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 쯤이면, 양가 부모님 단풍 구경 시켜드리느라
김장 도와드리느라, 시아버님 생신 상 차리느라
바쁜 가을을 보냅니다.
(바쁘고 아프고, 바쁘고 아프고, 바쁘고 아프고~
이것이 제 라이프 패턴입니다. -_-:;)
저번 주엔 셈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경기도 광주의 한 장어구이 집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가격 좋고, 크기 좋은 장어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쾌청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지신 부모님께서 팔당 댐 근처도 둘러보자고 하셔서
시원한 드라이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주왕산에 갔습니다.
이 일정 때문에 저는 국민의 숲길도 신청할 수 없었고,
다음 주에 가는 주왕산 길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간혹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하면서 살아야하나....’ 생각 하다가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은 앞으로도 많을테지...
부모님 모두 건강하실 때 한번이라도 더 모시고 다녀야지...’ 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으로 들곤 합니다.
저희 아버님은 올해 82세.
일주일에 한 번, 청송군 진보읍에 있는 한 병원에서 1박2일 진료를 하고 올라오시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60세까지는 입원실을 갖춘 병원을 꾸려 오시다가
68세까지는 서울에서 월급 의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의사가 모자란 지방의 노인 병원에서 주1~2회 근무하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올해 청송에 대명콘도가 오픈했다고 해서
겸사겸사 이번 여행지는 청송이 되었습니다.
일년에 두 세번,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면... 구성은 이렇습니다.
시어머님을 위해서는 맛 집 몇 군데를 알아 가면 되고,
시아버님을 위해서는 그 지역 역사 속 인물의 생가라든가, 유적지 등을 알아 가면 됩니다.
저희 부부가 20년 넘게 주기적으로 곧잘 해 오다보니,
이젠 여행 일정이나 메뉴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따라 다니면서 만족해 하십니다.
이런 패턴의 여행만 해 왔는데,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출발 하자마자 아버님께서 1박2일 간의 일정을 세세히 알려주시기 시작합니다.
“일단 진보에 도착해서 우리 병원식구들이 자주 가는 한우 집에서 고기를 먹고,
거기서 20분 떨어진 곳에 있는 송소 고택으로 갈 거야. 그곳은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내일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어쩌구 저쩌구~”
'어? 뭐지... 가,,,가이드 같아.'
낯선 광경에 약간 놀랐습니다.
아들 내외가 아버님 なわばり (나와바리/ 관할권, 세력권) 로 온다고
코스 및 메뉴를 혼자서 완벽하게 기획하셨던 것입니다.
진작 여러 번 가 보셨던 곳이라 흥미도 없으실텐데
저희들이 다 돌아볼 수 있도록 한쪽 벤치에서 조용히 기다리시다가
작고 낡은 수첩을 꺼내어 전화를 거십니다.
“지난번 갔을 때 제가 얘기 했었죠? 가족들이랑 다시 온다고... 내일 12시쯤~~~~”
(손수 예약을 하시네... 저거 내가 길사랑에서 하던건데....?')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아침 일찍 두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주왕산 국립공원을 두 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평소 약간의 언덕만 있어도 숨 차 하시던 어머님도
오늘은 길이 좋아서인지,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고맙게도 참 잘 걸으셨습니다.
이후, 아버님이 어제 예약까지 하시고 저희를 데려 간 식당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작고 깔끔한 한옥 한정식집이였습니다.
제일 비싸다는 한정식이 2만원밖에 안한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아... 글쎄 이렇게 나옵니다.
(중간 상차림입니다. 이후로도 쭉~~~~)
한옥에 혹하고, 음식 가짓수에 놀라고, 맛에 반하고,
다시 한 번 아버님의 마음에 감동받은~
그런 식사 시간 이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근무 하셔야 하는 아버님을 병원에 내려드리고,
저희 세 명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식후 운전으로 졸려하는 신랑을 대신해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고단했을 두 사람은 제가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졸기 시작하더군요.
