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샬롬)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복하라“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
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 29:11~14)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기독교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얻는다.’(요 3:16)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과 태도가 분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시다
믿음에는 경건한 생활이 있고 행동과 희생과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생활 전부를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위로를 받고 그분과 관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이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깊이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 알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상대하려 합니다. 이로 인해 충만한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간의 이해가 부족한 것을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것을 무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는 보증으로 예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또 우리의 범사를 살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값으로 정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부자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신앙생활 하기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분의 일을 하고 희생합니다. 예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희생될지라도 아버지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신 것 같이 우리 또한 아버지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을 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분량은 하나님을 얼마만큼 아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중보자시다
육체는 죽으면 땅에 묻힙니다. 육체는 살다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육체를 잘되게 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예수는 믿는 자 중 일하지 않는 자들은 장차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을 들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자기에게 부여된 잠재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든 잠재능력을 총동원해서 아버지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율법 중에 첫째 계명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2:35~38). 모든 잠재능력을 총동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성품을 바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뜻을 바치지 않고 힘을 바치지 않는 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하되 ‘네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품을 드리고 뜻을 바치고 힘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 이하에 ‘우리가 이 큰 사랑을 알고 믿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믿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면 먼저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을 투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더라도 먼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기도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한 과부는 자기의 생활비 모두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 식구의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증거가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바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헌금하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대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식의 영혼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축복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부모로부터 지혜를 물려 받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조지 워싱턴에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잘 넘기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활 쏘는 사람은 사정거리를 감안하고 화살을 당깁니다. 총알은 직선으로 날아가지만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에 거리를 잘 측정해서 위로 올려 쏘게 됩니다. 옆에서 볼 때는 엉뚱하게 쏘는 것 같지만 그것이 표적을 명중합니다. 성경은 과녁에서 빗나간 것을 죄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그 표적을 맞추기 위해 지혜와 힘을 동원합니다.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지혜를 다 짜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온갖 선한 방법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저도 영등포구 신길동에 교회를 개척할 때 장차 큰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신길동에서 구로동으로 도로가 뻗어나가고 도로도 우리 교회가 있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저의 예측이 적중했습니다. 또 교회당을 남향으로 지으면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겠다는 생각에 도로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교회를 증축하더라도 예배당 전면을 부수지 않고 뒤로 얼마든지 건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시켜 주고자 하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뜻을 바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 혈육에 속한 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다투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잠언서 1장 25~26절에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듣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도 하나님이 귀를 막으시고 재앙의 날에 비웃으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나를 위해 귀를 여시고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돕고 싶어 하시는지 성경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을 너무 멀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