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요? 우리는 믿음을 생각할 때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나, 그 간절함의 정도로 믿음을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간절하냐에 따라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움직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움식이신 그것, 하나님께서 이미 공급해 놓으신 그것, 즉 은혜를 잘 깨달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 은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의 내용을 모를 때 믿음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앞뒤 문맥을 함께 보면 이렇습니다.
(롬 10: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쉽게 요약하면 좋은 소식을 전했는데 그것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 소식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입니다(17절). 그것이 복음이고 은혜라서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 아닌 은혜로 이미 구원을 제공해 놓으셨다는 복된 소식, 이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은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베푸실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간절함을 얼마만큼 하나님께 어필하냐에 따라 (기도, 금식, 교회 출석, 교회 봉사, 헌금, 길거리 전도 등)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래, 그 정도면 됐다."하시면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새 언약이 아니며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은혜와 믿음에 대한 혼란에서 빠져나와 성경적으로 생각을 새롭게 해 나가다 보니, 전에는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2008년에 새 언약의 계시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된 은혜와 그것을 믿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 지금도 매일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이 식상해졌다거나 감당이 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 진리를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마 식상해졌다는 것은 안 믿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익싸이팅한 일이니까요!
할렐루야!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깨달아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계시로 충만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