적막 속에서 혼자 막히는 길을 운전하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한번 여행으로 왔다가는데도 이렇게 멀고 지루한데,
우리 아버님은 어떻게 이 길을 10년 넘게 다니고 계실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침에 주왕산 길을 걸으시며 그러시더군요.
“이제 2년만 더 근무하고 그만할거야~”
“ 그러세요. 아버님. 50년 넘게 한 평생 열심히 하셨잖아요. 이제 쉬셔도 돼요~” 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저... 이 말씀, 68세부터 2년에 한 번씩 들어왔던 얘기입니다.
일이 있어서 더 건강하신건지
이 나이에도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우신건지
암튼 저희 아버님은 못 그만 두실 것 같습니다.
여름 겨울 구별 없이 한 주도 빠짐없이 일요일마다 둘레길을 걸으시고,
틈틈이 골프 치시고, 국내외 여행 다니시고~
그런 체력과 열정은, 어쩌면 저 일터에서 나오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지독히도 막히는 길을 운전하느라 지쳐버린 몸을 뉘윈 채
혼자 당직실에서 뉴스쯤 보고 계실 아버님께
‘고맙다고, 저희를 위해 이번 여행을 꼼꼼히 준비하신 것도,
건강하신 것도 모두모두 고맙다’고 문자를 드렸습니다.
부부 관계, 고부 관계, 부자 관계, 친구 관계, 동료 관계.
행복한 마음도, 불행한 마음도
모두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내 뱃 속 편한 것>
이것이 제가 내린 '주관적 행복의 정의'입니다.
이것대로라면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아버님을 따라 오른 주왕산에서
새삼 많은 것을 다시 느낀....
그런 여행이였습니다.
첫댓글 가족,사랑,배려,행복,감동.............
윤앤현님~
정말 행복한 사람 맞아요~~
저도 내일은 어머님 뵈러 가야겠네요~ 윤앤현님은 행복한 분 맞습니다~^^
글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다 멈추고, 또 멈추고...............
웃다가 울다가.....
음...............................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 바르고 고운 사람,
울 윤앤현님과 같이 걷고,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나이트 펄슨 얼레지...
윤앤현님의 잔잔한 감동의 글을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평산신씨 잘자란 규수의 고운
마음씨를 엿볼 수 있어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도 오랜만에 운전대 잡고
나이 많으신 지인들 위로차
우리의 종씨... 율곡을 키운
신사임당을 뵙고 왔지요
돗자리 깔고 조용한 한낮을
보내고...
호사한 단풍이 아직도 선합니다
님의 수필 한편 읽으니...
저도 할일을 다한것 같아
평안한 꿈나라 갑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윤앤현님 ♡
무언가에 허기지다 싶을 때 즈음...
사람 사는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앤님의 글이 올라와 있네요!ㅎ
반갑게 읽고 또 읽어 봅니다
<관계 속에서 내 뱃 속 편한 것>...
앤님의 주관적 행복이라지만 어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 해 주고 있지요.....
실은 저두 일본 여행을 마치며 친정엄마 생각이 스쳤답니다ㅎ
엄마는 그시절 꿈도 못 꾸셨다고...저 더러 당신처럼 살지 말고 세상 구경 많이하라고...
속으로 반성문 썻지요ㅎ
다행인건 닥터BK라는 게르마늄 선물을 챙겨드리길 정말 잘 했지 싶었습니다ㅋ
노인정 가서 자랑 하셨다네요ㅎ
좋은 사람인 윤앤현님이 곁에 계셔서 저 또한 행복합니다
어느새 인복 많아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잔잔하면서도,감동적인 글에 많은것을 느끼게하는 글이네요.
아버님이그 먼길을 오랜 세월동안 봉사하시는것도 대단하시고,그 마음을 헤아리시는 며느님도 훌륭하십니다.
앞으로도 82세 가이드이신,특히 봉사와 인생의 멋진 가이드이신 윤앤현님의 아버님의 건강과 가족의 화목이 끊임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새벽을 엽니다.
한편으로는 대단히 부럽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이런 훈훈한 글을 읽으니 저의 마음도 훨씬 밝아지는듯하여 좋습니다.
