한다.
산수유 학명의 Siebold는 독일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 (Philipp Franz von Siebold,
1796~1866)이다. 그는 일본에 1823년부터 1829년까지 7년간 체류하면서 일본인들에게 서양 의학을 처음 가
르친 유럽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859년에 재입국하여 1862년까지 머물렀다. 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의학
을 전수하는 외에도 일본의 식물과 동물 고유종을 연구하였다.
산수유 영명에 일본이 들어간 것은 그가 일본에서 산수유 연구에 활약한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일본의 쿠
스모토 타키(楠本滝, 1807~1865)와 결혼하여(일설에는 동거했다고도 한다) 딸 쿠스모토 이네(楠本 稲,
1827~1903)를 낳았으며, 이네는 아버지에게 의학을 배워 일본 최초의 여의사가 되고, 외손녀 쿠스모토 타카코
는 은하철도 999 메텔의 모델이 된다. 그는 일본인들이 매우 사랑하는 수국(Hydrangea otaksa Siebold &
Zucc.)에 그의 처 이름인 Otaksa(그는 아내를 Otakusa로 불렀다)로 학명을 붙이기도 했다.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에는 수령 300~400년으로 추정되는 현존 가장 오래된 산수유가 있다. 계천리 산수유의
키는 16m, 뿌리목 둘레는 4.4m이다. 한국에서 산수유가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
위마을이다. 지금부터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살던 처녀가 지리산 기슭의 이 마을로 시집을 올 때 가져와
서 심었다고 한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낙향한 김안국(金安國), 강은(姜濦), 오경(吳慶),
엄용순(嚴用順), 성담령(成聃齡), 임내신(任鼐臣) 등 육현이 은일(隱逸)하면서 심었으며, 봄에는 선비의 상징인
노란 꽃, 여름에는 향기 나는 잎, 가을에는 자수정 같은 열매, 겨울에는 마디마디 아름다운 눈꽃나무로 상징대
고 있으며 …….(‘산수유 始春木’ 비에서)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마을은 예전과 다르게 주차장을 넓게 조성하였으나 코로나 19의 방역을 위해 폐쇄하고
아울러 마을로 들어가는 차량도 통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간 사람들이 그냥 돌아갈 리는 만무하고 마
을 앞 도로 갓길에 빼곡하게 주차하고 있다. 아예 차량통제원은 농로 저쪽에 주차하시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도립리 산수유마을 가기 1.7km 전에 반룡송(蟠龍松)이 있다. 용이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다 하여
반룡송이라 한다. 산수유마을을 구경하고 뒤돌아 가보았다. 도로에 접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농로 오른쪽으
로 100m쯤 가면 반룡송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81호(1996.12.30.지정)다. 안내판의 소개다.
“이 소나무는 표피가 용 비늘의 붉은색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마다 움직이는 듯한 용트림이 신비스러우며 틀
어 올린 나무형태, 사방으로 휘어진 가지 등이 특이하다. 신라 말 도선이 명당을 찾아 이곳을 비롯해 함흥, 서
울, 강원도, 계룡산에 가가가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라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이 반룡송은 수령 500년 정도이며, 나무의 높이는 4.2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1.83m이다. 지상 2m 정도에
서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갈라졌다. 신라 말 도선(道詵, 827~898)이 심었다면 수령이 1,200년 가까이 되어야 하
는데 전설이 그렇다는 얘기인가 보다.
모처럼 이천에 왔으니 점심으로 이천쌀밥을 먹으려고 차량통제원에게 알맞은 음식점을 추천해달고 했더니 내
비게이션에 이천쌀밥집을 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전국에 걸쳐 수백 개가 나올 텐데 거기서 어떻게 고르느
냐고 하자 이천 외곽의 ‘임금님쌀밥집’을 알려준다. 서울 가는 국도변에 있어 들렀다.
2인 이상 입장 가능, 임금님 정식은 1인분에 52,000원, 가장 가격이 낮은 쌀밥정식이 1인분에 13,000원이다. 주
류는 소주, 맥주가 각각 4,000원, 막걸리가 5,000원이다. 서울의 우리 동네 음식점 막걸리가 같은 용량 750ml 1
병에 3,000원인데 왜 이렇게 비싼지 물었다. 이천 쌀로 빚은 막걸리라서 그렇단다. 1병 주문했다. 이천 쌀 함량
10%이다.
반룡송의 수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를 가지 않고 국도로 오다가 퇴촌의 생태습지공원을 들렀다. 경안천 둑방에서
강안의 운길산과 무갑산을 바라보고 싶어서다.
멀리 가운데 희미한 산이 운길산
멀리 가운데가 무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