한 편의 멋진 수필을 읽었습니다.
저도 92세의 장모님을 한 달에 한 번 모시는데 아직도 차 타시는 걸 좋아하셔서 부산까지 갔다와도 피곤한 줄 모르시는 분입니다.
이 깊어가는 가을,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을 읽으며 새벽 첫 차 타고 곤지암 화담숲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모님께서 건강하셔서 부산까지 다녀오신다니 복이 많으십니다.
저도 장모님이 94세인데,시골에 계시다가 겨울에 몇달은 저의 집에계시다 갑니다.
안방은 장모님이,건너방에 86세 어머니를 모시고있어 가정양로원이지요.
ㅋ!
윤&현 님의 훈훈한 글에
한기돌던 가슴이 따뜻하게 뎁혀집니다.
좋은 볕 한오라기도 자신보다는 자식들에게 먼저 양보하려 하시던 그리운 어무이 생각도 나구요^^
또 한켠으론,
달달한 행복을 맛보며
아침 창을 활짝 열어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이 행복 쭈욱 이어지시길 바래봅니다.
어제와 오늘..비슷한 이야기를 두번 접합니다
103세로 별세한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1913~2015) 박사.
그가 95세 되던 해 쓴 수기 하나..
사회적 존경을 받다가 65세에 당당하게 은퇴했지만
이후 삶에 대한 계획이 없었음을 후회하며
95세에 어학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글
두번째 윤앤헌님의 글~82세 가이드
윤앤현님~
참..잘했어요,좋아요를 이럴때 하는거지요~^^
난 주머니안에 작은 카메라,등짝에 배낭메고 산으로 들로 언제까지 헤메구 다닐지...
나이가 어리다고 스승이 될수는 없다라는 편견은 진즉 버렸지요.
윤&현님은 작은듯 크게 큰듯 작게 늘 사람 냄새나는 곰삭은 어른 같더이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주는 감동은 두배세배 아니 열배 그 이상이지요~
세상이 따뜻하다는걸 늘 알려주는 그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자랑입니다.
윤앤현님~~~^^
차암 행복하시네요. 윤앤현님마음도 가족분들도 너무 따뜻하고 좋습니다. 같은 길사랑이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부모님과의 배려깊은 유대관계 부러워요. 따뜻한글 잘봤습니다 ~~
따뜻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주고 받으니 이심전심 하나가 되시네요..
글을 읽는 내내 그마음들이 전해져 제 마음도 녹아져 갑니다..
훈훈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참 예쁘게 사시는 윤앤현님~~^^
항상 남을 배려하고 따듯한 맘으로 가득하신 윤앤현님~
훈훈한 효의 실천에 나 자신을 돌아 보며 부모님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이런 좋은 분과 같이 해 행복하고 가슴깊이 따듯해져 옴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진솔함이 묻어나는 좋은글 한편 부러워하며 잘 읽었습니다 오래토록 부모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자연의 법칙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뿌리고 가꾸면 반드시 추수하게 됩니다~
윤앤현님은 행복한 사람 맞고요 맞습니다~~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이제서야 접하네요~
윤앤현님!!! 진즉에 효부요~ 효녀~인줄은 알았지만, 오늘 또다시 감동이 밀려오네요
며느님의 효성에 시아버님께서 이번엔 며느님에게 사랑을 흠뻑 나누어 주셨나봅니다~
윤앤현님^
언제나 더도말고~덜도말고~
지금 이맘으로....
윤&현님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걷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윤앤현님~~
잔잔한 한편의 수필이네요.
어떠한 미사여구, 형용사를 쓸까 살짝 고민두해봅니다
참 이쁘게 잘~ 사시는분 이구나.... 행복이 묻어납니다...
이 가을 지금은 계시지않는 부모님 생각을 많이하게됩니다....
삶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한편의 시같은 일상을 적으신 글로 감동이 전해지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좀 더 진솔히 또 함께 잘 어울리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게하네요
아름다운 가족과 또 지금의 윤앤현님의 향기나는 모습으로 함께 해 주심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